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날 아침이었다.
오늘 수술하는 건 맞지만 정확한 시간은 알 수가 없었다.
긴급수술이라 예약 수술 사이 시간이 날 때 진행된다고만 했었다.
이 병원에서는 침대를 끌고 검사실로 옮겨주는 일을 하는 분들을 ‘사우님’이라고 부른다.
아침 8시 갑자기 나타난 사우님이 지금 수술실로 이동해야 한다고 했다.
흰 피부에 단정하게 머리를 짧게 자른 20대 중반의 청년으로 여러 번 상호씨의 침대를 옮겨줬기 때문에 상호 씨 상태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수술실로 이동할 때 내심 이 사우님이 왔으면 했었는데, 걱정을 한시름 내려놓았다.
병실 앞 복도에서 수술실용 침대로 옮겼는데, 간호사 두 분과 사우님, 내가 힘을 합쳐 동시에 옮겼다.
암병동으로 처음 올라왔던 날 상호 씨를 옮기는데 다섯 명의 간호사가 필요했었다.
누군가 실수로 침대보를 들어 올리는 바람에 남편이 고통스러워했고, 다들 긴장해서 얼어붙었었다.
간호사들은 일주일 만에 남편을 옮기는 일에 익숙해졌다.
남편의 머리에 파란색 불투명한 헤어캡이 띄워졌고, 그 길로 3층 수술실로 이동했다.
나는 경황이 없어 핸드폰도 병실에 놔둔 채 수술실로 따라갔다.
수술실 앞 벽엔 “입원실에서 기다리면 문자를 주겠습니다.”라는 문구가 붙어 있었지만, 예상치 못한 일이 생길까 봐 수술실 문 앞을 벗어날 수 없었다.
중간중간 열리는 회복실 문을 바라보며, 문이 열릴 때마다 남편이 있는지 계속 지켜봤다.
4시간 만에 수술실에서 나온 남편은 바닥의 작은 단차에도 고통스러워했다.
수술실에서 나오자마자 엑스레이실로 이동했고, 곧바로 차갑고 딱딱한 배드 위에 올려졌다.
병실에 돌아온 남편의 얼굴은 고통으로 엉망이 되어 있었다.
남편이 있는 6인실은 온갖 소리로 뒤죽박죽이다.
남편의 침실은 오른쪽 창가인데, 맞은편 창가 어르신은 계속 가래침을 뱉었고, 그 옆의 치매 할아버지는 목소리가 카랑카랑한 중국교포 간병인과 하루종일 싸웠다.
커튼 하나 사이로 상호 씨 바로 옆 침대에는 금방 이비인후과 시술을 마친 어린이가 몇 시간째 엉엉 울고 있었다.
아이의 울음소리는 고막을 관통해 뇌에 박히는 것 같았다.
남편은 고통에 찬 얼굴로 꾹꾹 참아내고 있었다.
나는 반나절을 참다가 간호스테이션으로 달려갔다.
“제발, 1인실 어떻게 안 되나요?”
어제부터 요청했지만, 장기 입원자로 꽉 차서 자리가 없다고 했다.
“남편이 너무 힘들어해요. 막 수술 마치고 돌아왔는데… 조금도 쉴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에요.”
망설이다 간호사가 입을 열었다.
“낡은 1인실이 있기는 한데 괜찮겠어요? 시설에 비해 다른 1인실과 가격이 동일해서요… “
혼자 있을 수 있고, 화장실만 있다면 하룻밤에 100만 원이라 할지라도 갈 참이었다.
간호사를 따라 룸투어를 갔다.
원래는 흰색이었을 거라 추정되는 전자레인지는 진한 베이지색상이 되어있었고, 테이블, 보호자 침대도 흠집이 많이 나 있었다.
하지만, 그런 사소한 것들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1인실 문을 열자 벽면 가득 통창이 나타났다.
창문을 열자 공원에서 불어오는 진한 초록의 향기가 물고기처럼 파닥거리는 심장을 진정시켜 주었다.
이걸로 충분했다.
계획 없이 시작된 병원생활은 요령 없이 짐만 가득 늘어있었다.
짐을 싸 보니 처음 원룸으로 독립했을 때만큼의 양이었다.
‘이걸 어떻게 나른다… ’
멍하니 짐을 쳐다보고 있는 사이 옆으로 휠체어 하나가 주차됐다.
“여기다 나르면 되오. 남편 힘든 수술 했는데, 아이 울어대고, 노인네 헛소리하고 얼마나 힘드오.”
치매노인을 돌보던 간병인 아주머니의 도움을 받아 휠체어에 실어 여러 번 짐을 날랐다.
6인실에서 함께 24시간을 보내면서 나 포함 6명의 간병인은 적당한 거리를 유지했다.
특별히 말을 걸거나, 환자가 정확히 어떤 병명으로 이곳에 입원했는지 묻지 않았다.
다만, 담당교수님의 회진 때 나온 이야기를 쫑긋 귀담아들을 뿐이었다.
이곳엔 비밀이 없었다.
치매 노인은 90대 초반이었다.
낮에는 대체로 멍하니 누워있다가 갑자기 간병인 아주머니에게 화를 냈다.
“내가 누군지 알아? 내 전화 한 통 화면 우리 직원들이 우르르 몰려와. 내가 당신한테 이런 취급을 받을 사람이 아니란 말이야. 알겠어?”
대답이 없는 전화를 붙들고,
“어, 그래, 알았어. 지금 온다고?”
온다던 사람은 단 한 번도 온 적이 없었다.
내가 보호자 침대에 앉아 있으면 대각선으로 치매 어르신이 보인다.
내 시선에 보인다는 것은 상대방도 내가 보인다는 뜻이다.
어느 날 아침에 눈을 떠 앉아있는데, 시선이 느껴져 고개가 저절로 그곳으로 향했다.
치매 어르신이 시선을 떼지 않은 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시선이 마주쳤다.
“아, 너 이리 와봐.”
나는 못 본 척 고개를 돌렸다.
“야, 너 이리 와봐.”
나는 안 들리는 척 남편에게 말을 걸었다.
치매 어르신은 끈질겼다.
잠깐 나갔다 돌아온 간병인 아주머니는 할아버지에게 쏘아붙였다.
“아니, 가만히 있는 사람한테 왜 시비요?”
둘의 대화는 격앙 됐다가, 대표님과 직원으로 설정이 바뀌었고, 어느새 할아버지는 잠이 들어있었다.
남편의 침대를 새로운 보금자리로 이동시켰다.
복도를 지나 남향에 위치한 1인실 문을 열자 햇살이 쏟아져 들어왔다.
커다란 통창은 초록색과 하늘색으로 가득하다.
일그러졌던 남편의 얼굴이 편안해졌다.
리모컨을 들어 텔레비전을 틀었다.
집에서 즐겨봤던 TVN ‘스페인하숙’이 재방송되고 있었다.
“너무 좋아.”
남편의 얼굴이 하얀색 치아를 반짝이며 웃었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미소를 보이고는 이내 스르륵 평온한 표정으로 잠이 들었다.
집 떠나온 지 10일 만의 일이었다.
세 시간 정도 잠이 들었던 남편은 처음 느껴보는 고통에 신음소리를 내며 일어났다.
“당신아, 나 왜 이렇게 아프지? 수술이 잘못된 거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