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본성과 본질은 ‘무한함’에서 비롯됩니다. 나의 원천이자, 원초적인 ‘나’인 샘이죠.
우리는 그 무한함을 잊은 채 유한하게 살곤 합니다.
우리는 꼭 이 나라, 이 집, 이 가정이 아니어도 살아갈 수 있는 존재입니다.
인간을 ‘적응의 동물’이라 말할 수 있는 이유는, 우리가 환경에 적응하는 존재이기 때문이 아니라
“내가 마음먹은 대로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사업이 부도가 나 힘들고 고된 상황을 겪고 있다고 해도, “이 순간이 지금의 나다”라고 수용하며 살아야겠다고 마음먹으면, 어디서든 그대로 적응하며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반면, 과거와 오지 않은 미래를 바라보며 지금을 외면한다면,
스스로 고통받으며 평생 적응하지 못한 채 살아갈 수도 있을 겁니다.
이러한 ‘적응’은 결국 내 마음의 작용이며,
그 마음이 어디에도 고정되어 있지 않고 ‘무한’하다면,
우리는 ‘이 순간’을 살아낼 수 있습니다.
이 순간을 수용하며 살아내는 건, ‘무한함’ 그 자체 입니다.
많은 이들이 ‘자유’를 말할 때,
자신의 머릿속 유한한 한 점을 목표로 두고,
그것을 이뤄냈을 때의 상태를 자유라고 여깁니다.
하지만 그것은 단지 하나의 작은 보상일 뿐, 진정한 자유라 할 수 없습니다.
진정한 ‘자유’란,
무한한 내 마음속에서 어디에서든 적응하고 수용할 수 있는 ‘지금의 나’의 상태를 말합니다.
즉, ‘자유’란 지금 처해진 나의 운명, 바로 ‘이 순간’의 의미를 아는 것입니다.
‘이 순간’은 내가 바로 서 있는 이곳이며,
‘나’의 현재를 무한한 마음으로 수용하고 그대로 살아내는 것입니다.
그 순간은 어떤 노력이나 힘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그저 비워낸 채 머물 뿐입니다.
다만, 그 순간에 그렇게 존재하기 위해서는
‘무한함’이라는 ‘나’를 알아가기 위해,
내가 가지고 있는 ‘유한함’을 돌아보며 성찰해야 합니다.
우리는 모두 각자가 가지고 있는 기준과 편견을 지니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학벌은 그 사람의 성실도를 나타낸다’라는 기준을 가진 이가 있다고 가정해봅시다.
내가 가진 기준, 즉 편견은
내 삶에 대한 신념이며 확신 같은 존재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스스로 가지고 있는 기준을 통해 삶을 살아가고,
그 기준은 타인과 세상을 판단하는 잣대가 되기 때문입니다.
‘학벌’이라는 기준은 결국,
내가 바라보는 세상의 해석의 틀이 되는 셈이죠.
우리는 크고 작은 수많은 기준들을 가지고 세상을 해석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 해석은 수많은 왜곡을 낳게 될 것입니다.
내가 가진 기준은 이 순간의 타인이 아닌,
그의 과거, 지나간 사실적 기록으로 그를 판단하게 합니다.
우리 모두는 지금 여기에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5년, 10년 전의 학벌로 지금의 그를 평가합니다.
“이 순간 그대로의 그 사람의 모습만으로 도대체 내가 뭘 알 수 있냐?”
“그럼 내가 뭘 믿고 그 사람을 판단하냐?”
이렇게 생각하실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의 나이, 직장, 가정환경, 경제력, 학벌, 취미 등을 통해
그를 알 수 있을 거라고 믿게 됩니다.
그러나 그런 당신은,
당신 본성의 무한함을 저버린 채 유한함 속에 빠져 사는 존재입니다. 그리고, 그런 ‘나’를 당신은 모릅니다.
당신은, 스스로 만든 기준을 충족하기 위해
학벌, 직장, 가정, 경제력을 열심히 쌓아왔을 겁니다.
그리고 당신의 인생 속엔 언제나,
그 기준에 따른 우열의 순위가 존재합니다.
자신보다 나은 삶, 혹은 못한 삶을 비교하며
SNS에 자랑하고,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살아가고 있겠죠.
당신의 부모, 자식, 주변 사람들도
자신이 가진 기준을 대입해
서로의 행복을 평가하려 들 것입니다.
그 기준은 결국,
당신이 만든 잣대로 타인을 바라보게 합니다.
당신은 원하는 기준만을 근거로,
타인의 과거를 들어 그들을 평가하려 합니다.
그러나, 타인의 과거로 지금을 판단하려 하는 당신 또한,
당신의 과거가 지금의 자신에게 연결되길 원치 않는
너무나 많은 지나간 사실을 가지고 있을겁니다.
우리는 모두 지금 여기에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기준은 자꾸만,
이곳에 있는 나와 타인을
과거의 기록과 엮어 바라보려 합니다.
갓난아이를 무조건적으로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그 아이는 무한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가진 기준이 침범할 수 없을 만큼 순수하며,
아직 과거를 쌓지 않았기 때문이죠.
그러나 그 아이가 성장하며 과거를 쌓아갈수록,
부모인 우리는 자신이 가진 기준으로
그 아이를 평가하게 됩니다.
모든 이는 그 자체로 갓난아이처럼 아름다운 존재입니다.
다만, 내가 가진 것이 너무 많기에, 그만큼 나 자신이 불순해진 것일지도 모릅니다
타인을 평가하는 사람은,
결국 스스로가 기준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이며,
그는 자신의 기준으로 자기 자신 또한 평가하고 있는 셈입니다.
기준이 있는 자에겐 ‘옳고’와 ‘그름’이 생깁니다.
세상을 ‘그대로’가 아닌, ‘옳고’와 ‘그름’으로 나누게 됩니다.
그리고 자신의 과거와 행동에도
끊임없이 옳고 그름의 잣대를 들이대며 고통받습니다.
당신이 선택한 유한함이
지금의 당신 삶을 만들어 왔습니다.
그러나,
이 순간의 나와 타인, 그리고 ‘세상’이라는 운명을
그대로 바라볼 수 있는 힘은
우리의 무한함에 있습니다.
그 무한함을 이해하고 살아낼 때,
우리는 비로소 존재할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