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리 Aug 04. 2023

신상 폰은 못 참지

“갤럭시 S23 신상 나왔어.”

귀를 의심했다.

“그래서? 지금 핸드폰을 바꾸고 싶다고?”

남편은 심각한 순간 신박한 말을 던진다.

분명 지친 나를 웃게 해주고 싶어서 그랬으리라.

‘그래, 이번엔 좀 웃겼다.’

피식 웃으며 남편의 얼굴을 봤는데, 얼굴이 진지한 궁서체 그 자체다.

“내가 침대에 누워 움직일 수 없잖아? 할 수 있는 거라고는 핸드폰으로 뉴스나 유튜브 밖에 볼 수 없는데.”

“내 폴드폰은 너무 무거워서 손목이 너무 아파. 역시 핸드폰은 손안에 쏙 들어와야 해”

손목을 돌리며 입술을 삐죽인다.

“설상호 씨, 당신 두 달 전 현장근무 할 때 듀얼폴더폰 정도는 돼야 도면이 보인다며 폰 바꿨던 걸로 기억하는데? 내가 핸드폰으로 쓰기에 너무 무거워서 불편하다고 했던 것 같은데. 그리고, 3년 동안 폰 바꿀 일 없다며? 기억나지?”

“기억나지. 그런데, 이것 봐 접어서 침대 위에 놓는다 해도 내가 고개를 돌릴 수가 없잖아?”

“그래서, 이렇게 손을 위로 들어서 볼 수밖에 없는데 너무 무거워서 손목이랑 팔이 너무 아파.”

평소 같았으면 들은 채도 안 했을 것이다.

내가 대답이 없자,


“내 마지막 소원이 될 수도 있잖아.”


‘하아, 이건 반칙이지.’

“그래서, 어떻게 했으면 좋겠는데?”

“내가 검색을 해 보니 여기서 300m 반경에 일렉트릭마트가 있어.”

“그래서?”

“당신이 다녀와야지.”


구급차를 타고 응급실을 통해 이 병원 건물로 들어온 지 일주일이 넘었다.

로비를 지나 병원 정문 앞에 서니 언덕 아래 번화가가 펼쳐졌다.

이 언덕길만 50미터 정도 내려가면 8차선 도로 사이로 학원, 번화가, 아파트 단지가 순서대로 자리잡고 있다. 

달걀 껍데기에 있는 얇은 난각막처럼 넓게 뻗어있는 이 8차선 도로 넘어가 마치 다른 차원으로 연결되는 것처럼 낯설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이 막은 삶과 죽음의 경계선처럼 느껴져 맞은편 세계로 나가도 될지 망설여졌다.

언덕 아래로 내려오니 가로수 길이 나타났다. 

양 옆으로 심어진 나무 그늘 사이로 걸어가자 풀내음이 가득하다. 

숨을 크게 들이쉬자 머릿속이 맑아졌다.

가로수 나무 사이로 인도를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봤다.

하교시간인 듯 중학생으로 보이는 학생들이 지나가고, 반바지를 입은 청년이 자전거를 타고 빠르게 사라졌다.

이마트 앞엔 근처 아파트 단지에서 엄마와 장을 보러 온 아이들이 조형물 위로 올라가려고 버둥거리고 있다.

신호등 앞 신호를 기다리는 사람들에 둘러싸이자, 고개를 숙여 검은색 티셔츠에 냄새를 맡았다.

검은색 티셔츠에 검은색 바지를 입고, 마찬가지로 검은색 슬리퍼를 신은 채 발가락을 꼼지락거려본다.

남편이 동네 2차 병원에 입원했을 때 입었던 옷 그대로다.


이마트 입구를 빠르게 지나 5층 일렉트로마트로 곧장 올라갔다.


핸드폰을 포함해서 전자기기를 오프라인 매장에서 사본 지가 언제인지 기억나지 않는다.

네이버 검색을 통해 최저가로 구입하거나, 최근엔 쿠팡에서 구매를 해왔다.

매장엔 나 외에 손님이 10명도 채 안 되었다.

빠르게 삼성 핸드폰 매장의 직원을 찾아갔다.

“저… 갤럭시 S23 256기가 주세요.” 

빠르게 제품을 구입하고 이곳을 벗어나고 싶었다.

점원은 사은품을 여러 가지 챙기고 있었다.

쇼핑백엔 세탁세제, 스타벅스 컵, 핸드폰 케이스가 담겼다.

자리를 차지하는 세탁세제를 사양하고 돌아서는 순간, 갑자기 생각난 것이 있었다.

“혹시, 사은품 중에 그립톡도 있나요?”


남편은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은 어린아이처럼 좋아했다.

빠르게 포장을 뜯고, 유심칩을 끼우며 말했다.

“이 촌스러운 고리땡은 뭐야?”

“내가 예언하나 할게. 분명 당신은 이 폰만큼 고래땡을 좋아하게 될 거야.”

그 예언은 적중했다.

남편은 가운데 손가락을 고리에 끼우며 말했다.

“난 이제 고리땡없이 살 수 없는 몸이 되었어.”

“누워서 폰을 봐도 손목이 하나도 안 아파.”


다음날 아침 남편은 수술실로 들어갔다.

수술실 앞까지 배고 있던 베개를 건네받아 품에 안았다.

나는 그대로 수술실 앞에 서 있었다.

3시간이 걸린다고 했던 수술은 4시간이 지나도록 나오지 않았다.

작가의 이전글 환자분 같은 경우 수술 후 못 깨어날 수도 있어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