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감스럽게도, 남편분은 다발성 골수종인 것 같습니다.”
간호사 스테이션에서 누군가와 통화 중이던 간호사가 나에게 수화기를 넘겼다.
영문도 모르고 받아 든 수화기에서 들은 첫 문장이었다.
수화기 너머 들리는 선생님의 목소리에서 단어 하나하나 조심스럽게 꺼내는 것이 느껴진다.
‘그런데, 이런 말을 하시는 의사 선생님은 대체 누구시지?’
고개를 돌려 남편을 봤다.
남편이 간호사 스테이션 한편에 마련된 집중치료실에서 초점 없는 눈빛으로 침대 시트를 쥐어 잡고
몸을 웅크린 채 바들바들 떨고 있다.
2023년 5월 5일 어린이날.
초등학교에 입학한 딸의 첫 번째 어린이날이다.
아침 7시에 일어난 딸과 함께 거실로 나갔다.
평소 아침잠이 없는 남편이라 일어나 있을 줄 알았는데, 침대에 누워 손짓으로 나를 부른다.
“나 허리가 너무 아파서 혼자 일어날 수가 없어. 당신이 나 좀 일으켜 줘.”
키가 187인 남편을 일으키기에 30센티나 작은 나는 역부족이었다.
남편은 겨우 기어서 일어나기까지 한 시간이 걸렸다.
한 달 전 갑자기 심해진 디스크 증상.
집 근처 통증의학과, 정형외과를 다니며 각종 주사를 맞고 약도 먹었지만 통증은 점점 심해졌다.
이렇게 아플 땐 좀 쉬면서 일했으면 좋겠는데, 주말도 없이 출장을 다닌 지 몇 달째인지 모르겠다.
“오늘은 그냥 못 넘어가. 단오병원 응급실로 가자.”
“나 내일 서산 내려가야 돼. 나 대신 교대해 줄 근무자가 없는 거 알잖아.”
“당신 지금 이 상태로는 일하고 싶어도 못 해. 빨리 일어나.”
단오병원 응급실.
어린이날에 응급실은 놀이공원에 있어야 할 어린이들로 붐볐다.
한 시간 정도 기다려 배드를 배정받고, 디스크 통증 완화를 위한 진통제를 맞았다.
남편의 표정이 한결 편안해졌다.
“이제 좀 살겠다. 이 수액 다 맞으면 서산 내려가야 될 것 같아.”
“운전도 못 하는 몸 상태로 어떻게 서산에 내려가. 회사를 그만두는 한이 있더라도 MRI 찍어보자.”
남편은 간호 통합 병동에 입원하기로 한 후 함께 1층 편의점으로 내려왔다.
남편은 물, 삼각김밥, 커피, 담배를 구매했다.
“나 가볼게. 설이가 기다리겠다. 무슨 일 있으면 전화해.”
우산을 쓴 남편은 전자담배를 입에 물고 손을 흔들었다.
우산에 얼굴이 가려져 뿌연 연기만 회색 하늘 위로 번져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