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야? 도대체 왜 자꾸 이러는 거야!"
아침부터 부장님의 분노와 짜증이
사무실에 울려 퍼졌다.
부장님은 아침똥을 누러 화장실에 가셨고
덮여 있는 변기 뚜껑을 연 순간...
누군가의 똥 테러 현장을 두 눈으로 목격했다.
"내가 본 것만도 한두 번이 아니야!
도대체 왜, 왜 물을 안 내리는 거야!"
부장님은 찐으로 분노가 치미신 듯했다.
"똥 마려워서 갔는데 그거 보고
똥 싸고 싶은 마음이 싹 사라졌네.
이따 본부 출장 가서 싸고 와야지
여기서는 생각나서 도저히 못 싸겠어."
부장님은 매우 진지하고 심각했고
그래서 이 상황이 더 웃겼다.
"아마 외부인이 와서 싸고 간 것 같습니다."
누군가가 애써 우리 직원을 두둔했다.
"아니야. 전에도 누가 외부인이 싸고
물 안 내리고 간 것 같다고 했는데
어떤 외부인이 미쳤다고 계속 이러냐고~
분명히 우리 직원 중에 한 명이야."
나 역시 전에 똥 테러 현장을 목격했었다.
그때도 누군가가 외부인의 소행인 것 같다고 해
그땐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넘겼지만
이런 일이 반복되는 걸 보면 내부자의 소행이 확실하다.
어떤 외부인이 굳이 5층까지 올라와서 저러겠나.
앙심을 품은 누군가가 있다손 쳐도
똥을 뿌렸으면 뿌렸지
똥 싸고 물을 안 내리는 방식으로 복수를 한다?
상식적으로 납득이 안 된다.
부장님과 같이 본부 출장을 가는 차 안에서도
똥 테러 이야기가 계속됐다.
"CCTV 돌려보면 누구 짓인지 바로 나와.
내가 차마 그렇게는 안 하겠어.
이건 습관이야. 못된 습관.
여기가 자기 집이라고 생각해 봐.
저러고도 무사할 수가 있겠냐고."
부장님은 아직도 분이 안 가라앉았지만
나는 터져 나오는 웃음 때문에 운전이 힘들었다.
우리 집에서도 비슷한 경우가 종종 있었고
나는 다행히도 아직까지 무사히 살고 있다.
"누가 물 안 내렸어!!!"
화장실에서 아내의 샤우팅이 들리면
나와 두 아들은 긴장 상태다.
이때부터는 각자도생이다.
다들 알리바이를 대기 바쁘다.
"저는 오늘 화장실 가지도 않았어요~"
"저는 뚜껑을 안 덮는데요~"
"나는 내렸는데?(좀 더 그럴듯한 알리바이 없나?)"
진짜 내린 것 같은데... 이상하네...
용의자가 점점 나로 좁혀지는 것 같다.
"도둑이 들어와서 싸고 갔나 보네.
이참에 집 비번을 바꿔야 되려나 봐~"
그렇게 미궁 속으로 빠진 사건이
한 두 건이 아니다.
이번에 누군가가 부장님께
똥 테러가 외부인의 소행인 것 같다고 했을 때
처음으로 사무실이 내 집처럼 느껴졌다.
사람 사는 냄새가 나네~
그나저나 조만간 똥 테러가
또 일어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사람 습관이 하루아침에 고쳐지는 게 아니다.
이번엔 이 정도로 마무리됐지만
다음에 또 부장님이 똥 테러를 당한다면
부서 회의의 주요 안건으로 올라갈 것이다.
현황, 문제점, 개선방안, 기대효과까지
보고서를 쓰는 상상을 해본다.
현황 쓰기부터가 참 난감하다.
부장님의 짜증 섞인 표정이 먼저 떠오른다.
추진경위도 넣을까?
언제 몇 번의 똥 테러가 있었는지,
발견 시각은 대체로 몇 시였는지...
개선방안은 어떤 게 있을까?
덮개 열고 나가기 캠페인을 해서
물을 내렸는지 확인하게 만들까?
범인을 색출해서 일벌백계를 해?
물 좀 안 내렸다고 벌을 주는 것도 웃긴데
누가 무슨 권한으로 어떤 벌을 주지?
감사실에 정식으로 감사 청구를 해야 하나?
별첨에 현장사진도 넣어야 되는 거 아니야?
참 냄새나는 보고서가 되겠구만...
* 혹시나 오해하실 분이 있을 것 같은데
저는 이번 테러와 전혀 무관함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