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엄마는 간병인을 믿지 못하셨고
결국 간병인을 바꾸기로 마음먹으셨다.
그 간병인이 외삼촌이라는 게 문제였다.
삼촌은 여동생의 딱한 사정을 듣고
본인이 간병을 하겠다며 먼저 나서셨단다.
쉽지 않은 일인데 그 마음이 고마웠다.
엄마는 형과 나에게 의견을 물으셨다.
아들이고, 젊은 내가 간병하는 것도
체력적으로, 정신적으로 힘든 일인데
일흔이 넘은 연로하신 삼촌이?
쉽지 않아 보였다.
또 아버지가 삼촌을 불편해하실 것 같았다.
본인의 치부를 다 보여주는 것도,
이런저런 요구를 하는 것도 불편할 것이다.
무엇보다 간병 과정에서 가족 간에
상처받고 의를 상할 일이 가장 걱정됐다.
이런 내 의견과 외삼촌 아닌 다른 간병인으로
바꾸는 것이 어떻겠냐고 말씀드렸지만
엄마의 마음은 이미 기운 것 같았다.
새 간병인이 좋은 분이라는 보장이 없었고
아버지의 근황을 간병인을 통해서만
전해 들을 수밖에 없는 상황을 답답해하셨다.
엄마는 아버지 상황이 호전될 때까지
한두 달 정도만이라도 가족이 보길 원하셨다.
지금 제일 중요한 건 엄마 마음이 편한 거다.
형과 나는 엄마 편하신 대로 해드리자고 했고
삼촌이 아버지를 케어하시기 시작했다.
엄마는 삼촌께 아버지 소식도 자세히 듣고
자유롭게 사식도 넣어드리고
그러면서 아버지 얼굴도 한 번씩 볼 수 있어
전보다 훨씬 낫다며 만족하셨다.
하지만 이마저도 며칠 가지 않았다.
우려했던 일은 바로 현실이 되었다.
아버지는 삼촌에게
노골적으로 싫은 티를 내셨다.
삼촌이 밥을 줘도 불편하다고 거부하셨고
상처 주는 날 선 말들을 함부로 뱉으셨고
일부러 아무런 협조도 해주지 않으셨단다.
똥 기저귀 다 갈아주고 닦아주며
고생하는 삼촌에게 심지어
차라리 없는 게 낫다며 가시라고 했단다.
좋은 의도로 정성을 다했건만
돌아오는 건 그런 대접과 상처 주는 말뿐이니
삼촌은 크게 상처받고 힘이 빠지셨고
삼촌도 엄마에게 못하겠다며 하소연을 했다.
엄마 입장에서는 인지가 정상이 아닌 아버지가
하신 말씀을 곧이곧대로 듣고 바로 포기해버린
오빠에게 서운한 감정이 드신 것 같았다.
내가 보기엔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었고
한 발 떨어져서 상황을 보니
각자의 입장이 모두 이해가 됐다.
엄마도 그렇게 서운해하실 일이 아닌 듯했다.
오히려 도와주겠다고 나서주셨던 그 마음에
감사하고 상처를 위로해 드릴 일 같았다.
하지만 엄마는 당장에 닥친 이 상황이
너무 막막하셨을 거다.
자식들은 멀리 있고, 일흔이 넘은 엄마에겐
이제 모든 걸 혼자 감당해야 한다는 현실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이 모든 걸 함께 감당하고 힘이 되어야 할 아들이
옆에서 도움은 못 드릴 망정
마치 평론가 인양 엄마에게 이러쿵저러쿵
조언만 드리는 것도 못할 일이었다.
쉬운 건 하나도 없었다.
사람 일이 마음대로 되지 않고
사람 맘이 다 내 맘 같지 않았다.
앞으로도 얼마나 많은 오해와 상처,
서운함으로 남을 일들이 계속될까.
결국 어쩔 수 없이 견뎌야 할 몫이겠지.
나는 다른 사람을 이해한다는 일이
가능하다는 것에 회의적이다.
우리는 대부분 다른 사람들을 오해한다.
네 마음을 내가 알아,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
그보다는 네가 하는 말의 뜻도
나는 모른다,라고 해야만 한다.
내가 희망을 느끼는 건 인간의 이런
한계를 발견할 때다.
이런 세상에 사랑이라는 게 존재한다.
따라서 누군가를 사랑하는 한,
우리는 노력해야만 한다.
그리고 다른 사람을 위해 노력하는
이 행위 자체가 우리 인생을
살아볼 만한 값어치가 있는 것으로 만든다.
- <세계의 끝 여자친구>, 김연수 -
결국 엄마는 하시던 일을 그만두고
직접 아버지를 간병하시겠단다.
2주에 한 번씩 형과 내가 돌아가며
주말에 엄마와 교대하기로...
아버지는 엄마의 삶은 물론이거니와
형과 나의 삶에까지 침투하기 시작하셨다.
주변의 모두는 직접 간병은 힘들다고,
간병인을 써야한다고 했지만
엄마는 아버지를 놓지 못하셨다.
비록 다른 사람의 입장을
백퍼센트 이해하진 못하더라도
우린 서로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각자 자기 자리에서 잘 견뎌내고 있다.
살아볼 만한 값어치가 있는 인생,
우린 잘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