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힌 API와 크롤링 금지가 AI 시대의 벽이 되는

카카오·네이버 사례와, 반대로 “열어둔” 글로벌 사례를 중심으로

by TomJeong

AI 시대의 경쟁력은 모델 크기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무엇을, 얼마나, 어떤 조건으로 학습·검색·활용할 수 있는지가 생산성 도구의 품질과 산업의 속도를 좌우한다. 그런데 한국의 대표 플랫폼인 카카오와 네이버를 둘러싼 API 정책, 그리고 크롤링(자동화된 수집)에 대한 강한 제약은 “국내 데이터 접근성”이라는 관문을 좁히면서, 특히 스타트업·연구자·중소 서비스에게 높은 장벽으로 작동해 왔다. 이 글은 (1) 왜 그 장벽이 생겼는지, (2) 어떤 방식으로 산업에 ‘벽’이 되는지, (3) 반대로 글로벌에서는 어떤 ‘개방’의 선택지가 존재하는지, (4) 그 사이에서 현실적인 절충안은 무엇인지까지를 사례 기반으로 정리해 본다.



1) 네이버: “AI 봇 크롤링 차단”과 ‘데이터 요새화’의 신호


네이버는 자사 핵심 서비스(블로그·카페 등)에서 글로벌 AI 봇(오픈AI·구글 등)의 크롤링을 robots.txt로 차단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이는 단순한 기술 조치가 아니라 “학습·검색용 수집을 외부에 허용할 것인가”에 대한 플랫폼의 선언에 가깝다. 


네이버는 원래도 “robots.txt로 보호되는 데이터베이스를 네이버의 로봇이 아닌 타 검색 로봇이 수집하는 것을 불허”한다는 취지의 정책을 공개적으로 명시해 왔다. 즉, 검색·수집의 주도권을 플랫폼이 쥐고 통제하겠다는 전통적 입장이 AI 시대에 더 강화되는 모양새다. 


여기서 ‘벽’이 만들어지는 지점은 두 가지다.

- 학습 데이터의 국지적 공백: 한국어·한국 문화권의 생활형 텍스트(카페·블로그·Q&A)는 AI 품질에 직결된다. 이 영역이 대규모로 차단되면, 글로벌 모델은 한국어 맥락을 더 얕게 이해하고 국내 서비스는 ‘한국어 특화’의 이점을 누리기 어렵다. (차단이 정당하냐와 별개로, 결과적으로 데이터 접근의 격차가 생긴다.)

- 접근권의 ‘협상화’: 공개 웹이던 데이터가 사실상 ‘라이선스 협상’ 또는 ‘파트너십’ 없이는 접근하기 어려운 자원으로 바뀐다. 그러면 협상력이 약한 플레이어(대학 연구실, 초기 스타트업, 시민 개발자)가 먼저 밀려난다.



2) 카카오: “API로 제공하지 않는 정보는 임의로 쓰면 안 된다”는 경계선


카카오 쪽은 특히 “API로 제공하지 않는 정보는 임의로 사용하면 안 된다”라는 형태로, 크롤링을 통한 우회 수집에 강한 선을 긋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예컨대 카카오맵의 리뷰 데이터를 “API가 없으니 스크래핑해도 되느냐”는 문의에 대해, 카카오 개발자 커뮤니티에서는 명확하게 불가 취지의 답변이 달렸다. 


또한 카카오는 카카오맵 API 관련 공지에서 가이드에 안내된 방식 외 “어떤 방법으로든” 관련 리소스에 직접 접근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고 안내한 바 있다. 이런 문구는 기술적으로는 “정해진 API 경로만 쓰라”는 의미지만, 산업적으로는 “플랫폼이 제공하는 창구 밖의 데이터 접근은 봉쇄”라는 메시지로 읽힌다. 


이 또한 ‘벽’이 되는 포인트가 있다.

- 혁신이 ‘제공 범위’에 종속: 플랫폼이 API로 내놓지 않은 데이터·기능은(예: 리뷰·댓글·커뮤니티 글 등) 제품 혁신의 재료가 되기 어렵다. 서비스 기획의 상상력이 플랫폼의 ‘API 카탈로그’에 종속된다.

- 데이터 비대칭의 고착: 플랫폼은 내부 로그·콘텐츠로 AI를 고도화할 수 있지만, 외부 생태계는 제한된 API만으로 경쟁해야 한다. 장기적으로는 “플랫폼 내부 AI는 빠르게 진화, 외부는 느리게 진화” 구조가 생긴다.


여기에 더해, 카카오의 약관 개정(이용기록·이용패턴 관련) 논란은 “AI 기능 고도화를 위해 데이터 활용이 확대되는 흐름” 자체를 사회가 민감하게 바라보고 있음을 보여준다. 법적으론 개인정보보호법 등 상위 규범과 ‘별도 동의’ 이슈가 얽히며, 기업은 이용자 신뢰를 설계해야 하는 과제를 떠안는다. 

즉, 플랫폼이 외부 크롤링을 막는 명분 중 하나가 “개인정보·저작권·이용자 보호”라면, 그 명분을 성립시키려면 내부 활용 또한 투명성과 통제가 따라야 한다는 역설이 생긴다.



3) “크롤링은 언제나 불법인가?” 법·기술 경계가 애매할수록 벽은 높아진다


문제는 크롤링이 늘 같은 성격이 아니라는 점이다. 공개 웹에서의 데이터 수집은 “접근제한이 있었는지, 우회·침입이 있었는지, 약관 위반인지, DB 권리 침해인지” 등에 따라 법적 평가가 갈린다. 대법원 판례·해설에서도 접근제한(보호조치) 유무가 중요한 판단 요소로 언급된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대형 플랫폼이 robots.txt, 로그인 벽, 레이트리밋, 동적 렌더링, 법무 대응 등 다양한 수단을 결합하면서 “가능은 하지만 위험한” 회색지대를 크게 만든다. 이 회색지대가 커질수록, 리스크를 감당하기 어려운 작은 팀은 시도조차 하지 못하고, 데이터 접근은 더 중앙집중화된다. 결과적으로 법적 불확실성 + 기술적 차단 + 협상력 격차가 결합해 ‘AI 개발의 진입장벽’이 된다.



4) 반대되는 글로벌 사례: “열어둔 데이터”가 생태계를 키운 방식


그렇다면 글로벌에는 반대 방향의 사례가 있을까? 있다. 완전히 무제한이라는 뜻이 아니라, 명확한 라이선스·표준·공공성을 바탕으로 “재사용 가능한 데이터 기반”을 제공해 AI 혁신의 토양을 넓힌 사례들이다.


(1) Common Crawl: 공개 웹을 ‘공공재에 가깝게’ 축적한 오픈 코퍼스


Common Crawl은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무료·오픈 웹 크롤링 데이터 저장소를 운영하며, 수백억 페이지 규모의 아카이브를 축적해 왔다. 

이 데이터는 학계와 산업에서 널리 활용되었고, “대규모 언어모델 사전학습 데이터의 핵심 기반” 중 하나로 자주 언급된다. 

핵심은 “누가 써도 되는 공용 인프라”가 있으면, 작은 연구팀도 같은 출발선에서 실험할 수 있다는 점이다. 물론 저작권·프라이버시 논쟁이 계속되고, 차단/삭제 요구도 늘고 있지만(오픈 웹 자체가 갈등의 장이 됨), 최소한 접근의 기본값이 ‘가능’인 구조는 생태계 저변을 넓혔다. 


(2) 위키피디아/위키미디어: 재사용을 전제로 한 라이선스 설계


위키피디아 텍스트는 CC BY-SA 및 GFDL 라이선스 하에 배포되어, 조건(저작자 표시·동일조건 공유 등)을 지키면 재사용이 가능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이렇게 “처음부터 재사용을 상정한 지식 인프라”는 검색, 번역, 요약, QA 등 수많은 AI·정보서비스의 기반이 됐다.


(3) OpenAlex: 학술 메타데이터를 CC0로 공개


OpenAlex는 방대한 학술 연구 시스템 카탈로그를 구축하고, 전체 데이터셋을 CC0(사실상 제약 최소)로 공개한다는 점을 전면에 내세운다. 

이런 오픈 인덱스는 연구 분석·추천·탐색 도구 혁신의 공통 기반이 되며, 특정 기업 데이터베이스에 대한 종속을 줄인다.


(4) data.gov / api.data.gov: 정부 데이터의 ‘개방’이 표준이 된 경우


미국 data.gov는 연방정부의 오픈 데이터 허브로, 수십만 데이터셋을 제공한다. 

또한 api.data.gov는 정부기관의 API 공개를 돕는 무료 API 관리 서비스로 운영되며, 공공 데이터 접근을 “정책 의지 + 기술 인프라”로 뒷받침한다. 


이런 공공영역의 개방은 민간 AI가 공익·산업 모두에 활용할 수 있는 ‘합법적 데이터 기반’을 넓혀준다.



5) 왜 한국 플랫폼은 더 ‘닫는’ 선택을 할까: 명분과 비용의 문제


카카오·네이버가 크롤링과 API를 엄격히 통제하는 데에는 현실적인 이유가 있다.

- 저작권/DB권리/부정경쟁 우려: 콘텐츠 생산자·언론·창작자의 권리 문제, 그리고 플랫폼이 구축한 데이터베이스의 경제적 가치 보호.

- 개인정보/프라이버시 리스크: 커뮤니티·댓글·리뷰 등은 개인 정보가 섞이기 쉽고, AI 학습·재식별 위험이 제기된다.

- 서비스 안정성(트래픽)과 보안: 무분별한 자동 수집은 비용과 장애를 유발한다.

- 협상력의 경제학: “원천 데이터를 가진 쪽”은 AI 시대에 더 큰 협상력을 갖는다.


즉, “닫힘”은 단순히 악의가 아니라 리스크와 비용을 플랫폼이 떠안는 구조에서 자연스럽게 나온다. 문제는 그 결과가 공정한 생태계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데 있다.



6) 벽을 낮추는 현실적 절충안: ‘무제한 개방’이 아니라 ‘조건부 개방’으로


AI 시대에 필요한 것은 “다 열어라/다 막아라”가 아니라, 데이터 접근의 규칙을 명확히 하고, 합법적·지속가능한 통로를 설계하는 것이다. 아래는 플랫폼·생태계 관점의 절충안들이다.

1. 연구·공익 목적 데이터 접근 트랙(샌드박스) 신설

Common Crawl, OpenAlex처럼 “모두에게 개방”이 어렵다면, 최소한 대학·비영리·공익 프로젝트에 대해 일정 범위의 데이터 접근을 허용하는 제도적 트랙을 만들 수 있다. 데이터는 샘플링/비식별/기간 제한/쿼리 제한으로 통제한다.

2. ‘학습용 라이선스’와 ‘검색/인용용 API’ 분리

AI 활용은 (a) 학습(pretrain/fine-tune)과 (b) 검색/요약(실시간 인용)로 목적이 다르다. 목적별로 권리·보상·노출 방식을 분리하면, 창작자 보호와 AI 혁신을 동시에 설계하기 쉬워진다.

3. 명확한 robots.txt/ToS 표준 + 투명한 집행

네이버처럼 robots.txt를 적극 활용한다면(그 자체는 표준적 접근), 무엇을 왜 막는지, 어떤 봇/어떤 목적이면 협상 가능한지 같은 예측 가능성을 높여야 한다. 예측 가능성이 생기면 작은 팀도 합법적 경로를 설계할 수 있다. 

4. 데이터 제공 범위 확대 대신 ‘안전한 파생물’ 제공

원문 전체를 내주기 어렵다면, 통계·집계·트렌드·임베딩(역추적 방지) 같은 파생물을 제공해도 제품 혁신에 충분히 기여할 수 있다. 정부의 오픈데이터가 원문이 아니라 구조화된 형태로 가치가 나는 것과 유사하다. 



맺음말: 데이터의 문을 닫으면, 혁신의 문도 함께 닫힌다


카카오와 네이버가 보여주는 강한 통제(크롤링 차단, API 범위 제한)는 저작권·프라이버시·안정성이라는 명분 위에 서 있다. 하지만 그 통제가 “협상력 있는 소수만 데이터를 쓰는 구조”로 굳어지면, AI 시대의 혁신은 플랫폼 내부로 수렴하고 생태계의 다양성은 약해진다. 반대로 Common Crawl·위키피디아·OpenAlex·data.gov 같은 글로벌 사례는, 완벽하진 않아도 “재사용 가능한 데이터 기반”이 얼마나 큰 혁신을 낳는지 보여준다. 


결국 핵심 질문은 이것이다.

“플랫폼의 데이터 보호”와 “사회 전체의 AI 혁신” 사이에서, 어떤 규칙과 인프라를 만들 것인가?

벽을 완전히 허물기 어렵다면, 최소한 합법적이고 예측 가능한 문(조건부 개방의 통로)을 넓히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래야 AI 시대의 경쟁이 “데이터를 가진 자”만의 게임이 아니라, “아이디어와 실행력을 가진 자”에게도 열려 있는 게임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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