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쓰러지셨다.

누군가는 이미 겪었을, 누군가에겐 곧 닥칠 수 있는 일

by 설작가

벌써 만 2년이 흘렀다.

아버지와 있었던 그간의 일들을,

여기저기 흩어놓은 기록들을,

어지러운 내 생각들을

정리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라도 생각을 정리하면

상황도 조금은 정리되지 않을까라는

전혀 개연성 없는 희망을 품고...



2020년 11월.

외할머니께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무슨 일이 일어났구나.


이 시간에 연락하실 리 없는

할머니의 번호가 뜨는 순간

불길한 예감부터 들었다.


"엄마 전화받았냐?"


맞구나...


"너희 아버지 쓰러져서

119에 실려가셨단다."


"예, 예"만 하다 전화를 끊고

바로 엄마에게 전화를 드렸다.


"아버지가 뇌경색으로 응급실에 오셨다.

지금 수술 안 하면 돌아가실 수도

있다고 해서 동의서 썼고

지금 막 수술 들어가셨다."



엄마가 아침에 일을 나가실 때

아버지는 거실에 누워계셨단다.

그대로 나가셨으면 큰일이 났을 텐데

다행히 엄마는 그때 아버지께 말을 건넸고

아버지가 이상하다는 걸 발견하셨다.


소변으로 젖은 이불과 바지를 보고

놀란 엄마는 이게 대체 무슨 일이냐며

아버지를 일으켜 세워보려 했지만

아버지는 몸을 가누지 못하시면서도

그저 컨디션이 안 좋은 것일 뿐

조금 있으면 일어날 수 있다고 하셨다.


엄마가 아버지 팔다리를 아무리 주물러도

전혀 몸을 가누지 못하는 상태가 지속되자

사태의 심각성을 느끼고 119를 부르셨다.

그때도 아버지는 이런 일로 무슨 119냐며

엄마를 타박하셨다.



그때는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전혀 몰랐다. 그저

'아버지가 곧 돌아가실 수도 있겠구나',

'계속 병원생활을 하실 수도 있겠구나',

'아니면 조만간 회복하셔서

일상으로 돌아오시겠지' 정도였다.


2년이 지난 지금 돌아보니 내가 예상한

단순한 시나리오는 모두 빗나갔다.

뇌를 다친다는 것, 간병을 한다는 것은

그렇게 단순하게 말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언젠가 홍혜걸 박사가 방송에서

"세상에서 가장 잔인하고 끔찍한 질병은

혈관질환"이라고 했던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병원에 도착해 아버지를 봤지만

눈을 못 뜨신 채 의식이 없으셨다.

시술은 잘 끝났지만 그 과정에서

약간의 뇌출혈이 있었단다.


일단 고비를 넘겨 다행이었지만

우뇌 손상으로 인한 좌측 편마비로

왼쪽 팔다리를 움직이지 못하셨다.

뇌 손상 때문인지 상황 파악을 못하시고

치매 환자처럼 헛소리를 하셨다.


엄마는 자책과 후회로

눈물을 흘리시며 괴로워하셨다.


'왜 바로 119에 신고하지 않고

괜찮다는 아버지 말을 듣고

시간을 지체했을까'


'아버지가 피곤과 스트레스에 절어

새벽까지 택시 운전을 하는 모습을

보면서도 왜 말리지 않았을까'


엄마는 계속 끝없는 어둠 속으로 빠져드셨고

그걸 옆에서 지켜보기 안타까웠지만

그나마 장성한 두 아들이 곁을 지켜 다행이었다.


난 '이때 이랬으면 어땠을까'하는

후회나 가정을 잘 하지 않는다.

그쪽으로 생각이 퍼져가려 하면

의도적으로 생각을 끊어버린다.

참 편하게 살기 특화된 캐릭터다.


어떤 일이건 또 그 나름의 의미가 있고

느끼는 것이 있고 그 안에서도

누릴 수 있는 행복이 있다고 믿는다.


누군가는 이미 겪었을 일이고

누군가는 곧 겪을 일이다.

다 살아간다. 난 더 잘 살아갈 거다.



그는 인생에서 희망을 감지하는

고도로 발달된 촉수를 갖고 있었다.

희망, 그 낭만적 인생관이야말로

그가 가진 탁월한 천부적 재능이었다.

- <위대한 개츠비> 中 -


나도 어쩌면 이런 천부적 재능을

가진 건지도 모르겠다.

이것이 거짓된 자기 최면이 아니라

나의 진짜 재능이길... 간절히 바란다.


아버지가 거짓말처럼

빨리 회복하시면 좋겠다.

엄마의 시름과 한숨도 잦아들길 바란다.

이 모든 상황이 한때의 해프닝이길...


평생 엄마 고생만 시킨 아버지.

그래도 그런 아버지 없이 못 사는 엄마.


"아빠가 불쌍해.

아빠 인생이 짠하고 불쌍해."


엄마의 말을 들으며

<나의 아저씨>에서 이선균이

아이유에게 했던 대사가 떠올랐다.

아버지가 얼른 일어나셔서 같은 말을

엄마에게 해주셨으면 좋겠다.



"고맙다. 고마워.

거지 같은 내 인생 다 듣고도

내 편 들어줘서 고마워.

너, 나 불쌍해서

마음 아파하는 꼴 못 보겠고,

난 그런 너 불쌍해서 못 살겠다.

너처럼 어린애가 어떻게...

어떻게 나 같은 어른이 불쌍해서...

나 그거 마음 아파서 못 살겠다.

내가 행복하게 사는 거 보여주지 못하면

넌 계속 나 때문에 마음 아파할 거고

나 때문에 마음 아파하는 너 생각하면

나도 마음 아파 못 살 거고.

그러니까 봐.

봐. 내가 어떻게 사나. 꼭 봐.

다 아무것도 아니야.

쪽팔린 거? 인생 망가졌다고 사람들

수군거리는 거 다 아무것도 아니야.

행복하게 살 수 있어.

나 안 망가져. 행복할 거야.

행복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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