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와 글쓰기 프로젝트 #13. 선생님>
제대 후 파이팅이 남아있던 시기였다.
막노동에 대한 막연한 로망이 있었다.
자고로 돈은 땀 흘려 벌어야 하고,
노가다는 한 번은 거쳐야 할 통과의례라 생각했다.
고생해서 당일에 받은 따끈따끈한 돈으로 마시는
막걸리 한 잔은 얼마나 달고 시원할까...
내 선택지에 다른 알바는 없었다.
이른 새벽, 친구와 당당히 직업소개소 문을 열었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있어 놀랐고
정장 차림의 멀끔한 아저씨도 있었다.
"도배할 줄 아시는 분?"
"배관 작업 해보신 분?"
기술이나 경험이 있는 분들이 손을 들며
하나 둘 먼저 자리를 떴고
오직 건강한 몸뚱아리 하나뿐인 사람들만 남아
불안한 눈초리로 서로를 힐끔힐끔 쳐다보았다.
"OO현장 가실 분?"
전화기를 잡고 일손을 연결해 주던 사장님이
정장 아저씨께 따지듯 물었다.
"아저씨, 어디 가시려고요?
이제 남은 곳도 얼마 없어요."
"내가 거기서 그런 일이나 할 사람으로 보여?"
정장 아저씨의 당당함에 다들 황당하다는 표정이었다.
그럼 어디서 무슨 일을 하려고 여길 오셨을까?
여기가 대기업 취직시켜 주는 곳으로 알고 오셨나?
친구와 나는 한 건설 현장에 배정되었고
현장에서 다시 친구는 진짜 노가다판으로,
나는 현장 입구 신호수 역할을 배정받았다.
하루종일 서서 경광봉을 흔들었지만
내 신호에 따르는 덤프기사는 없었다.
난 그저 새 쫓는 허수아비가 된 것 같았고
열심히 공부해야겠다는 마음이 확고해졌다.
친구는 땀에 절은 만신창이가 되어 나타나
한가하게 서있는 나를 부러운 듯 쳐다보았다.
우린 서로 다른 이유로
다시는 노가다 판에 기웃거리지 않기로 했다.
"여보, 나 회사 그만두려고~
나랑 잘 안 맞는 것 같아."
직장인 3년 차. 슬럼프인지 뒤늦은 사춘기인지
질풍노도의 시기가 찾아왔다.
출근길은 지옥길이었고 회사에서 나는 없고
껍데기만 앉아 있는 느낌이 들었다.
여기서 잘 버티고 살면 부장님처럼 되겠지?
그런데 부장님이 전혀 부럽지도, 매력적이지도 않은걸?
이 일을 계속하며 이렇게 세월을 보내긴 싫었다.
어딘가에 멋진 인생이 기다리고 있을 것 같았다.
"그만둬~ 당신은 뭘 해도 잘할 거야.
그만 두면 뭘 하고 싶은데?"
전혀 망설임 없는 아내의 쿨한 반응에 당황했고
훅 들어온 질문에 멍해지며 몸이 얼어붙었다.
난 뭘 하고 싶은 거지?
순간적으로 내뱉은 말은 '선생님'이었다.
외할아버지, 엄마, 아내, 친구들...
내 주변엔 늘 좋은 선생님이 있었고
내가 가장 행복했던 시절을 떠올려 보니
1년 간 학원 강사를 했던 시절이었다.
"중1 국어랑 사회 좀 가르쳐줄 수 있어요?
아들놈 친구들도 몇 명 같이 안 될까?"
노가다판과의 짧은 만남 뒤 곧바로 벼룩시장에
과외 광고를 올렸고, 마침내 기다리던 연락이 왔다.
분명 나는 공대생이고 수학, 과학을 가르치겠다고
올렸는데 국어, 사회를 맡아달라고 했다.
뭔가 좀 이상했지만 급한 건 나였으니 다 좋다고 했다.
바로 서점으로 달려가 문제집을 훑어보았다.
국어는 나름대로 자신 있었지만
사회는 도저히 잘 가르칠 자신이 없었다.
사회는 내게 재미없는 암기과목일 뿐이었다.
사회는 못할 것 같다고 다시 연락을 드렸더니
"수학은 내 건데..." 하며 알 수 없는 혼잣말을 하시더니
"그럼 국어랑 수학 좀 맡아줘요."라고 하셨다.
알고 보니 의뢰인은 학원 원장선생님이었고
나는 엉겁결에 학원 강사가 되었다.
첫 수업시간. 나와 아이들은 서로를 스캔했다.
아이들은 금세 나에 대한 파악을 끝낸 건지
자꾸 날 떠보며 한계치를 시험했다.
질문을 했더니 "맞히면 뭘 해줄 거냐",
"우리한테 돈 쓰는 게 아깝냐"며 비아냥거렸고
"저요!"하고 손을 들며 가운뎃손가락을 올렸다.
하... 이게 중1 남자애들이라 이거지~
너희들은 안 되겠다... 좀 맞자...
"책 다 덮어!
너희 같은 놈들한테는 가르칠 필요가 없겠다."
"수업 안 하면 돈도 못 벌 텐데요?"
"오늘 그만둘 거니까 걱정하지 말고.
그런데 그만둘 때 그만두더라도
너희들 버릇은 고쳐주고 가야겠다.
어린 노므 쉐끼들이 버르장머리가 없어!
너희 같은 놈들이 공부 잘하면 그게 더 큰 문제야."
공포 분위기 속에서 정신교육이 시작됐다.
진짜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열변을 토했다.
수업(?)을 마치고 나오니 원장선생님께서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으며 등을 토닥이셨다.
옆 교실에서 상황을 다 들으신 것 같았다.
'이렇게 학원바닥도 하루 만에 작별이구나...'
대안이 없었던 건지 날 믿어주신 건지
원장선생님은 별말씀을 안 하셨고
정신교육이 먹힌 건지 진심이 통한 건지
아이들은 나를 잘 따랐고, 내 수업을 기다렸다.
나도 아이들이 좋았고 학원에 가는 게 즐거웠다.
한 번은 국어시간에 시험을 본 후
같이 채점하며 틀린 문제 풀이를 했다.
<우리가 눈발이라면> - 안도현
우리가 눈발이라면
허공에서 쭈삣쭈삣 흩날리는
진눈깨비는 되지 말자.
세상이 바람 불고 춥고 어둡다 해도
사람이 사는 마을
가장 낮은 곳으로
따뜻한 함박눈이 되어 내리자.
우리가 눈발이라면
잠 못 든 이의 창문가에서는
편지가 되고
그이의 깊고 붉은 상처 위에 돋는
새살이 되자.
[문제] 위 시의 '함박눈'의 의미와 같은
의미의 단어를 모두 찾아 쓰시오.
정답은 당연히 '편지'와 '새살'이었다.
유일하게 K만 이 문제를 틀렸다.
학업에 손을 놓다시피 한 친구였고
그냥 친구들과 놀기 위해 학원에 나오는 아이였다.
K는 억울상이 되어 물었다.
"이게 왜 틀린 거예요?"
"뭐라고 썼는데?"
따끈한 호빵과
오뎅국물이요.
배가 많이 고팠나 보구나.
애들도 나도 빵 터졌지만 K는 진지했다.
자기가 생각하는 따뜻한 의미의 단어를
'주변에서' 찾아 쓴 거란다.
이 시 안에서 찾아 쓰라는 말은 없지 않냐며 따졌다.
"이야~ 듣고 보니 그러네. 그것도 정답!
얘들아, 이런 친구가 나중에 크게 될 친구야.
새로운 관점, 참신한 해석을 보여준 K에게 박수!!!"
K가 지금까지 선생님의 감탄과 칭찬,
친구들의 박수를 받아본 적이 있었을까?
K는 세상을 다 가진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날 이후 K는 가장 열성적인 학생이 되었고
내가 오는 날만 기다렸다.
그렇게 아이들은 내게 마음의 문을 열었다.
수업이 끝날 때쯤이면 교실 뒤에 원장선생님이 나타나
끝나고 술 한잔 하러 가자는 수신호를 보냈다.
사모님이 투다리 비슷한 호프집을 하셨는데
당연히 술은 늘 공짜 무한리필이었다.
월급에 술까지. 동네 학원치고 복지가 괜찮았다.
애가 선생님을 너무 좋아해서 따로 과외를
해줄 수 없겠냐는 학부모님들이 계실 정도로
나름 인기강사 기분을 느끼며 내 적성을 발견했다.
내가 누군가를 가르치는 데에 소질이 있구나...
이럴 때 보람과 행복을 느끼는 사람이구나...
용기 없는 쫄보라 18년째 같은 직장을 다니고 있지만
사춘기는 잘 극복했고 이젠 정년을 꿈꾼다.
비록 선생님이 되진 못했지만
나름 선생님 흉내를 내며 자아를 실현하고 있다.
어쩌다 보니 육아 관련 강의를 다니고
자문 위원으로도 활동하게 되었고
일이 점점 커져 회사 전 직원 앞에서
'책 쓰기'를 주제로 발표를 하기도 했다.
몇몇 가족의 온라인 독서모임 사회를 맡은 지도
벌써 3년이 되어가며 '선생님' 소리를 듣고 있다.
내가 '선생님' 호칭을 들을 자격이 있는지는
늘 의문이지만 경험과 생각을 공유하는 시간이 좋고
배움과 가르침 중간 어디쯤에 있는 이 포지션이 좋다.
'설'은 어설프고 덜 익었다는 뜻이 있으니
선생님 앞에 '설'이 붙는 건 괜찮을 것 같기도 하다.
설선생~
그나마 좀 낫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