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심부름 활동을 하며 2020.12.13
1.
서촌은 2만여명이 살고 있는 작은 동네지만, 아직 내가 모르는 분들이 많이 살고 계신다. 물론 나를 모르는 분들도 태반이다. 그래서 예전에 뭣도 모를 땐 어디가서 내가 동네를 잘 안다고 말하고, 서촌을 대표한다고 소개 받고 얘기하는걸 즐기고 다녔지만 이제는 좀 스스로 부끄럽고 민망하다.
2.
아무튼 오랜 지역 활동을 통해 깨달은건 지역에서 매번 만나는 사람만 만나면 생각도 관점도 콘텐츠도 고인물이 되어 썩기 쉽상이기 때문에 친목질은 특히 주의해야 된다는 주의를 배웠다. 그래서 항상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인연의 씨앗을 심기 위한 다양한 나만의 방식을 현장에서 만들고 찾고 있다. (이건 나만의 노하우가 여러가지 있다.ㅎㅎ) 로컬은 항상 천천히 변하고 있기 때문에 새로운 콘텐츠 발굴을 위한 이런 현장감각은 매우매우 중요하다고 볼 수 있으며 또한 여기저기 자리에 불려다니며 목과 어깨에 들어간 힘을 빼는 과정이 되기도 한다.
3.
여하튼 요즘에 내가 새로운 동네분들을 만나는 방식 중에 하나는 그 동안 지역을 떠나 외국에 머물고 계시다 코로나 때문에 돌아와서 자가격리 하시는 분들이 종종 계시는데, 그 분들을 찾아내서 필요한 것들을 가져다 드리는 심부름 활동이다. 이는 물론 내가 좋아서 하는 자원봉사이기 때문에 따로 비용은 받지 않는다.
4.
오늘은 서촌의 오래된 가게 중 배달을 하지 않고, 오직 픽업만 할 수 있는 영광통닭이라는 곳에서 통닭을 배달해드렸는데 문자를 주고받다 알고보니 우리 동네에 있는 장애아동단체인 푸르메 재단과 관련해서 작은 인연이 있었던 분이었다. 푸르메 재단은 내가 동네에 대해서 쓴 책, 서촌방향의 인세를 전부 기부해서 인연이 닿고 강의를 몇 번 했는데 그 당시에 강의 영상을 만드셨다고 한다.
5.
이렇게 로컬은 알면 알수록 깊으면서 또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있다. 이런 작은 활동들을 통해 직간접적으로 만나는 인연들이 반가운 마음으로 따뜻해지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서늘하며 더욱 겸손해야겠다는 마음이 같이 들었다.
6.
2021년은 코로나 이후의 상황들을 통해 많은 것들이 변하는 라이프 스타일이 자리 잡을 것이고, 작은 신뢰들을 기반으로 행동반경이 최소화 되는 슬세권, 관계소비 등 본격적인 로컬의 시대가 열리지 않을까 싶다. 그에 맞게 나도 서촌을 이전보다 더 깊숙하게 파고들 예정이다.
7.
로컬은 깊다. 탄광처럼 깊게 들어갈 수록 몸을 낮춰야 하고 어둠과 싸워야 하는 힘든 과정이 될테지만, 또한 다이아몬드를 발견할 수 있는 확률이 높아진다는 걸 잊지 말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