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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설반장 Aug 16. 2020

[마이로컬] #2. 태터드 커버 북스토어, 콜로라도

이상한 책방에서 이상적인 책방이 된 미국 최대의 독립 서점


제가 로컬에 대한 사례를 조사하고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은 해놓고 미처 제목은 정하질 못했습니다. 처음엔 리얼로컬이라는 제목을 붙였었는데 조금 도발적인거 같기도 하고, 로컬이라는 단어가 널리 쓰이기 시작하고 있는 지금, 의미나 정체성이 아직 딱 정해진 단어가 아니어서 저와 다른 로컬의 관점을 가지신 분들이 보시면 불편하게 보실 수도 있을거 같아서 마이로컬로 이름을 바꾸게 되었습니다. 네, 이 로컬의 얘기들은 저의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니까 가볍게 봐주시면 좋을거 같습니다. (또 언제 바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이번에 얘기하고 싶은 곳은 콜로라도 덴버에 있는 태터드 커버 북스토어라는 곳입니다. 태터드 커버 북스토어는 제가 2011년도에 쓴 졸서 <서촌방향>에서도 한번 소개한 적이 있는 곳입니다. 우연한 기회로 방문하게 된 뒤, 로컬 공간에 대한 의미와 철학에 대해서 고민해보게 되었습니다. 로컬씬이나 책방의 우수 사례로 츠타야는 많이 들어보셨을테지만, 아마 태터드 커버 북스토어(이하 태터드 커버)라는 곳은 좀 생소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흔히 츠타야는 라이프 스타일을 제시하는 무인양품의 서점화 된 공간이라고 보는 편이고 지역을 기반으로 운영되는 곳이 아니라서 제가 생각하기엔 독립서점이나 로컬 공간이 벤치마킹 할 곳이라는 느낌은 아닌거 같은데, 한국에서는 서점의 미래라고 부르며 앞으로 서점들이 가고자 하는 방향의 선진사례로 손꼽는 것 같더라고요.(물론 배울 점은 있겠지만요) 그런 면에서 이번에는 개인적으로 지역 기반 로컬숍과 독립서점의 모범사례와 미래라고 생각하는 태터드 커버의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태터드 커버 북스토어는 1971년 미국 콜로라도 주 덴버에서 처음 문을 열고 약 50년 째 여전히 운영되고 있는 서점입니다. 반즈앤노블, 아마존이 생겨서 많은 독립서점들이 폐업했지만 태터드 커버 북스토어는 꾸준히 성장해서 2호점, 3호점 역시 덴버에 자리 잡았습니다. 지점은 확장해도 덴버를 절대 떠나지 않는, 마치 대전의 성심당, 울산의 구암문고 같은 서점입니다.




2008년 여름, 미국 콜로라도의 주도인 덴버에 친구가 살고 있어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친구는 저와 태터드 커버라는 곳에서 만나자며 약속을 잡았습니다. 독특한 이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태터드는 '낡을 대로 낡은, 누더기가 된, 다 망가진' 이란 의미로 태터드 커버 북스토어는 말 그대로 '낡은 표지의 책방'이란 뜻입니다. 시간이 느껴지는 그런 이름이죠. 흔히 시내에서 약속을 잡으면 랜드마크가 되는 곳을 선택하게 됩니다. 덴버에는 스타벅스가 함께 있는 반즈앤노블도 있었는데 태터드 커버라는 곳에서 보자니까 좀 신기하게 느꼈던 것 같습니다.


아무튼 현장을 갔을 때 세가지에 놀랐는데, 첫째는 대형 체인이 아닌 서점이 시내의 아주 좋은 위치에 있던 것에 놀랐고, 둘째는 서점 치고는 생각보다 큰 규모의 책방에 놀랐고, 셋째는 생각보다 편안한 분위기에 또 놀랐습니다. 특히 서점 안 분위기는 지금까지 제가 본 서점과는 달라도 한참 달랐습니다. (저는 어렸을 적 어머니와 함께 교보문고를 자주 갔는데 바닥 카페트에 쪼그려 앉아 책을 읽고 있던 사람들을 기억하는 세대입니다.) 내부는 전반적으로 기둥과 천장을 나무로 마감하여 목시율을 높여 은은한 분위기를 이루고, 바닥은 짙은 녹색으로 마감 처리를 해서 마치 숲에 온 듯한 편안한 느낌을 줬습니다.


책의 숲 같은 느낌의 공간



책은 딱딱하게 정리가 되어있는게 아니라 자유롭게 배치되어 있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리고 곳곳에 다양한 쇼파들과 의자, 책상 그리고 조명들이 있었습니다. 손님들 분위기도 쫓기듯 책을 고르는 것이 아니라 편안하게 앉아 책을 즐기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나중에 글을 쓰기 위해 조사하며 안 사실이지만, 태터드의 단골 손님들은 원하는 조명을 원하는 책상에 가져가서 책을 읽을 수 있도록 해준다고 합니다. 서점 한쪽에는 아이들을 위한 전용 코너도 준비되어 있습니다. 독서에 대한 즐거움과 몰입도를 높일 수 있도록 아이들이 좋아하는 디즈니 캐릭터와 동물 인형들이 곳곳에 배치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태터드 커버가 추천하는 어린이 도서가 마치 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처럼 책상 위에 자유롭게 놓여있습니다. 서점에는 덴버의 한 인터넷회사에서 무료로 무선인터넷을 제공하고 있었습니다! (2008년도 당시 미국의 공공장소에서 무료로 비싼 무선인터넷을 쓰는 건 찾아보기 힘들고 귀한 일이었습니다.) 책방 매출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는 문구 코너에선 현지 예술가들을 위해 자리를 내어주고 있었는데 로컬라이징을 중요하게 여기는 태터드 커버의 성향을 잘 엿볼 수 있었습니다.


아이들의 공간
자유롭게 놓여진 책들
책장 역시 서점이나 도서관 스타일이 아닌 자유로운 집의 책장 분위기로 연출 되었다.
로컬 작가들의 엽서 코너
다양성!
엄청나게 편해보이던 쇼파
자유롭고 편안한 분위기에서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는 손님들
콜로라도의 인터넷 회사 foreThought.net 에서 제공하는 무료 무선인터넷




제겐 태터드 커버의 모든 곳이 흥미로웠고, 인상적이었지만 그 중에서 제일 감동적이었던 곳은 2층의 한 쪽 벽에 걸려있던 노인의 사진이 담긴 액자였습니다. 액자에 있는 인물이 누군지 궁금해서 명판을 읽어보니 '소중한 태터드 커버의 고객이었던 조지 스로씨를 추모하며'라고 쓰여있습니다. 창업자는 아닌거 같은데 어떤 유명인물인 줄 알고 인터넷에서 검색해봤지만 아무리 뒤져봐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스태프에게 물어보니 그는 덴버의 평범한 주민으로 매일같이 태터드 커버에 들러 벽난로 앞 햇빛이 잘 드는 소파에 앉아 책을 읽던 단골손님이었다고 합니다. 단골이 앉던 자리와 모습을 액자로 영원히 보존해놓은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유명한 곳이라면 유명인의 사인이 벽에 가득 붙어있는 유명인 마케팅에 둘러싸여 살아온 저에겐 대단히 충격적인 모습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서점에서 주구장창 죽치고 앉아 책을 읽는 손님은 진상으로 보일 수도 있을텐데 말이죠. 조지 스로씨의 추모 모임도 태터드 커버에서 있었다고 합니다.  


태터드 커버의 단골 손님이었던 조지 슬로씨.
그가 즐겨 앉아 책을 읽던 자리가 그대로 보존되어 있었다.
다른 지점에도 단골들의 인형이 제작되어 전시되어 있다.



*태터드 커버 북스토어, 미국 최대의 독립서점이 되다.

책은 모이고 쌓여있으면 생각보다 꽤 많은 위압감과 긴장감을 줍니다. 하지만 태터드 커버 북스토어는 마음이 진정되는 효과가 있습니다. 어떤 책을 찾느냐고 험상궂게 묻는 게 아니라 어떤 책을 읽고 싶냐고 자상하게 물어보는 것 같은 느낌입니다. 실제로 태터드 커버는 직원도 손님들에게 책을 추천하는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은퇴한 선생님이나 변호사 등 책과 밀접한 관련을 가진 사람들을 채용한다고 하고, 직원마다 책장을 하나씩 만들어줘서 손님들과 책장을 공유하기도 한다고 합니다. 가게가 이전 할 때는 지역 주민들과 단골 손님들이 책을 나르는걸 돕기도 했었다고 하네요. 미국 작가조합이 주는 상도 받은 태터드 커버는 1년에 500∼600가지 행사를 하고, 저자 초청행사에는 J.K. 롤링을 비롯해 빌 클린턴,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도 왔다니 지역 사회에서 영향력이 제법 큰거 같습니다.  2017년부터 태터드 커버의 새로운 주인이 된 Vlahos씨의 인터뷰를 읽어보니 운영 철학을 정확하게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독립 서점을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우리가 지역 사회에 뿌리를두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역 사회에 참여하고, 지역 사회에 환원하고, 지역 사회에 봉사하고, 지역 사회를 알고 있습니다." 


독립 서점의 정의라고 볼 수도 있을거 같습니다. 사소한 소품의 배치까지 본사의 가이드라인을 따르고, 지극히 경제적인 관점으로 공간을 구성하는 획일화 되고 개성 없는 대형 프랜차이즈 매장과는 달리 태터드 커버 북스토어에는 지역 사회를 기반으로 구석구석 따뜻함이 있었습니다. 그 결과 태터드 커버는 8년 만에 7배나 성장했고, 처음 2명이던 직원이 150명으로 늘었다습니다. 지금은 미국 최대의 독립서점으로 성장했습니다. 로컬적인 관점에서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가득했던 서점, 태터드 커버의 이야기 재밌게 들으셨나요? 코로나 시대가 극복되면 언젠가 다시 한 번 가보고 싶은 곳입니다. 


마지막으로 루이스 버즈비의 <노란 불빛의 서점>이란 책에서 묘사한 태터드 커버 북스토어의 장점과 특징을 소개하고 마무리하겠습니다.


새로 등장한 대형서점의 모범 사례는 덴버에 있는 태터드 커버다. 서점에는 널찍한 신문 잡지 판매대와 커피바, 레스토랑이 갖춰져 있다. 몇년 전 태터드 커버는 2호점을 열었는데, 이 매장은 겨우 3층 규모에 지나지 않지만 여러개의 벽난로와 어린이들을 위한 나무 위 오두막집, 독서 홀 등을 갖추었다. 현재 두 서점은 15만 종에 100만 권의 책을 보유하고 있다. 태터드 커버 1, 2호점 어디를 들어가도 마음이 진정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왜냐하면 당신은 오랫동안 이곳을 떠날 수 없으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고, 신간이라면 이곳에서 찾는 편이 현명할 것이기 때문이다. 서점 규모는 당신을 위축시키기 보다는 오히려 안심시킨다. 두 서점 다 작은 방과 칸만이가 된 코너들로 나뉘어 있는데 안락의자, 긴 소파식 의자, 독서용 램프 등이 갖춰져 있다.


+

이 곳에 보다 관심이 있으시다면 태터드 커버의 40주년을 기념하며 고객들이 보낸 편지들을 모아둔 페이지를 보시는 것도 추천 드립니다. (Customer 가 아닌 Readers 라고 표현한 것도 흥미롭습니다.)

https://www.tatteredcover.com/tattered-memories-40-years




인상적이었던 종이포장봉투의 문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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