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무한하다.

by 서고독

우리의 삶의 선택은 실로 무한합니다.

그리고 그 수많은 각자의 선택들이 모여, 마치 운명처럼 어떤 사건들이 벌어지게 됩니다.

사건은 인간뿐만 아니라 동식물, 자연, 그리고 우주의 모든 원리들이 복잡하게 상호작용하며 발생합니다.

작은 바람에도 물건이 쓰러지고, 그것이 누군가를 다치게 할 수도 있는 것처럼 말이죠.

우리는 흔히, ‘내가 옳다’는 전제 아래 유한하고 반복적인 삶을 살아갑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나와 나의 삶을 너무도 당연하게 여긴 나머지, 쉽게 ‘피해자’의 자리에 놓이곤 합니다.

하지만 길을 가다 갑작스럽게 차에 치이는 일조차도,

결코 ‘아무런 이유 없는 사고’는 아닙니다.

그 길을 걷기로 한 것도, 그 동네에 살기로 한 것도,

그 시간에 나가기로 한 것도, 그리고 그 차가 오도록 인연을 만든 것도

결국은 내 선택이며 동시에 내 운명입니다.

내 삶의 모든 순간에는 나의 책임이 있습니다.

이 사실을 인지하는 것이야말로 우주의 상호작용을 이해하는 길이며,

삶을 통합적으로 바라보고 주도적으로 살아가는 자세가 될 것입니다.

사고가 나고, 다쳤다 해도 그 벌어진 순간의 복합성을 받아들이며,

감정에 휩쓸리지 않고 수용하며 그 순간을 살아내는 것 역시 선택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그 모든 책임을 외부로 돌리고 세상을 원망하고 비난한다면,

사고는 끝났을지 몰라도, 그 감정은 끝없이 덧씌워져

우리는 유한한 고통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사고가 나고, 아프고, 슬퍼도

우리는 결국 그 순간을 수용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원초적으로 무한한 존재이며,

그 사실을 기억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큰 기적이자 치유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은 나의 책임, 나의 해석이 이 세상을 만들어냅니다.

우리의 고정된, 유한한 사고는

이 무한한 ‘지금 이 순간’을 가립니다.

우리는 이 순간을 사는 것이 아니라,

고정된 사고에 이끌려 과거의 후회, 미래의 불안,

혹은 어떤 걱정 속을 살아가고 있죠.

그것이 바로 무한하지 못한 유한함이 만들어낸

‘고정된 나’의 모습일 것입니다.

이 글이 마음에 와 닿지만,

현실이라는 이 순간 속에서 내가 그렇게 살아내지 못하는 이유는,

이 글이 ‘원초적인 인간’을 설명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당연히 지금의 현실에 바로 적용하기는 어렵습니다.

이 글은 그런 본질적 자아,

즉 가장 근원적인 나 자신을 향해 다가가기 위한 다리를 놓는 글일 것입니다.

지금의 나와 그 본질 사이를 잇는, 천천히 건너야 할 사유의 다리 말입니다.

"우리의 사고가 만들어낸 유한함과, ‘원초적인 나’라는 무한함 사이의 거리는 생각보다 꽤 멀기에, 그 간극을 매우며 살아낸다는 것은 분명 어렵게 느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스스로를 깊이 돌아보며, 진정한 본질의 나에 닿으려는 노력을 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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