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비빅~"
엄마는 잠결에 문소리를 들으셨지만
아버지와 한 차례 마찰이 있었고
아버지가 근처에도 못 오게 하신 터라
자는 척 누워 '곧 다시 들어오시겠지' 하면서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신경을 곤두세우셨다.
15분쯤 지나도 아버지가 다시 들어오시지 않자
엄마는 걱정이 되어 밖으로 나가보셨다.
멀리 가시지 못했을 거란 예상과 달리
아파트 복도엔 아버지가 보이지 않았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신 걸까?
혼자 잘 걷지도 못하시고 편측무시까지 있는
아버지가 이 밤중에 혼자 나가시는 건
바로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위험한 일이었다.
엄마는 1층으로 내려가 아버지를 찾으셨다.
12시가 넘은 깜깜한 밤, 아무 소리도, 인적도 없었다.
엄마는 맘 졸이며 주변을 찾아 헤맸고
길에 쓰러져있는 아버지를 발견했다.
아버지의 눈가는 찢어져 있었고, 모자엔 피가 흥건했다.
엄마는 놀라서 울며 괜찮은 거냐 물었지만
아버지는 그 와중에도 엄마 핑계를 대셨다.
아버지는 뇌졸중 이후 집착에 가깝게 모자를
챙기셨는데 그 병적인 집착이 아버지를 살렸다.
넘어질 때 모자챙이 바닥에 먼저 닿으며
뇌진탕은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목이 꺾이며 목뼈가 부러지셨다.
아버지는 또다시 입원을 하셨다.
어쩌면 이게 잘된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에서 엄마가 감당하기 힘든 지경에 이르렀는데
차라리 병원에서는 외출이라도 막을 수 있으니
엄마의 숨통이 조금이나마 트일 수도 있을 것이다.
이번 일로 아버지도 느끼는 바가 있으면 좋으련만...
아버지는 그 상황에서도 여전하셨다.
필요 없다고 가라고 할 땐 언제고
안마기를 대 달라, 주물러 달라,
병원밥은 맛없으니 나가서 맛있는 거 먹자,
집에 가자, 은행 가자... 계속 엄마를 찾으셨다.
엄마가 병원 핑계를 대며 아버지의 탈출은
막을 수 있다는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하지만 퇴원 이후가 걱정이었다.
입원해도 걱정, 퇴원해도 걱정.
걱정은 기본값이 되었다.
벌써부터 퇴원 후를 걱정하시는 엄마에게 말했다.
"언제 우리가 걱정하고 예측한 대로
흘러간 적이 있었나요? 그때 가서 생각하시죠~"
일이 근본적으로 해결되지는 않고
또 다른 사건으로 덮이는 일이 반복되면서
점점 무감각해지는 내 모습이 낯설 때가 있다.
아버지가 뇌졸중에 걸리셨을 땐
빨리 완쾌하시기를 빌며
뇌졸중과 뇌과학 관련 책과 영상을 찾아보고
인터넷을 뒤지며 최선이 무엇일지 고민했다.
엄마의 고통에 공감하고 짐을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덜어드릴 수 있을지 고민했고
아버지의 입장도 이해해 보려 노력했다.
하지만 이런 상황이 길어지자 아버지 일에 대해
가급적 잊고 지내려, 깊게 생각하지 않으려 했고
내 삶을 휘두르지 않도록 생각의 가지를 잘라냈다.
아버지의 검진 일정에 맞춰 내 스케줄을 조정하고
만나 뵈었을 때 웃는 얼굴로 최선을 다하는 정도,
엄마가 도움을 청했을 때 도움이 되어드리는 정도.
딱 그 정도를 내 몫이라고 단순화했다.
어느 순간부터 내게 아버지가 감성보다는
이성적 접근의 대상이 되어버렸다는 사실이
문득 씁쓸하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