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으로만 담던 감정을 글로 남길 수 있을까.
들어가 보자.
내 안으로.
그림 말고 글로.
무조건 시작해야 하는 순간이 있다.
지금이 아니면 다시 기회가 없을 것만 같은 순간.
그러니 빠르게 첫 발을 뗀다.
글을 쓴다.
제목은 날짜로 정했다.
기록에 있어 가장 적합한 제목이니까.
부제는 오늘의 글을 쓸 때 떠오르는 것으로.
독백이라도 거짓말이 섞일 수 있겠지만
스스로 눈치채는 정도라면 귀엽게 봐주는 걸로 하자.
기간도 내용의 범위도, 장르도 정하지 않는다.
글이라는 틀만 정했다.
그래야 긴장 풀고 눈치 안 보며 독백할 수 있을 테니.
어둑어둑 한밤중 인적 없는 호숫가를 나 홀로 서성이다
보드레한 모래 위에 점잖게 도사리고 앉았다.
슬슬 구름이 걷히고 번하게 밝아오는 사위.
고요한 물 낯에 동그라미라도 그려지는가 가만 지켜보지만
서늘한 바람만이 적요하게 숨죽인 수면 위를 쓸고 갈 뿐,
늑대도, 살쾡이도, 고라니도
아무것도 오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