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왜 신경외과로 가라고 하지? 내과? 외과?’
2차 병원은 40대 넘어 종합검진받으러 간 것이 전부이다.
내 머릿속에 병원은 동네 정형외과, 이비인후과, 내과, 치과 정도이고, 라식 수술을 받으러 안과에 간 것이 전부이다.
이 나이 먹도록 외과와 내과를 어떻게 구분하는지 조차 알지 못했다.
1층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낯선 풍경이 펼쳐졌다.
남편이 응급실로 들어와 병실에 입원한 2박 3일은 공휴일과 일요일이었다.
월요일의 2차 병원 1층은 외래를 보기 위한 사람들로 가득 찼다.
1층은 중국어, 러시아, 몽골어가 귓속에서 뒤섞여 윙윙거린다.
단오병원은 경기도 서남쪽의 공단 근처에 자리 잡고 있다.
진료순서의 순번을 알려주는 화면엔 다섯 음절 이상의 발음하기 힘든 이름들이 군데군데 나열되어 있다.
간호사가 이름을 네다섯 번 불러야 겨우 당사자가 나타났고, 매번 이름을 한 두음 다르게 불렀다.
다양한 국적의 다양한 연령의 아픈 사람들이 넘쳐났다.
그 속에 나는 이방인처럼 신경외과 진료실 앞 간호사 근처를 맴돌다 입을 열었다.
“저… 입원해 있는 설상호 씨 보호자인데요… 외래 오라고 해서 왔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제대로 전달이 된 걸까? 마스크 안에서 나올 대답을 놓치지 않기 위해 집중한다.
고개를 들어 몇 초간 나를 응시한 후,
“아, 설상호 씨 보호자님… 진료실로 들어가세요.”
이미 남편에 대해 알고 있는 것 같다.
문을 열고 진료실 안으로 들어갔다.
책장도 모자라 창틀에 줄 지어 책으로 만든 장벽 속 호리호리한 몸집의 의사 선생님이 모니터를 응시하고 있었다.
“보호자분 이쪽 모니터 앞으로 오세요.”
듀얼모니터 가득 뼈 사진이 열려있다.
“어제 통화했었죠. 응급실 내과 선생님이 내과적 문제를 발견하고 CT를 찍었는데, 신장수치가 안 좋아서 조영제를 사용하지 못했어요.”
“그럼에도 척추 뼈 전체에 암세포가 흩뿌려져 있는 게 선명하게 찍혔어요.”
“척추뼈 전체가 암세포로 뒤덮여 있는데, 특히, 여기 새까맣게 보이는 뼈들 보이시죠?”
“경추 7번, 흉추 5번, 요추 3번의 뼈 안쪽까지 암세포에 먹혔어요.”
“그중에서도 요추 3번의 뼈를 보면 완전히 까맣죠? 이게 다 암세포입니다. 위, 아래 뼈 높이와 비교해 보세요. 높이가 반 밖에 되지 않죠?”
“암세포에 먹히면서 뼈가 내려앉은 거예요.”
“이 뼈를 자세히 보시면 암세포가 증식하면서 척추 신경을 누르고 있는 게 보이시죠?”
“암이 신경을 눌러 고통스러워하는 겁니다.”
뼈 모형을 들어 세 군데의 위치를 가리켰다.
불현듯 남편이 했던 말들이 지나갔다.
최근 목디스크가 재발한 것 같다고 했었고, 날개뼈가 모이는 부분이 욱신거린다고 했었다.
그리고, 가장 큰 문제가 되는 허리 통증 때문에 병원을 다녔었다.
“혹시, 디스크가 터진 건 아닌 거죠?”
바보 같아 보인다는 것을 알지만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디스크는 이 부분이고, 높이와 모양을 봤을 때 정상입니다.”
“선생님, 이해할 수 없는 게… 사람 몸이 이 정도가 될 때까지 모를 수가 없는 거 아닌가요?”
선생님은 말을 잠시 멈췄다 다시 어어갔다.
“남편 분은 정확한 진단과 치료를 위해 대학병원으로 가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하루빨리.”
“특히, 암세포가 척추신경을 눌러 극심한 통증을 호소하고 있어요. 저희 병원에서 쓸 수 있는 진통제의 종류와 양에 한계가 있습니다.”
“제 소견으로는 통증 치료를 위해 가장 먼저 척추신경을 누르고 있는 암세포를 제거하는 수술이 시급해 보입니다.”
“제가 적절한 병원을 추천해 드릴까요, 아니면, 생각하는 병원이 있나요?”
“선생님, 서울 빅 5 병원으로 가고 싶어요.”
“빅 5 병원은 대기가 아주 길어요.”
“빅 5 병원에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어요.”
“앰뷸런스를 타고 응급실에 접수하고, 배드가 날 때까지 차 안에서 대기해야 돼요.”
“한 시간이 될지, 10시간이 될지 모르고, 그날 그 병원에 배드가 안 나면 다시 앰뷸런스를 타고 다른 병원 응급실에 가서 앞의 방법을 반복해야 합니다.”
“두 번째 방법은 외래예약을 해서 가는 방법인데, 갑자기 외래 잡기도 어렵고, 잡힌다 해도 다시 입원실 배드가 날 때까지 기다려야 해요.”
“남편분이 그때까지 버틸 수 있을까요?”
외과 수술은 의료진의 손 기술이 중요하다.
“남편이 심각한 상태라면 더더욱 큰 병원으로 가야 하는 것 아닐까요?”
“… 보호자분 뜻은 알겠습니다. 일단 저희가 알아보죠. 병실에 가 계세요.”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오는 동안 아침에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MRI를 찍기 위해 지하 1층으로 향했다.
침대채로 이동하는 동안 바닥의 단차, 엘리베이터 경계로 침대가 조금만 덜컹거려도 남편은 비명을 질렀다.
남편이 MRI 촬영실 안으로 혼자 들어가고, 나는 바깥에 남았다.
안에서 남편의 비명소리가 오랫동안 끊이질 않았다.
40분 후 나온 남편의 얼굴엔 핏기가 완전히 사라져 있었다.
남편이 얼마나 견딜 수 있을까.
병실로 돌아오자 남편 주위로 간호사 여러 명이 서 있다.
“대체 외래를 하루종일 갔다 오는 거야!”
남편의 얼굴은 고통으로 일그러져 있었다.
내 앞에 있는 사람이 남편인지, 남편얼굴을 한 다른 사람인지 너무 낯설게 느껴졌다.
“그냥 날 재워주세요.”
“환자분, 지금 상태에서 진정제를 더 맞으면 산소포화도가 더 떨어져 위험할 수 있어요.”
남편은 무통주사의 버튼을 연속으로 누르다 이내 내려놓는다.
“진통제가 전혀 효과가 없어요… ”
‘당장이라도 병원이 결정되면 옮겨야 한다.’
남편에게 상황설명을 하지 않고 병원을 옮길 수 있을까?
설득할만한 방법이 없다.
사실대로 말해야 한다.
“상호 씨, 우리 병원을 옮겨야 해.”
“무슨 소리야, 지금 내 상태가 이런데 병원을 옮긴다고?”
“이 병원에서 당신한테 해줄 수 있는 게 없대.”
“당신… 암 이래.”
고통을 호소하던 입술이 닫혔다.
눈만 규칙적으로 깜빡이던 남편은 입을 천천히 열었다.
평소의 남편처럼 차분했다.
“그래서 이렇게 아픈 거였구나…”
“이제 이해가 돼.”
다시 신경외과 선생님의 진료실로 들어갔다.
“내일 아산병원 외래를 잡았는데, 초진의 경우 환자가 휠체어를 타고라도 직접 진료를 받아야 한다고 합니다.”
누워있는 것도 고통스러워하는데, 휠체어를 탈 수 있을 리 없다.
선택권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다.
“선생님, 척추에 있는 암 수술을 잘하고, 지금 배드가 있는 곳으로 추천 부탁드립니다.”
“그 병원이 어디라도 이제 상관없어요. 당장 출발할 수 있다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