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어떤 상황과 환경이든, 그것이 내가 바라던 것이든 아니든, 오랜 시간 지속되면 결국 그 환경에 ‘적응’하게 됩니다.
갑작스럽게 전쟁이 일어나 모든 것을 잃고 굶주린 채 길거리를 떠돈다 해도, 그것이 반복된다면 우리는 지금의 이 상황에 적응하게 됩니다.
매 순간 변화하며 흐르는 ‘무한한 지금’ 속에서, 당연하게 여길 만한 어떤 것도 없이 그 자리에 머무를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가장 빠르게 그 순간에 적응하는 자일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인간의 원초적인 무한함을 있는 그대로 살아내는 것이며, 이 순간에 온전히 머물며 무한히 충만해지는 길이기도 합니다.
적응의 정도는 사람마다 분명 다를 수 있습니다.
벌어진 일을 얼마나 받아들이고, ‘내 것’이라 여겼던 모든 것이 결국은 '내 사고가 만들어낸 것'임을 누가 더 빨리 되돌아보느냐의 차이겠지요.
그 되돌아봄이 가장 근원적인 방법이지만, 어떤 사람은 이 순간과 다른 현실을 무시하거나 억지로 견디려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결국 내가 만들어낸 것임을 알지 못한다면, 이 순간을 살아내는 데 방해가 될 것입니다.
또 어떤 이는 아예 지금 이 순간의 자신을 ‘나’로 인정하지 않고, 운명처럼 주어진 상황을 부정하며 받아들이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럴 때는 머리와 사고가 바라는 기억, 과거, 상상 속 미래와 지금 사이에 간극이 생기게 됩니다.
설령 지금 내가 돈과 가족을 모두 잃는다 해도, 이미 벌어진 나의 운명을 가장 잘 받아들일 수 있는 태도는
‘진실은 오직 이 순간뿐이며, 지나간 것은 모두 내 머릿속 사고일 뿐이다’라는 것을 아는 자세일 것입니다.
"전쟁이 일어나 거리에서 살아가는 삶이 나의 현실이라면, 그것이 곧 나의 순간입니다."
지나간 과거와 상상의 미래는 이 ‘지금’이라는 나의 삶과 생명을 방해할 뿐입니다.
이처럼, 우리의 사고가 만들어낸 ‘당연함’과 ‘나의 것’이라는 집착은 우리가 이 순간에 적응하는 것을 방해합니다.
우리는 ‘지금’에 적응하기보다는, 나의 기준에 맞춰진 것들에만 적응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진정한 적응의 의미는, 지금 이 순간이 끝없이 흐르고 변화하는 무한한 장임을 인식하고, 매 순간 변화에 맞춰 그 순간에 온전히 머무는 것입니다.
우리의 사고는 이 순간에 머물기 위한 도구로 활용되어야 하며, 우리는 결국 다시 이 순간으로 돌아와야 할 존재일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삶’이라는 이 순간보다는, 사고 속에 빠져 그저 생각으로 삶을 살아가고 있죠."
내가 살아온 환경과 일상은 점점 내게 당연한 것이 되어가며, 우리는 그것을 자각하지 못한 채 그것과 하나가 됩니다.
우리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영원할 것 같았던 순간들도 결국은 흘러가고, 지금의 환경 또한 기술의 급격한 발전 속에서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달라졌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과거에도, 지금에도 결국은 적응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10년 전으로 돌아가면 불편해서 못 살 것이라 말하지만, 사실 1000년 전으로 돌아가도 우리는 살아낼 수 있습니다.
이 순간이 1000년 전이든, 1000년 후이든, 내가 가장 잘 살아가는 방법은 머릿속의 과거나 미래에 머물기보다는, 언제나 지금 이 순간으로 돌아와 여기, 현재를 살아가는 것일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