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작에는 끝이 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시작’임을 의도하는 순간, 그 안에는 이미 ‘끝’이 정해진다.
무언가를 하려는 의도, 하려는 의지가 개입되는 순간, 그 안에는 자연스레 결과가 생긴다.
결국, 무언가를 하려고 하는 그 순간,
‘결과와 끝’이 함께 태어나며
그것들은 언제나 ‘시간’과 얽매이게 된다.
사고는 본질적으로 의도적이다.
전체에서 하나를 선택하듯,
사고는 무한함 속의 유한함이다.
그리고 사고하는 그 순간,
우리는 유한함을 만들어낸다.
유한함은 무한함 속에서 튀어나온 하나의 점이며,
그 점은 명확하고 뚜렷하다.
유한한 정의는 삶의 확신이며 존재이다.
그리고 동시에, 불확신이며 환상이다.
그러나 뚜렷함은 언제나 사라진다.
유한한 점을 알아차리는 순간,
그것은 본래의 무한함으로 귀속된다.
뚜렷함은 언제나 자연히 녹아든다.
사고의 유한함이 만든 ‘나’라는 점들은
서로 연결되어 하나의 수 처럼 수놓아져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죽음이 있으며,
죽음은 곧 시간이다.
죽음 또한 우리가 만들어낸, 우리 자신에게 가장 가까운 결핍이다.
그리고 그것은 시간이 된다.
우리는 죽음을 거부하고, 부정하며, 두려워하면서
스스로 단단하고 깊은 점을 쌓아왔다.
죽음을 존재의 반대라 착각하며 만든 결핍이지만,
존재의 반대는 없다.
이분법으로 나누고 싶어 하는 것은
우리의 착각일 뿐이다.
죽음도, 삶도, 나도 존재가 만들어낸 것일 뿐이다.
모두 다 같은 점이다.
우리는 단지 그것을 각자의 방식으로 해석하고,
그 위에 우위를 스스로 믿을 뿐이다.
이처럼 인간은 무한함을 기반으로
스스로의 삶을 정한다.
사고로 인해 생겨난 유한한 점은
끝없이 사라지지 않는다.
우리가 무언가를 하려는 그 ‘점’ 또한
그것을 무한함으로 인지하지 않는 이상,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우리가 만든 모든 유한한 결핍들은
알아차릴 때 녹아들며,
우리는 다시금 무한해진다.
내가 만든 죽음, 그리고 시간
이 두 가지 거대하면서도 단단한 점을
나는 무한한 존재의 본질 속에 품으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