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기 전까지 농담을 하고 싶다는 꿈

한 마디의 유머, 웃음, 미소가 가진 힘

by 설작가

하룻밤을 뜬눈으로 지새니 정신이 몽롱했다.

장기간 병간호하는 가족들은

육체적 정신적으로 얼마나 힘이 들까...


나도 나이가 들어서인지 주변에

부모님이 뇌졸중으로 투병하시는 분이 많다.

그 소식을 접할 땐 그저 '어쩌나, 힘들겠다' 정도였지

그들이 겪는 고통에 대해 깊게 생각해보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닥쳐보니 체감하는 정도가 다르고

참 다양한 감정이 느껴진다.


이 지난한 과정 속에서 가족 친지들 서로

상처받지 않도록, 오해나 서운함이 없도록

언행에 더욱 신경 써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번 일을 겪으며 주변에서 많은 위로와

걱정어린 연락을 받고 있다.

오히려 나보다 나를 더 걱정하고

위로해주는 고마운 사람들이 많았다.

사실 이런 상황에서 한마디의 말을 건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란 걸 안다.

그걸 알기에, 그 진심어린 마음들이 감사하다.



아침 식사시간.

자꾸만 한쪽으로 쓰러지는 몸을 세워드리며

밥을 떠먹여드리고 흘린 음식을 닦아드리니

아버지가 진짜 아이가 된 것 같았다.


식사 후 양치를 시켜드리고 나니

한결 기분이 좋아지신 듯 나가자고 하셨다.


아버지를 휠체어에 앉히는 건 처음이었다.

아버지를 겨우 휠체어에 앉혀드리고 나니

숨이 차고 땀이 줄줄 흘렀다.


아버지가 쓰러지지 않도록 아버지 몸을

수건으로 감싸매고 휠체어를 몰았다.

1층 로비에 나가자 아버지께서는

커피 향이 참 좋다며 한잔 마시잔다.


뜨거운 커피를 먹여드리려고 하니

불편하다며 혼자 드시겠단다.

뇌가 다쳐 시야 확보도 잘 되지 않고

감각도 둔해진 아버지는 뜨거운 커피를

줄줄 흘리셨지만 끝까지 혼자 드시길 고수하셨다.


아버지는 이미 커피로 얼룩진 마스크를 쓰셨다.


"커피향이 은은하니 좋네~"


"아버지가 커피 흘리시길 잘하셨네요~"



그렇게 한 시간 정도 바람을 쐬고 들어와

재활치료실로 향했다.

아버지가 재활운동을 하시는 동안

난 옆에서 트레이닝 코치가 된 듯했다.


"고개 드세요! 왼쪽에 힘 주세요!

더, 더! 좋습니다. 쫌만 더 힘내세요!"


아버지는 보란 듯이 열심히 페달을 굴리셨다.

종료 알람이 울리고 재활치료사분이 그만하라고

하시는데도 아버지는 멈추지 않으셨다.

'나 아직 살아있다! 할 수 있다!'고

온몸으로 외치시는 듯이.


재활이 끝나고 나오며 아버지께 말했다.


"잘하시는데요? 이렇게 열심히 하시면

금방 일어나실 수 있겠는데요?"


"그걸 말이라고 하냐?

당연히 금방 일어나지!"


아버지의 자신감과 기백만큼은 인정이다.



갑자기 아버지가 소변이 마렵단다.

병실까지 참으실 수 있냐니 못참겠단다.

화장실로 가면 되지 왜 병실까지 가느냔다.

아버지는 본인의 상태가 대수롭지 않은 거라

생각하시는 것 같았다.


그래, 한번 해보지 뭐~

아버지를 모시고 화장실에 갔는데...

뭐야? 장애인 화장실이 없었다.


"소변기 옆에 손잡이 잡고 누면 되지

뭐가 문제냐?"


하... 그러게요... 뭐가 문젤까요...

지금은 달리 방법이 없었다.

한참을 낑낑대며 아버지를 안고 일어서서

장애인용 안전바를 잡게 하는 데까지 성공!


지금껏 이 안전바를 사용하는 사람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는데 이게 누군가에겐 이토록

절실한 시설이었는지 처음 느꼈다.


"아버지, 꽉 잡고 계셔야 해요!"


왼팔로 아버지를 감싸 안고

오른손으로 아버지 바지를 내리려는 순간

아버지가 다급하게 외치셨다.


"잠깐!"


"?"


"내 물건은 내가 만져!"


누워계실 때 대소변 받아드리면서

볼 거 다 봤는데 이제 와서 갑자기 왜 이러시나~

누워계실 땐 자는 척이라도 하셨지만

지금은 그럴 수도 없으니

민망하실 수 있겠다 싶었다.


할 수 없이 난 양팔로 아버지를 붙잡았고

우여곡절 끝에 소변 보기에 성공했다.

옷에 꽤 흘리긴 했지만,

온몸엔 땀이 흥건했지만

우린 해냈다는 성공의 기쁨을 가득 안고

다시 병실로 돌아왔다.



아버지는 또 담배를 찾으셨다.

계속 있지도 않은 환자복 주머니를 뒤지셨고

허공에 손짓을 하며 담배를 잡으려 했고

저기 있는 담배를 가져오라는 말을 반복하셨다.

요즘 반복되고 있는 '섬망 증상'이었다.


여기 담배가 어디 있냐며 무안을 주기보다는

아버지가 담배라고 믿고 가리키신 것들을

하나씩 다 갖다 드렸다.


담배를 못 찾아 실망한 아버지가 말씀하셨다.


"담배랑 라이타, 형이 집어가브렀냐?"


"형은 왜 그런다냐?

자기가 돈 주고 사서 피워야제

왜 남의 담배를 돌라가븐다냐?"


"내가 그렇게 치사하게 안 키웠는데..."


아버지는 담배를 형이 훔쳐갔다고 믿었다.

낙심한 아버지는 고민에 빠지신 듯했다.

한참 후 다시 내게 물으셨다.


"너 담배 어디 있는가 생각 안 나냐?"


"모르겠는데요."


"이거 보통 일이 아니네.

괜한 돈 낭비가 생겨브렀어."


지금 이 상황에서 담배 한갑 잃어버린 게

보통 일이 아니라니...


미련을 못 버린 아버지는 옷걸이에 걸린

내 잠바를 보며 주머니에 담배가 있을 거란다.


"이건 제 옷이에요. 보세요. 없어요~"


아버지는 이번에도 낙심한 듯 말씀하셨다.


"그렇지. 느그 형이 그렇게 허술한 놈이 아니지.

거기 숨겨놨을 리가 없지."


어디까지가 농담이고 어디까지가 진담인지

종잡을 수 없는 대화가 계속됐다.


잠시 후 또다시 담배를 달라고 하셨다.

이번엔 나도 아버지를 한번 떠봤다.


"아버지, 그거 형이 가져갔잖아요~"


그랬더니 아버지는 날 때리는 시늉을 하더니

웃으며 말씀하셨다.


"이놈이, 느그 형이 도둑질한다고

너는 거짓말을 하냐? 똑같은 놈들이구만.

이래서 가문이라는 게 중요한 거다."


엥? 거짓말인 걸 아시네?

어디까지가 진짜인 거야?

그 가문 수장이 아버지인 건 모르시나?


"느그 형이 아침에 뭐라고 했는 줄 아냐?

커피를 흘려서 계속 커피향이 난다고 했더니

나보고 커피 흘리길 잘했다고 하더라.

그게 애비한테 할 소리냐?"


나랑 아침에 있었던 일을

아버지는 형과 있었던 일로 착각하셨다.

아버지는 이렇게 계속 오락가락 하셨다.


형과 통화하며 아버지와 있었던 일을 전해주니


"농담이야, 진짜야?

야, 그러다 아버지가 나를 진짜 도둑놈으로

아시면 어떡하냐? 내가 가져간 게 아니라고

꼭 전해드려!"


전화를 끊고 아버지께 가서 말씀드렸다.


"아버지, 형이 꼭 전해드리라는 말이 있네요."


"뭔데?"


"형이 담배랑 라이타 안 가져갔대요."


아버지는 피식 웃으셨다.


"전해달라는 게 담배 한 보루도 아니고

고작 그 말 한마디 전해주라고 하디?

쪼잔한 놈!"


"너 아니면 느그 형 둘 중 하나가 가져갔을 건데

이놈이 남 탓으로 돌리네~"


아무리 슬픈 상황에서도 웃음과 행복은 있다.

특히 아버지의 유머는 이 상황에서 더욱 빛났다.


사람들이 나에게 소원을 물었을 때 난 늘

"죽기 직전까지 농담을 하다 죽는 것"이라 말했다.

실제로 난 그럴 수 있을 것 같았다.


내 대답을 들은 누군가가 나에게

"넌 참 꿈도 크다"고 말했던 기억이 난다.

그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 줄 아냐고.

병실에 있어보니 그 말이 이해됐다.

이런 상황에서 농담을 던진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뇌의 기능이 온전치 않고

편마비로 거동도 힘든 상태의 아버지가

시도 때도 없이 농담을 던지는 모습은

존경스러울 정도로 멋있었다.



그날 원무과를 오가며 서류를 떼느라

바삐 움직이며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휠체어에 앉은 할머니가 내게 손짓을 하며

뭐라뭐라 알아듣지 못할 말씀을 하셨다.

그분 역시 뇌를 다친 환자인 것 같았다.

보호자분께서는 그런 할머니를 말리며

나에게 죄송하다는 듯 멋쩍게 웃으셨다.


난 괜찮다며 보호자와 할머니께 눈인사를 했다.

그 할머니는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시면서

날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윙크를 하셨다.


순간 난 빵 터졌다.


무거운 공기 속 웃을 일 하나 없는 상황에서

근심과 걱정, 피곤에 절어 있는 이들에게

한마디의 유머와 웃음, 미소가 가진 힘이

얼마나 대단하고 값진 것인지 몸소 체험했다.


누군가의 말처럼

죽기 전까지 농담을 하고 싶다는 꿈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도 알게 됐지만

그 꿈이 얼마나 멋진 것인지도 알게 됐다.

내 꿈은 여기에서 더 확고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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