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집을 나가셨다.

by 설작가

식도암 수술 후 3개월의 병원 생활을 마치고

드디어 아버지의 퇴원일.

아직도 뱃줄을 차고 계시고 망상은 더 심해진

상황에서 엄마는 퇴원의 기쁨보다

앞으로 벌어질 일에 대한 걱정이 앞섰다.


집에 도착한 아버지는 계속 마실 것만 찾으셨다.

목 넘김이 어려워 죽도 겨우 드실 수 있는 상태고

힘들더라도 삼켜 넘기는 연습을 해야 하는데

절대로 말을 들을 아버지가 아니다.

물은 위험해 숟가락으로 조금씩 넘겨야 하고

그것도 설사와 구토로 이어지는 상황인데도

아버지는 괜찮다며 계속 마실 것만 찾으셨다.


"물 한 숟가락만 줘~"


물 드신 지 얼마나 됐다고 또 물을 찾으셨다.


"내가 두 숟가락 달란 것도 아니고

한 숟가락만 달라는데 그것도 못 주냐!"


이번엔 또 아이스크림을 찾으셨다.

한번 고집을 부리면 말리기가 힘들고

계속 불필요한 감정소모를 하는 것보다

차라리 드리는 게 낫다는 경험치가 쌓여

결국 아이스크림을 사드렸다.


맛있다며, 이것 보라고, 괜찮치 않냐며

큰소리를 치셨지만 이렇게 드셨는데

속이 괜찮을 리 없었다.

잠시 후 설사와 구토를 하시더니

곧 숨이 넘어갈 듯 심하게 기침을 하셨다.

괜찮냐며 놀라서 달려간 엄마에게

아버지는 겨우 한 마디를 내뱉으셨다.

아이스크림~~

그 와중에도 아이스크림 더 달라고...

참 일관된 캐릭터다.



집에 계시는 동안 엄마의 시름은 깊어갔다.

영양을 생각해 정성 들여 만든 죽은

먹기 싫다며 거부하시고

계속 마실 것만 달라고 떼를 쓰는 아버지.

힘들다고 운동은 싫다며 누워만 계시는 아버지.

도움 없이는 아무것도 못하시면서

택시운전을 하겠다, 은행 가서 대출을 받겠다,

중고차부터 사야겠다...

고집불통인 아버지를 엄마 혼자 감당하기엔

너무도 힘든 나날들이 계속됐다.


그러던 중 병원에서 연락이 왔다.

아버지 암이 임파선에 전이가 된 것 같단다.

다시 또 광주와 서울을 오가는

지루한 검사의 나날들이 시작됐다.

부모님은 일주일에 한 번 꼴로 올라오셨고

형과 나는 돌아가며 부모님을 모셨다.


드디어 최종 검사결과를 상담하는 날.

KTX 역에 마중 나와 있는 나를 보신 아버지는

손을 흔들며 유난히 반가워하셨다.

내 손을 꼭 잡으며 잘 있었냐, 고생 많다,

네 얼굴을 보니 마음이 편안해진다며

눈시울을 붉히셨다.


엄마 속을 썩이고 힘들게 하실 때면

아버지를 원망하는 마음이 확 올라오는데

이런 모습을 보니 또 마음이 짠했다.

차라리 말 못 하고 누워계시거나

아예 나쁜 사람으로 변해버렸으면

오히려 내 마음이라도 정리가 될 텐데

멀쩡했다, 이상해졌다를 반복하는

아버지의 장단에 내 마음도 요동을 쳤다.

내가 이런데 엄마는 오죽하실까...


의사는 아버지의 몸상태, 전이 정도 등을

고려할 때 항암치료는 실익이 없다고 판단했고

지속적으로 상황을 지켜보는 게 좋겠다고 했다.


의사의 말을 들은 우리 각자의 반응은 달랐다.


어떤 결과를 듣던 심란하긴 마찬가지였겠지만

나는 '지속적으로' 지켜보자는 말이

아주 무겁게 다가왔다.

이걸 언제까지 계속해야 한다는 말인가...


아버지는 당장에 항암치료를 받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매우 흡족해하며 기분이 들뜨셨다.


엄마는 아버지의 들뜬 모습을 보며 걱정이 앞섰다.

이제 아버지는 본인이 다 나은 줄 알고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하려 하실 거라고...


아니나 다를까 아버지의 망상과 집착은 더 심해져

엄마를 들들 볶으셨다.

면허증 가져와라, 택시회사에 가야겠다,

은행에 가서 통장부터 만들어야겠다,

대출을 받아서 중고차를 사야겠다, 출마하겠다...


아버지를 설득하는 엄마에게

정신병자 취급하지 마라,

간병한다고 위세 떨지 마라, 당장 나가라,

근처에도 오지 마라며 막말을 쏟으셨다.

엄마는 견디다 못해 결국 아버지를 모시고

예전 근무하셨던 택시회사까지 갔다 오기도 하셨다.

(하필 그날 아무도 없어서 허탕을 친 게 아쉽다.)


아버지를 모시고 돌아다니며

아무리 확인을 시켜드려도

자기만의 세계에 갇혀 늘 제자리인 아버지.

망상이 현실화될 일은 없으니 불필요한 마찰을

줄이는 쪽으로 대응하는 게 낫지 않겠나 싶기도 했지만

망상이 현실화될 수 있는 게 현실이었다.


뇌졸중 환자의 면허를 박탈하거나

운전을 금지하는 법도 없고,

은행 직원에게 사전에 문의를 해봤지만

본인이 대출을 원하면 안 해줄 수 없단다.

카드론 한도제한 역시 안 된단다.

중고차는 말할 것도 없다.

고객이 사겠다는데 팔지 않을 딜러가 있을까?


막고 버텨야 할 사람은 결국 엄마였다.

엄마는 대한민국 법을 원망했다.

당연히 아버지와의 마찰은 계속됐다.


그러던 어느 날, 막으려는 엄마와

뚫으려는 아버지 간에 언성이 높아졌다.

그리고 그날 밤, 아버지는 결국 사고를 치셨다.


엄마가 잠든 사이 몰래 집을 빠져 나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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