기억이 아니라 이 순간을 살길 바라며.
최근 어머니가 하셨던 말씀이 문득 떠오릅니다.
"애들이 너무 어리면, 여행을 가도 기억을 못 하더라."
"너 어릴 때 그때 어디 간 거 기억나? 안 나잖아."
우리 삶에서 참 중요한 가족이라는 울타리.
가족과 함께한 좋은 기억이 많으면,
나는 과연 ‘화목한 가족을 가진 사람’이 되는 걸까요?
반대로 좋지 않은 기억이 많다면,
나는 우리 가족과 영원히 화목하지 못한 관계로 살아가야 할까요?
‘기억’은 현재를 가능케 한 과거의 연장선이라 볼 수 있습니다.
지나온 사실들과 행동들이 이어져 지금의 내가 만들어지고,
이 환경 속에서 내가 어떤 생각을 하며 살아가게 되었는지를 설명해줍니다.
물론 누구나 긍정적인 기억만으로 삶이 채워지길 바라겠지만,
우리에겐 반드시 부정적인 과거도 함께 존재합니다.
그 역시 우리의 일부이기 때문이죠.
하지만 중요한 건,
그 과거의 연장선이란 기억들이 현재를 ‘구속’하거나 ‘종속’시키는 존재가 되어선 안 된다는 점입니다.
‘가정적인 아버지’ 밑에서 자랐다고 해서
내가 반드시 우리 아이들에게 가정적인 부모가 되어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오히려 그 ‘좋은 기억’이 자신과 타인을 비교하게 만들고,
‘나는 더 잘해야 해’라는 끝없는 경쟁 속에 자신을 몰아넣을 수도 있죠.
반대로,
‘가정적이지 않은 아버지’ 밑에서 자랐다고 해서
그와 똑같은 사람이 되든, 전혀 다른 사람이 되든,
그 어느 쪽도 지금 이 순간의 ‘나’를 제한할 수는 없습니다.
지금 이 순간의 나는,
그 어떤 기억에도 구속되지 않고
그저 나 자신이어야 합니다.
저 역시 한때는 ‘기억’이라는 것을 중심으로 삶을 바라보았던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기억이라는 과거가 아닌,
지금 이 순간을 중심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기억.
우리에게 ‘기억’이란 어떤 존재일까요?
누군가는 기억이 곧 자신이라고 생각합니다.
과거의 부와 명예, 추억들. 혹은 과거의 상처와 아픔.
그것들이 지금의 나를 형성했다고 여기며 살아갑니다.
하지만 기억은 어디까지나 지나간 사실일 뿐입니다.
말 그대로, ‘과거’죠.
그렇다면 질문이 생깁니다.
우리는 이 ‘기억’을 삶을 위해 어떻게 활용해야 할까요?
과거에서 벗어나고 싶어도, 어느새 스며드는 이 강한 ‘기억의 힘’을
어떻게 ‘지금’이라는 순간으로 녹여낼 수 있을까요?
우리의 뇌가 어떤 사실을 ‘기억’으로 강하게 인식하는 건
그 안에 강한 ‘감정의 편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기쁜 기억은 ‘기쁨’의 감정이,
아픈 기억은 ‘슬픔’이라는 감정이,
그 감정들이 사실이란 기억과 함께 깊이 새겨지는 구조이죠.
우리는 어떤 정보를 받아들일 때,
그 안에 감정이 함께 포함될 때 비로소 오래 기억합니다.
단순한 ‘암기’보다,
삶 속에서 그 정보와 감정적 연결이 일어날 때
비로소 진짜 내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학습’이라는 과정조차 삶의 일부로서 작동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정보와 ‘나’라는 삶을 '연결'하며 기억은 나에게 스며들기 때문이죠.
결국, 강한 감정은 강한 기억을 남깁니다. 강한 감정은 삶에 밀첩한 것이고 '나' 그자체 일 것입니다.
그리고 그 감정이 ‘부정적’일수록 우리는 더 오래, 더 깊게 그것에 사로잡히죠.
왜냐면, 인간의 뇌는 ‘생존’을 우선하는 메커니즘으로 작동하기 때문입니다.
위협적인 정보일수록 더 강하게 기억에 남게 되는 것이죠.
예를 들어, 돌이 날아오는 걸 보면 즉시 ‘위협’으로 인지하고 피해야 합니다.
맹수를 보면 도망쳐야겠죠. 이런 생존 본능은 우리 안에 깊이 내재되어 있습니다.
문제는, 감정적 고통은 모두 ‘생명의 위협’으로 여긴다는 것입니다.
‘어릴 적 상처받았던 기억’이,
‘돌이 날아오는 것’처럼
내 안에 같은 위협으로 자리 잡고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질문해야 합니다.
“그 기억, 지금도 나에게 위협이 되는가?”
만약 그렇다면,
그 기억은 나를 보호하기 위해 계속 머물러도 괜찮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삶에서
더 이상 위협이 되지 않는 과거라면,
그 안에 담긴 부정적인 감정을 마주하고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부정적인 감정은 사실,
내가 그 상황을 ‘어떻게 해석했는가’에 따라 만들어진 것입니다.
당시의 나 중심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봤기에,
그 상황과 사람을 수용하지 못했던 거죠.
하지만 그 순간을 좀 더 넓은 시야로 바라볼 수 있다면,
그 감정 또한 자연스레 녹아내릴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부모에게 억압받았던 기억이 있다면,
그들은 그 당시 자신이 배운 방식이 ‘최선’이라 여겼을 수 있습니다.
그들의 가정환경, 사회적 통념, 경제적 상황 등
모든 것이 그 순간을 만들어낸 것이겠죠.
이 모든 것을 이해하고 수용할 때,
과거는 더 이상 현재를 억누르는 기억이 아니라,
지금의 나를 완성해주는 통합의 조각이 됩니다.
우리는 종종 기억이라는 ‘과거’에 빠집니다.
너무 좋았던 순간, 너무 아쉬웠던 순간.
그 기억을 그리워하고, 또 아파하죠.
하지만 우리는 지금 이 순간에 존재합니다.
과거는 이 순간을 더 깊이 인식하게 도와주는 도구일 뿐.
지금의 나를 방해하는 기억이 있다면,
그건 나 자신에게 보내는 신호일지 모릅니다.
“이건 정말 나에게 위협이 맞는가?” 라고 스스로에게 묻는 거죠.
그리고 사실, 지금의 삶에 실질적인 위협이 되지 않는 기억들이 훨씬 더 많을 겁니다.
"내 기억들이 위협이라니, 너무 과장된 이야기 아닌가?"
라고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곧,
우리 자신이 ‘인지 메커니즘’에 대해 얼마나 무지한지를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뇌는 생존을 위해 설계되어 있기 때문에,
감정적으로 강하게 각인된 경험들을 ‘위협’처럼 인식하고,
그것을 반복적으로 떠올리게 만듭니다.
실질적 위협은 아닐지라도, 뇌는 감정의 흔적을 생존의 문제처럼 다루는 것이죠.
부모로서 문득 이런 생각도 듭니다.
“우리 아이가 나에 대한 좋은 기억이 많다면,
그것만으로 내가 좋은 부모이고, 우리 아이들은 행복할까?"
물론 좋은 기억을 많이 만들어줄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기억을 어떻게 바라보고 다뤄야 하는지 알려주는 것입니다.
삶 속에서,
기억이든, 감정이든, 돈이든, 권력이든…
그 어떤 것에도 ‘빠지기만 하는’ 존재가 아니라,
그것으로부터 빠져나올 수 있는 힘을 알려주고 싶습니다.
사람은 언제든 무엇엔가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기에,
무엇에 빠질지를 스스로 선택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선택은,
바로 ‘지금 이 순간’에 자각으로 빠지는 방법일 겁니다.
이 자각이야말로,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존재 중심의 삶이니까요.
저는 좋은 기억을 많이 남기는 부모가 아니라,
‘삶의 의미’와 ‘지금 이 순간의 중요성’을 알려주는 부모가 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