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찐이었다.
수술 당일 엄마에게 연락이 왔다.
아버지 수술 잘 되게 기도해 달라고.
엄마는 지인들에게도 연락을 돌리신 것 같았다.
엄마가 할 수 있는 건 기도밖에,
기도를 부탁하는 것밖에 없었다.
교회에 발길을 끊은 지 오래인 내가
눈을 감고 기도를 한 게 몇 년만인가 싶다.
엄마의 간절함 때문에라도
기도를 드리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민망하지만 사무실에서 두 손 모아 기도했다.
제발 수술이 잘 되기를, 아버지가 잘 이겨내시기를,
엄마와 우리 가족이 잘 이겨내기를...
내 지인들에게서도 연락이 왔다.
아버지 수술은 잘 끝났냐고...
내가 아버지 수술 날을 말한 기억도 없는데
자기 일도 아닌데 이렇게 수술 결과까지
챙겨주는 마음씀이 너무 고맙다.
난 그렇게 살아가고 있나...
이런 마음들이 기도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래된 기도> - 이문재
가만히 눈을 감기만 해도 기도하는 것이다.
왼손으로 오른손으로 감싸기만 해도
맞잡은 두 손을 가슴 앞에 모으기만 해도
말없이 누군가의 이름을 불러주기만 해도
꽃 진 자리에서 지난 봄날을 떠올리기만 해도 기도하는 것이다.
음식을 오래 씹기만 해도
솔숲 지나는 바람소리에 귀 기울이기만 해도
갓난아기와 눈을 맞추기만 해도
자동차를 타지 않고 걷기만 해도
섬과 섬 사이를 두 눈으로 이어 주기만 해도
그믐달의 어두운 부분을 바라보기만 해도 우리는 기도하는 것이다.
바다에 다 와가는 저문 강의 발원지를 상상하기만 해도
별똥별의 앞쪽을 조금 더 주시하기만 해도
나는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만 해도
나의 죽음은 언제나 나의 삶과 동행하고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인정하기만 해도 기도하는 것이다.
고개 들어 하늘을 우러르며 숨을 천천히 들이마시기만 해도.
8시간의 암수술이 끝났다.
이미 암수술을 한번 받은 경력에
고령에 뇌경색을 앓고 있고
최근 코로나까지 걸린 아버지가
잘 회복하실 수 있을지 걱정이었다.
중환자실에서 일반병실로 옮길 때까지는
보호자가 함께할 수 없어
당분간 엄마가 우리 집에 함께 계시기로 했다.
아무리 편하게 해 주신다지만 그래도 시어머니인데
흔쾌히 동의한 아내에게도 참 고마웠다.
엄마가 우울한 생각이 들지 않게
산책도 가고 마사지샵도 가고 식사도 같이 하며
시간을 보냈지만 엄마는 자주 눈을 꼭 감고 계셨다.
틈만 나면 기도를 드리시는 모양이었다.
며칠이면 일반병실로 옮길 거라던 예상과는 달리
아버지는 일주일이 지나도록 중환자실에 계셨고
언제 일반병실로 옮길지 알 수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일정이 미뤄지자 엄마는 다시
광주 집으로 내려가 기다리기로 하셨고
나는 엄마를 모시고 함께 광주로 내려갔다.
나는 엄마를 집에 모셔드리고
바로 친구 아버지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아버지가 병원에 계시는 이 기간 동안에만
친한 친구 두 명의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어느덧 부모님을 떠나보내는 나이가 되어버렸구나.
각자 다 나름의 힘든 시기를 이겨내고 있었구나.
2주 정도 지나자 병원에서 연락이 왔다.
일주일에 한 번 15분 면회가 가능하단다.
엄마는 15분을 위해 서울로 올라오셨다.
어떤 생각을 하며 올라오셨을까...
서로를 마주한 엄마와 아버지 두 분은
눈물이 마르지 않았다.
식도암 수술로 목에 관을 삽입하고 산소호흡기를
차고 계신 아버지는 말씀을 못하셨지만
엄마에게 하고 싶은 말이 많은지
알아듣지 못할 소리를 계속해서 내셨다.
말하면 안 된다고, 하고 싶은 말 있으면
글로 쓰라고 종이와 펜을 가져다 드렸다.
펜을 쥘 힘도 없으셨던 아버지는 크게 한 자씩 적으셨다.
걱
정
마
이 와중에도 걱정할 엄마를 안심시키는 아버지.
아버지가 평생 그렇게 속을 썩이셨지만
아마도 아버지의 이런 면 때문에
아직도 이렇게 두 분이 애틋한 게 아닐까 싶다.
아버지는 또 펜으로 두 글자를 적으셨다.
성
격
간호사 성격이 좋다고...
고맙다는 사례를 하라는 의미였다.
늘 감사할 줄 알고 베풀고 싶은 아버지.
밖에는 다 퍼주고 정작 실속은 없는 아버지가
원망스럽기도 했지만 이 상황에서도
일관된 모습이라니... 진짜 찐이셨구만~
수술 후 20일쯤 지나 연락이 왔다.
아버지를 일반병실로 옮겨도 될 것 같단다.
공교롭게도 이 날은 부모님의 결혼기념일.
하나님이 주신 결혼기념일 선물인가?
또 한 번의 극적 상봉이 이뤄진 순간이다.
하지만 만남의 기쁨은 잠시...
다시 힘든 간병의 시간이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