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남편으로서가 아닌 나의 아버지, 한 인간으로서의 아버지로 바라보기
아버지는 응급실에서 뇌졸중 집중치료실로,
또 며칠 후 뇌졸중 환자 입원실로 옮기셨다.
입원실에 보호자 접견이 불가했었는데
이젠 보호자 1인이 24시간 상주해야 한다.
엄마가 몇 날 며칠을 계속 계실 수 없어
형과 내가 교대로 병상을 지키기로 했다.
형이 먼저 하룻밤 간병을 했는데
하루에 기저귀를 5번 갈아드렸단다.
"평생 기저귀 한번 안 갈아봤는데
내 인생 처음으로 간 기저귀가
아버지 기저귀가 될 줄은 몰랐다."
형의 말에 피식 웃음이 터졌다.
아이가 없어 기저귀 자체가 생소했을 형이
아버지 기저귀를 갈 때의 마음은 어땠을까.
분명 웃을 수 없는 슬픈 상황임에도
예기치 않게 터지는 웃음들.
곱씹어 보면 가슴 한편이 아린 웃음들.
아버지와 함께 한 내내
이런 블랙코미디는 계속됐다.
나는 2박 3일 휴가를 내고
퇴근하자마자 병원으로 향했다.
아버지는 초밥이 먹고 싶다고 하셨다.
아버지가 쓰러지시기 두 달 전
엄마가 아르바이트하시는 가게에
초밥을 사들고 가서 같이 먹은 적이 있었다.
아버지는 그때가 생각나셨던 걸까?
병원밥만 드시다가 초밥을 맛보시더니
정말 맛있다며 엄지를 추켜올리셨다.
옆 병상 아주머니는 나를 가리키며
아버지께 "이게 누구여?"하고 물으셨다.
"내 아들~
내 아들잉게 딱 알고 이런 것도 사 오제~"
"오메~ 아네, 알아~"
아버지는 정신이 오락가락하셨는데
이때만큼은 초밥 와사비 덕인지
기력과 정신이 돌아오신 것 같았다.
간호사는 나에게 뭘 사 오려면 죽을 사 오지
무슨 환자에게 초밥이냐고 한마디 하셨다.
"아버지가 초밥을 좋아하셔서요."
문득 '이렇게 아버지에게 좋아하는 것이 있고
취향이 확실하다는 건 참 좋은 거'란
생각이 들었다.
난 특별히 가리는 음식도,
특별히 좋아하는 음식도 없다.
만약 내가 병상에 누워있다면
내 아들들은 뭘 사 올지 고민이 될 것 같다.
막걸리를 사 올 수도 없는 노릇이고...
지금부터라도 나만의 취향을 만들어야겠다.
나중에 자식들이 고민하지 않도록...
엄마와 교대하며 주의사항을 인수인계받았다.
지금은 대소변이 마려우면 의사표현을 하신단다.
기저귀가 아니라 통에 받아들이면 되니 편하단다.
(편하다는 말을 이럴 때 쓰는 게
맞는 표현인지는 모르겠지만...)
오롯이 아버지와 단둘이 있는 시간.
언제 이런 시간이 있었던가?
딱히 기억나지 않는다.
상상만 해도 어색하고 당황스럽다.
지금은 단둘이 있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식에게 자신의 치부를 다 드러내는
아버지가 불편하시진 않을지 걱정이었다.
아내에겐 보여줘도 자식에겐 보이고 싶지 않을
모습들이 많이 있을 텐데...
평소엔 아버지에게 먼저 다가가는 것이
쉽지 않았는데 이런 상황에 처하고 보니
내가 아버지에게 다가가는 것이 당연하게 됐다.
온몸을 주물러드리고, 먹여드리고,
닦아드리고, 자주 말을 걸어드렸다.
막상 해보니 그리 어려운 것도 아닌데
왜 그동안 먼저 다가가지 못했을까...
아버지는 나 없이는 아무것도 못하셨다.
아버지는 아이가 되어버렸고
난 아버지의 아버지가 된 것 같았다.
아버지를 여기저기 주물러드리니
아버지는 정말 시원해하셨다.
"민아, 니가 어렸을 때 안마하는 걸 보고
넌 굶어 죽진 않을 거라고 확신했었다.
니 손은 안마에 최적화된 손이여~"
"최적화된 손은 어떤 손인데요?"
"손이 살 전체에 닿으면서 힘 있는 손"
아버지께 안마를 해드린 게 언제였는지도
까마득한데 내 손맛을 기억하시는 게 신기했다.
어릴 땐 참 자주 안마해드렸는데...
아버지가 좋아하시는 모습을 보고
틈만 나면 안마를 해드렸다.
편마비로 자꾸만 옆으로 쓰러지는 아버지를
일으켜 세우며 안마를 하려니
땀이 삐질삐질 흘렀다.
"어디 불편한 데 없으세요?"
"그걸 질문이라고 하냐?
온몸이 다 불편하제~"
우문현답이네~
한 달 전, 인천 집에서 광주 부모님 댁까지
식재료를 챙겨내려 와 부모님께 요리를
만들어드린 적이 있다.
요리를 시작하면서 가장 하고 싶었던 것이
부모님께 음식을 만들어드리는 거였다.
(그때 더 미루지 않고 실행에 옮긴 게
얼마나 잘한 일이었는지...)
그때 다시 집으로 올라가는 길에 아버지와
통화하며 나눴던 대화가 기억난다.
"아버지, 이번에 좀 아쉬운 게 있었어요."
"응? 뭐?"
"이번에 부모님께 안마를 못 해 드린 게 걸리네요.
다음엔 안마해드리러 한번 내려갈게요."
아버지가 내 말을 듣고
"넌 내 아들이지만 참 이상한 놈이여~"라며
껄껄 웃으셨다.
"아버지, 그때 제가 안마해드리러 내려오겠다고
했었는데 진짜 이렇게 와서 안마해 드리네요."
아버지는 내 말을 알아들으신 걸까?
그저 말없이 듣고만 계셨다.
그때 아버지는 이런 말씀도 하셨다.
"나 이제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이 뭔지 알 것 같다."
"뭔데요?"
"감동받는 능력.
그게 제일 중요한 것 같애."
아버지는 감동받는 데는 정말 특화되신 분이다.
이번 뇌손상으로 아버지가 감동받는 능력을
잃어버리시진 않을지 걱정이 됐다.
이 상황에서도 아버지의 그 능력만은
살아남길 간절히 기도한다.
뇌손상 환자가 가득한 이 병실에선
아프다고 소리치고, 담배 달라고 소리치고,
간병하는 가족들의 마음을 후벼 파는 소리가
밤새도록 이어져 뜬눈으로 밤을 새웠다.
멀쩡한 사람도 여기에 있으면
제정신이 아닌 상태가 될 것 같았다.
새벽에 일어난 아버지는 갑자기
아이들이 왔냐며 손자들을 찾으셨다.
난 아버지를 일으켜 앉혀 이어폰을 꽂아드리고
최근 아이들의 영상을 보여드렸다.
아버지는 잘 보이지 않는지 반응이 없다가
조용히 한 말씀하셨다.
"소리가 큰데 다른 사람들 수면에
지장을 주지 않겠냐?"
이어폰이라 괜찮다고 말씀드렸지만
아버지는 못 알아들으셨는지
그 말을 여러 번 하셨다.
뇌세포의 반이 죽어 제정신이 아닌 상황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줄까 걱정하는 아버지.
의사, 간호사들 회식이라도 한번 시켜주게
근처 식당을 알아보라는 아버지.
환자의 신음소리와 불만 가득한 목소리,
보호자의 한숨소리가 가득한 병실에서
유머를 잃지 않고 남을 배려하는
아버지의 모습은 단연 돋보였다.
나는 지금껏 아버지기에
그리 후한 점수를 주지 않았던 것 같다.
한 사람으로서, 나의 아버지로서가 아닌
엄마의 남편으로서의 아버지를 바라봤다.
엄마를 힘들게 할수록 평가는 박해졌다.
정작 피해 당사자인 엄마는
참고 용서하고 풀었을지 모르겠지만
내 마음 깊은 곳에서는 여전히 아버지에 대해
풀지 못한 감정들이 남아있었던 것 같다.
그런 앙금을 깨끗하게 털고
엄마의 남편이 아닌 나의 아버지,
한 인간으로서의 아버지로 다시 바라볼 수 있는
계기를 아버지가 직접 만들어주신 것 같다.
나에게 다시 한번의 기회가 생겼다.
남은 시간, 최선을 다하고 싶다.
더 이상 그 어떤 후회나 미움도 남지 않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