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38일.
꿈에 그리던 그날이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내겐 몇 가지 막연한 로망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초원에서 말을 타고 달리는 것이다.
거기에 놈놈놈 OST가 흘러나오고
정우성이 보여줬던 말 위에서 장총 한 바퀴 돌리며
장전하기까지 더해진다면 그야말로 완벽하다.
상상만으로도 죽인다.
국내에서도 기회가 될 때 말을 타보긴 했지만
나의 로망과는 거리가 멀었다.
아저씨가 앞에서 말을 끌며 걸어가고
나는 그저 말 위에 앉아만 있을 뿐...
같은 곳을 뺑뺑 도는 도련님 행차 말고
자유롭게 초원을 누비고 싶었다.
내 로망을 실현할 최적지는 몽골이었고
이번에 아들과 6박 7일 몽골 여행을 계획했다.
학교 공사로 긴 방학을 맞은 중1 아들과
단 둘이 떠나는 여행.
영혼의 단짝 윤이와 사막을 걷고, 말과 낙타를 타고,
야외 온천에 몸을 담그며 쏟아지는 별을 보고,
게르 앞에서 불을 피우며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이라니...
(장총을 들고 비행기를 탈 수 없어 아쉽긴 하지만...)
여행 계획이라곤 짜본 적 없는 내가
아내 없이 아들을 데리고 가야 하니 긴장이 됐다.
하지만 나같이 얹혀 가는 캐릭터도 살 길이 있는 법.
러브몽골이라는 카페에서 동행을 구해
계획성 있는 멤버들에게 얹혀가는 꼼수가 있었다.
하지만 멤버 모집 글 여기저기를 둘러봐도
이삼십 대 젊은 사람들만 원했지
나 같은 애 딸린 40대 남성을 원하는 곳은 없었다.
내가 이제 노땅 취급을 받는 나이가 돼버렸구나.
나라도 젊은 남녀끼리 놀러 가고 싶겠다.
그러던 중 나이, 성별 불문 인원 모집 글이 있었고
나처럼 받아주는 곳 없이 갈 곳 잃은
큰형님, 큰누님들이 많이 들어오셨다.
예상밖으로 많은 멤버가 모집되었다.
팀장님은 30대 여성분이었는데
정말로 나이를 불문하고 모든 이에게 열려있었다.
팀장님의 리더십과 배려심이라면,
이처럼 다양한 연령, 직업군의 만남이라면
더욱 풍성하고 뜻깊은 여행이 될 것 같았다.
20대의 풋풋하고 설렘 가득한 여행만 여행이냐,
10대부터 60대가 어우러진 멋진 여행도 있다!
하지만... 팀원이 너무 많았고 결국 우린
원하는 여행 스타일에 따라 두 팀으로 나뉘게 되었다.
몽골의 트레이드마크 남부 고비사막이냐,
몽골의 스위스 몽골 중부코스냐의 기로에 섰다.
30대 팀장님은 젊었을 때 고생해 보겠다며
남부 고비사막 코스를 택했고,
60대 큰누님들은 중부를 택했다.
난 막연히 몽골 하면 고비사막이고,
갈 곳 없던 날 받아준 팀장님을 따라야겠다 싶었지만
내 로망을 실현하기엔 중부가 더 적합했다.
초원, 사막, 온천, 별, 말, 낙타...
짧은 이동시간, 아름다운 몽골의 가을 정취.
남부 코스는 여행에서 이동시간이 차지하는 비중이
너무 많았고 계절에 관계없이 사막은 사막이었다.
난 결국 중부팀을 택했다.
60대의 퇴직하신 큰누님, 큰형님들과 함께...
중부를 택하고 나니 이상하게 마음이 편안했다.
충분히 힐링하고 아들과 추억을 쌓고 오겠구나.
지금 내 목표는 하나! 몸만들기다.
야외 온천에서 인생샷을 찍고야 말리라!
인생 최고 몸무게를 넘나들고 있는
지금의 몸으론 뭔가 그림이 나오지 않는다.
식스팩까지는 어렵겠지만 뱃살이라도 해결해야...
밤에 막걸리만 안 마셔도 5킬로는 그냥 뺀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에 사로잡혀 있을 때가 아니다.
인생에 다시없을지도 모르는 기회를
막걸리 때문에 날릴 순 없다.
오늘 몸무게 75.5kg.
70kg까지 만들고 떠나리라!
부득이한 경우를 제외하고
(인간미가 있는 사람임)
막걸리는... 잠시만...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