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싸움의 출발점에 서다.
아버지는 입원 하루 만에 퇴원을 하셨다.
하루에 한 번씩 퇴원을 하시네~
빨리 호전되셔서 진짜 퇴원을 하셔야 할 텐데.
새로 입원한 병원은 외관부터 달랐다.
리모델링을 한 건지 내부는 더 좋았다.
어제 그 병원을 봐서인지 모든 게 좋아 보였다.
큼지막한 통유리로 된 병실 창으로
눈부신 햇살이 쫙~ 들어왔다.
넓은 재활치료실에는 운동기구가 넘쳐났고
재활치료사도 여러분 계셨다.
환자들도 재활 의지가 넘치시는 것 같았다.
시간표를 보니 식사시간 빼고는
계속 재활치료와 운동이었다.
아버지 가까운 곳에 TV도 있었다.
아버지가 좋아하는 손흥민 경기를 틀어드렸다.
"손흥민 또 경기했냐?
새끼, 축구도 잘하고 참 이뻐~"
아버지는 TV 화면이 보이긴 하시는 걸까?
아마도 본인이 보이는 좁은 세상이
세상의 전부라고 알고 계실 거다.
그래도 소리라도 들으실 테니...
마침 점심식사 시간이다.
병원 밥이 어떻게 나올지 궁금했다.
비빔밥이 나왔는데 식당 밥 못지않았다.
아버지는 모처럼 맛있게 잘 드셨다.
여러모로 마음이 놓였다.
아버지가 앉아서 히죽히죽 웃고 계신다.
병원도 안락하고 밥도 맛있고
아버지 기분까지 좋아 보이니 참 좋다.
자세히 보니 아버지가 뭐라고 중얼거리신다.
"푸라우~"
"네? 뭘 풀어요?"
"풀 아웃~"
"풀 아웃이요? 그게 뭐예요?"
"요 앞에 앉아있던 놈들 다 어디 갔냐?"
아버지가 또 헛것을 보신 모양이다.
"이 앞에 누가 있었어요?"
"응~ 나랑 카드 치던 놈들 다 어디 갔냐?"
그새 누구랑 카드를 치신 모양이다.
아버지가 자유로운 곳은 상상 속뿐이었다.
"풀 아웃이 카드 용어예요?"
"응~ 훌라에서 내 카드를 다 낼 때..."
풀 아웃인지 훌 아웃인지 폴 아웃인지
아무튼 그런 게 있는 모양이다.
아버지는 옛날부터 노름으로
엄마 속을 꽤나 썩이셨다.
환상 속에서 담배를 보시더니
이번엔 환상 속에서 카드를 치시네~
아버지는 흡족한 표정으로 말씀하셨다.
"나 40만 원 땄어~"
엄마가 한숨을 푹 쉬며 말씀하셨다.
"무슨 카드 쳐서 돈을 따~
그런 소리 그만해~"
"나는 안 쳤어. 자리만 빌려주고 땄어~"
그동안 엄마한테 얼마나 핑계를 대셨으면
이 정신없는 상황에서도 둘러대신다.
다년간 쌓인 내공이 이런 거구나.
아버지는 조용히 혼잣말을 하셨다.
"하나님이 나 담배 사라고
40만 원을 주셨네~"
카드에 이은 담배 콤보다.
기승전 담배.
엄마는 그런 아버지가 한심하다는 듯
말씀하셨다.
"무슨 하나님이 도박으로 돈을 주신당가~"
"아니네.
하나님은 늘 이런 식으로 돈을 주시네.
티 안 나게~"
하루아침에 왜 날 이렇게 만들었냐고
하나님을 원망해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에서
하나님이 돈을 주셨다며 감사하는 아버지.
참 긍정적이셔서 좋네~
형이 전화로 아버지 상태를 물었다.
"입원 잘 하셨고, 병원 시설이 아주 좋아.
밥도 잘 나오고 재활시스템도 아주 좋네.
또 긍정적인 건 아버지 상태가 좋아.
기분도 좋으시고~"
아버지가 40만 원 따서 기분이 좋으셨다는
얘기를 들은 형이 말했다.
"멍청한 놈아, 그게 뭐가 긍정적이야~
또 헛것 보고 헛소리하신 거 아니야~"
"그래도 돈 잃어서 슬픈 것보다
돈 따서 기쁘신 게 낫지.
긍정적인 거 아닌가?"
"너만 긍정적이다 이놈아~"
계속 헛것을 보고 헛소리를 하시지만
그래도 아버지가 웃으시니 좋다.
간병인 여사님께 아버지를 잘 부탁드린다고
몇 번을 인사드리고야 병원을 나왔다.
어제 최악의 상황에서 이별을 연습한 덕분에
오늘 병원을 나올 때 분위기는 밝았다.
모든 게 잘 된 거다.
아버지와 함께한 2박 3일.
두 번의 퇴원과 두 번의 입원.
이게 다 2박 3일에 일어난 일이라니...
참 알차게 쓴 3일간의 휴가였다.
이제 막 긴 싸움의 출발점에 섰을 뿐이다.
아버지도, 엄마도, 형도, 나도...
우리 가족 모두 이 힘겨운 싸움을
슬기롭게 잘 이겨내리라 믿는다.
아버지 말씀대로 어려운 고비마다
하나님께서 도움의 손길을 주실 거라 믿는다.
"티 안 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