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에겐 아무 것도 아닌 일상이겠지만...
병원에서의 몽롱한 둘째 날.
아버지 택시회사 동료분들이 왔다 가셨다.
감사하게도 직원분들이 십시일반으로 모은
봉투를 전달해주고 가셨다.
택시는 시간이 돈일 텐데...
바쁜 시간 쪼개 와주신 마음들이 감사하다.
아버지는 그 정신에도 내게 그분들이
봉투를 주고 가지 않았냐며 달라고 하셨다.
아버지는 시야에 문제가 생겨
봉투에 적힌 이름도 잘 읽지 못하셨다.
내가 봉투에 적힌 이름과 금액을 불러드렸다.
아버지는 이름과 액수가 나올 때마다
"아이고~" "많이 했네~" "OO도 했어?"
라며 리액션을 하셨다.
"민아, 얼른 요 앞에 괜찮은 횟집 예약해라."
"네? 무슨 횟집이요?"
"여기까지 왔는데 그냥 보내면 안 되제~"
"여기가 어딘데요?"
"바닷가까지 왔으면 회는 먹여서 보내야제~"
아버지는 이곳이 바닷가인 줄 아셨다.
아버지의 기억은 어디에서 멈춘 걸까?
"그분들 다 가셨어요. 아버지 퇴원하시면
그때 자리 한번 만들게요."
"아니다. 이런 건 바로바로 보답을 해야 한다."
아버지는 지금 본인의 상황이 어떤지
전혀 파악을 못하고 계셨다.
아버지는 자꾸 내 잠바 주머니에 손을 넣어
봉투를 빼내셨고, 있지도 않은 본인
환자복 주머니에 봉투를 넣으려 하셨다.
형이 담배를 훔쳐갔다고 믿으시더니
이젠 나도 못 믿으시나 보다.
"아버지, 제가 잘 보관했다가 엄마 드릴게요.
아버지 환자복엔 주머니 없어요~"
이때까지는 몰랐다.
아버지는 뇌를 다치신 후로 몇 가지 망상과
집착이 생겼는데 '돈'이 그중 하나였다.
아버지는 그 후로도 몇 번을 말씀하셨다.
"얼른 식당 예약해라."
"그때 니가 사 온 초밥 맛있던데
거기서 도시락 20개 정도 주문해서
소주랑 맥주랑 같이 사무실 갖다 드려라."
본인 몸 챙기기도 바쁜 이 와중에도
신세에 보답하려는 마음이 짠했다.
오늘은 마지막 MRI를 찍으러 가는 날이다.
MRI를 보고 더 악화되지 않으면 퇴원이란다.
의사는 이 병원에서는 더이상 할 치료가 없다며
재활병원 입원을 권유했다.
아버지를 휠체어에 모시고 MRI를 찍으러 갔다.
지난번엔 아버지가 계속 움직이셔서 촬영에
실패했는데 제발 이번엔 잘 협조해 주시길...
밖에서 대기하고 있는데 관계자가 왔다.
아버지가 자꾸 움직이셔서 촬영이 어렵다며
나에게 들어와서 아버지를 설득해보란다.
"아버지, 절대 움직이시면 안 돼요.
조금만 움직여도 촬영이 안 된대요.
손발 올리시면 머리까지 흔들리니
딱 30분만 가만히 계세요."
간호사는 내게 밖에서 아버지를 지켜보며
아버지가 움직이실 때마다 마이크로
움직이지 말라고 말을 하란다.
아버지는 자세가 불편한지
자꾸 다리를 올리고 손을 움직이셨다.
밤에 주무실 때에도 계속 뒤척이시는데
가만히 계실 아버지가 아니었다.
간호사는 아버지가 움직이실 때마다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계속 이러시면 촬영이 어렵겠는데요.
조금만 더 해보고 안 되겠으면
약물 투여를 해야 할 것 같아요."
간호사의 말을 듣고 조바심이 났다.
아버지 팔뚝은 주사 자국으로 빈 곳이 없었다.
혈관을 찾지 못해 여기저기를 찌른 탓이었다.
여기에 또 주사 바늘을 찌른다고?
지금까지의 고생이 다 허사가 되는 것도 아까웠다.
그럴수록 난 마이크에 대고 아버지를 다그쳤다.
"아버지! 움직이면 안 돼요!
스톱! 차렷! 이러면 촬영 안 돼요!
발, 발! 손 내리세요!"
아버지는 내 목소리가 들릴 때면
올리려던 팔다리를 내리셨다.
얼마나 갑갑하실까...
일반인도 30분을 부동자세로 있기 힘든데
하루 종일 누워만 계신 분에게,
뇌손상으로 인지가 정상이 아닌 분에게
너무 무리한 요구를 하는 건 아닌가 싶었다.
아버지를 다그치다가 문득
내가 지금 뭘 하는 건가 싶었다.
아버지에게 상처만 주고 있는 건 아닐까?
뒤늦게서야 난 말투를 바꿨다.
"아버지, 힘드시죠? 잘하고 계세요.
쫌만 참아주세요. 다 왔어요~"
원래 MRI실 입장이 금지되어 있지만
사정상 결국 마지막 몇 분은 내가 들어가서
아버지 팔다리를 잡고 촬영을 마무리했다.
"아버지, 진짜 잘 참으셨어요. 힘드셨죠?"
해냈다! 우리가 해냈구나!
휠체어 타고 로비 커피숍 가기,
재활치료, 서서 소변보기, 양치하기,
손님맞이, MRI 촬영까지...
누가 보면 아무것도 아닌 일상이겠지만
아버지에겐 엄청난 일들을 성공한 날이었다.
저녁에 엄마가 나와 교대하러 병원에 오셨다.
엄마는 아버지께 물으셨다.
"시원한 반시 하나 줄까?"
"응? 지금이 몇 시지?"
아버지는 정신이 없으신 것 같았다.
"7시 7분"
"그럼 아직 시간이 남았는데~
반시는 반시에 먹는 것이 반시에 대한 예의네"
시도 때도 없는 개그본능...
(아니, 정확히 7시 7분에 치신 아재개그...)
맛있다며 금세 반시 하나를 뚝딱 다 드셨다.
"하나 더 줘~"
밤에 뭘 많이 드시면 소화도 안 되고
반시는 많이 드시면 변비 생길 수 있다고 하니
"반시를 반시로 남기기엔
반시에게 미안하잖아.
하나를 더 먹어야 온시가 되제~"
엄마는 이 상황에 계속 실없는 농담을 던지는
아버지를 보고 한숨을 푹 쉬며 말씀하셨다.
"웃긴가? 지금 재밌어?"
아버지가 답하셨다.
"아니.
눈물 나~"
아버지의 여유. 이런 개그가 참 좋다.
아버지는 엄마보다 내가 백배 편하다고
엄마보고 들어가시란다.
엄마도 내심 내가 있어주길 바라는 눈치다.
"민이 너는 상대방 마음을 참 편하게 해 줘.
환자의 마음을 배려해주는 게 느껴진다."
아버지가 그렇게 느끼신다니 다행이었다.
그런데... 내가 하룻밤을 더 새울 수 있을까?
내가 아직 젊고 건강해서 천만다행이다.
그동안 운동 열심히 한 보람이 있구나.
앞으로 몸 관리를 더 잘해야겠다.
가족을 위해서라도.
엄마를 보내드리고
이렇게 아버지와 또 하룻밤을 보내게 됐다.
내 인생, 아버지와 함께 하는 가장 긴 시간.
아버지와 또 어떤 추억들을 남기게 될까.
걱정 반, 기대 반.
병실에 또 밤이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