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생활 17년 차.
회사에서 하루종일 하는 일은 최고의 선택이 아니라 최선의 선택을 하는 것이다.
타 부서와 업무 일정을 조율하고, 신상품 출시 일정을 변경하고, 디자인에 입힐 사진을 선택하고, 문구를 수정한다.
하루에 몇 번의 업무를 수정하고, 그에 따른 선택을 하는지 나열할 수 없을 정도다.
수많은 경우의 수 중 빠르게 선택하고, 업무 속도를 높이는 일은 내가 잘하는 일 중 하나다.
그런데, 병원 안으로 갑자기 떨어진 나는 마치 신입사원 시절 복사기 버튼 하나 누르지 못하던 때로 돌아간 것 같다.
어두운 병실 안 창가 끝자리에서 커튼으로 쳐진 벽 아래로 불빛이 번져 나간다.
‘다발성골수종’
‘다발성…여러 곳에서 생겨 난… 골수종… 골수에 생긴 암이라는 뜻인가?’
머릿속에 떠나지 않는 이 단어를 유튜브 검색 창에 검색했다.
‘다발성 골수종 진단 후 생존율, 혈액종양내과, 뼈에 통증이 나타나는 다발성 골수종…’
서울아산병원, 세브란스병원, 서울대병원, 국립암센터 등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병원의 채널이 나열된다.
‘만약의 경우 골수종이 맞다면, 가장 효과적인 치료방법은 뭐가 있지?’
CAR-T 치료제? CAR-T센터가 있는 곳이 소위 빅 5 병원 밖에 없다.
그렇다면, 무조건 빅 5 병원으로 가는 걸로 하자.
외래가 시작되는 아침을 기다리며, 끊임없이 유튜브에서 관련 정보를 습득했다.
새벽 6시 커튼이 벽처럼 사면이 둘러쳐 있는 간호스테이션 안 남편의 침대로 갔다.
잠이 들었던 남편은 인기척에 신음소리를 내며 눈을 떴다.
“대체 밤새도록 어디에 있었던 거야? 설마 여기 나를 버려두고 잠이라도 자러 갔던 거야?”
울먹이며 나를 노려보는 눈빛.
자신을 버린 엄마를 마주한 듯 원망과 분노, 안도의 감정이 뒤섞여있다.
“밤새 내가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 알아?”
앙다문 입술이 파르르 떨린다.
“미안해. 중요하게 알아봐야 할 것들이 있었어.”
“하아… 대체… 일단 날개뼈 있는 곳 좀 봐줘. 칼날 같은 게 계속 찌르는 것 같아.”
날개뼈를 보기 위해 어깨를 살짝 들었다.
고통에 몸부림치며 신음한다.
“조심 좀 해!”
날카롭게 소리를 지른다.
나는 어찌할 바를 몰라하며 그대로 얼어버렸다.
“어떻게 좀 해줘!”
남편의 고통을 가늠할 수 없었고, 혼자서는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아 간호사를 불렀다.
간호사들은 남편의 고통에 동요하지 않고, 빠른 손놀림으로 등을 살폈다.
“환자분 아무것도 없어요. 아직도 불편하세요?”
“어깨, 어깨가…”
어깨 부분의 옷 끝을 잡고 살짝 당기자, 살짝 잡혀있던 옷 주름이 펴졌다.
“어, 이, 이제 됐어요. 이제 괜찮아요.”
남편은 등을 붙이고 있을 땐 통증이 안정됐다.
문제는 사람은 같은 자세로 가만히 있기 어렵다는 것이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물질은 인간의 눈에 보이던 보이지 않던 운동을 한다.
우리는 의식하지 못하지만, 아주 미세하게 조금씩 쉼 없이 움직이고 있다.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남편 역시 미세하게 움직일 수밖에 없었고,
그때마다 칼로 찌르는 듯한 고통에 몸부림쳐야 했다.
남편은 옆으로 누울 수도, 몸을 일으킬 수도 없고 스케치북에 풀로 붙인 색종이처럼 침대 위에 붙어버렸다.
나는 24시간 쉼 없이 지구를 도는 위성처럼 남편 침대를 빙글빙글 돌며 상의를 당겨 상의에 생기는 미세한 주름을 펴는 작업을 했다.
이런 상황이 쉼 없이 계속 됐고, 남편과 나는 급속도로 지쳐갔다.
몸속에서 무언가 빠져나와 공중에 떠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지금 1층 신경외과 외래 가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