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설작가 Aug 30. 2024

엘리베이터 안에서 우린 사랑을 나누지

<아내와 글쓰기 프로젝트 #17. 엘리베이터>

#1. 부디...


"제가 계단 올라가다가 유산이라도 되면,

 책임지실 거예요?!!"


벌써 10년 전 이야기다.

당시 현장엔 유명한 민원인이 한 명 있었다.

아파트 엘리베이터가 점검 중이라

잠시 이용이 됐는데

그러면 임산부인 나에게 걸어 올라가라는 거냐,

유산되면 책임질 거냐, 기자를 부르겠다며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

이 일로 관리소장님은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으셨고

나이에 젊은 사람에게 이런 수모를 겪으면서까지

일하고 싶지 않다며 일을 그만두셨다.

순조로운 분만을 위해 임산부의 규칙적인 운동은 아주 중요하다. 적당한 운동은 태아 발육상태에 좋은 영향을 주며 임산부의 건강에도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임신 중 특별한 건강 문제가 없는 경우 계단 오르기 운동은 자간전증 위험을 낮출 뿐만 아니라 임신성 당뇨 위험, 요통, 변비, 부기, 팽만감을 낮추는 데 도움을 준다고 알려진다.  
-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

세상엔 참 이해하기 힘든 일도, 사람도 많다.

어쩌면 나도 사건의 한 단면만을 보고 있을지 모른다.

계단 오르기가 임산부에게 좋다는 건

'임신 중 특별한 건강 문제가 없는 경우'라는

단서가 있다.

그분이 단서 조항에 해당되는 분이었을 수도

(정신 건강에 특별한 문제가 의심된다.)

내가 모르는 어떤 사정이 있었던 것일 수도 있다.

(급똥이 마려워 눈앞이 하얘져 뵈는 게 없었다든지...)

하지만 아무리 전후사정을 이해한다 해도

그렇게까지 했어야 할 일이었는지는 여전히 모르겠다.

이건 인간에 대한 예의의 문제다.


10년이 지난 지금 문득 궁금해진다.

그녀는 여전히 자신을 부조리와 싸우는

정의의 사도라 생각하며 작은 일에 분노하고 있을까?

그녀의 삶은 얼마나 힘들고 팍팍할까?

아이는 몸과 마음이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을까?


분노와 짜증은 전염성이 강하다.

그분이 계속 그렇게 살고 있다면 큰일이다.

10년이면 주변에 분노 바이러스가

많이 퍼졌을 텐데...

잠시 그분을 위해 기도해 본다.


부디 그때 임신으로 인한 일시적인 현상이었기를...

살면서 조금은 너그러워지셨기를...

한 번씩 계단도 이용하며 건강 좀 챙기시기를...

이도저도 아니라면 1층으로 이사라도 가셨기를...



<의사들은 이미 알고 있었다?>


계단 오르기가 건강에 좋다는 건 다들 알고 있지만

최근 이를 증명하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계단을 오르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모든 원인으로 인한 사망위험이 24% 낮았고

심장마비, 심부전, 뇌졸중 등

심혈관 질환 사망 위험이 39%나 낮았다.

뇌를 젊게 유지하는 효과까지 있다고 한다.

계단만 이용해도 많은 병원이 문을 닫아야 할 판이다.

그래서일까?

아파트 단지 엘리베이터에 설치된 TV 광고

최다 출연 업종은 '의원'으로 집계됐다.

의사들이 똑똑하긴 한 것 같다.

고객이 어디에 모여있는지 정확히 아는 걸 보면...



#2. 남녀의 차이?!!


당신은 엘리베이터
어느 자리에 서 계신가요?

엘리베이터 안에서 남자와 여자가 취하는

행동에 차이가 있다는 사실, 아셨나요?

독자들께서는 얼마나 공감하실지...


레베카 루지 박사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사람들이 취하는 행동을 오랫동안 관찰한 결과

몇 가지 특징을 발견했다.


1. 서는 위치

- (나이 든 남자) 엘리베이터 안쪽으로 가서 선다.

- (젊은 남자) 중간자리에 선다.

- (여자) 바로 문 앞에 선다.


2. 행동 차이

- (남자) 거울을 통해 상대방 또는 자신을 바라본다.

- (여자) 마주 보게 되는 상황 피하려

모니터를 주시한다.

즉, 남자들은 두리번거리고

여자들은 시선을 고정한다.


"과연 사실일까?"

나 역시 사람들을 관찰해 보았다.

놀랍게도 내가 관찰한 결과도 같았다.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남자들은

엘리베이터 맨 안쪽 구석에 자리를 잡았고

사람들을 힐끔힐끔 쳐다보았다.

이와 반대로 대부분의 여자들은 문 앞에 섰고

핸드폰이나 정면을 보며 두리번거리지 않았다.


"왜 이런 차이가 나는 것일까?"

레베카 루지 박사는 이러한 남녀 차이의 원인을

권력의 문제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나이 든 남자들은 상대방을 자유롭게 바라보기 위해

안쪽 자리로 간다는 것.

(펜트하우스가 비싼 이유도 권력과 관련이 있다.

 나는 남을 내려다볼 수 있고, 남은 나를 못 보는.

실제 엘리베이터 상석은 버튼에서 먼 구석자리다.)


또는 성격의 문제일 수도 있는데

대담한 사람들은 안쪽 자리를 택하고

수줍은 사람들은 문 앞에 선다는 것이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가설일 뿐 과학적 근거는 없다.



<나만의 가설을 세워본다면?>


1) 남자는 사냥을 하던 DNA가 남아 있어

적의 위협에 가장 안전한 구석진 곳을 찾고

(앞에서 나타나는 적만 상대하면 되니...)

주변을 계속 살피는 습성이 내재된 것!


2) 남자는 비교적 덩치가 커서 앞에 서면

사람들 통행에 방해가 되기 때문에 최대한

구석에 밀착하려는 습관이 생긴 것!


3) 여자는 불안감이 있어 도망갈 수 없는

구석에 몰리는 걸 불안해하고 문이 열리면

바로 탈출할 수 있는 문 앞에 서는 것!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신가요?



#3. 나만 몰랐어?


1. 63빌딩이 63층이 아니었다고?


과거 많은 엘리베이터에는 4층 버튼이 없었다.

죽을 사(死)와 음이 같다는 이유 때문인데

요즘 엘리베이터엔 그냥 4층을 쓴다.


하지만 아직도 생명과 직결된 곳에서는 4자를 피한다.

많은 병원에 4층이 없고 군대에도 4군단이 없다.

(있는데 없는 척, 4층인데 5층인 척.

 한국에는 4자로 끝나는 부대가 없다.)


"63빌딩엔 4층이 있을까, 없을까?"

정답은?

4층이... 있다!

역시 한때 최고층 건물의 자존심!

미신 따윈 믿지 않는다!??

그런데 이건 또 뭔가요...

4층은 있지만 44층이 없다.

죽을 사 한 개 쯤은 눈 하나 꿈쩍 안 하지만

죽을 사 두 개는 얘기가 다르다는 건가?

43층 다음이 45층이다.


"그럼 63빌딩은 실제로 몇 층이야?"

63층? 아, 44층이 없댔지?

그럼 62층? 64층? 아... 계산 어렵네~

실제 63빌딩은 63층이라 63빌딩이 아니라는 사실!

지상 60층, 지하 3층 건물이라 63빌딩이다.

44층이 없으니 표기된 최고 층수는 61층이지만

실제로는 60층이다.

건축물대장에도 60층 건물로 등재되어 있다.


2. 닫힘 버튼 누르면 돈 나간다!??


닫힘 버튼 한 번 누를 때마다 백 원씩이니

함부로 버튼 누르는 거 아니라는 말...

거짓이었다.

닫힘 버튼을 누르고 안 누르고

전기료의 차이는 거의 없다.

미리 탄 사람의 닫힘 버튼 때문에 탑승하지 못한

누군가가 흘린 한 맺힌 괴소문 아닐지...

굳이 전기료 절감효과를 찾는다면

닫힘 버튼을 누르지 않고 기다리는 동안

늦게 온 사람 몇몇을 더 태울 수 있다는 것 정도?

운행 횟수가 줄어 전기료가 절감될 수는 있다.


3. 엘리베이터 추락 시 점프하면 산다?


누구나 한 번쯤 상상해 봤음직한 장면 아닐까?

엘리베이터가 추락한다, 바닥에 쿵 떨어지기 직전

절묘한 타이밍에 점프한다,

공중에 떠 있다가 멋지게 착지한다.

역시 난 천재야...


하지만... 전문가들은 추락 중일 때

최대한 몸을 바닥과 가까이해야 하고,

엘리베이터 중간에 있어야 충격을 최소화할 수 있단다.

즉, 엘리베이터 중간에 대자로 뻗어 누우라는 말이다.

언뜻 상상하기론 상당히 모양이 빠질 뿐더러

내장 다 파열되고 납짝코가 될 것 같지만...

전문가가 그렇다니 믿을 수밖에...


하지만 걱정할 필요가 없는 게

엘리베이터가 추락할 일은 없다고 한다.

로프가 끊어질 일도 없고

만에 하나 끊어지더라도 3중으로 안전장치가 있어

추락할 일은 절대 없단다.


하지만...(이 글에 '하지만'이 몇 번인지...)

검색해보니 중국에서 엘리베이터가 추락한

사례가 있었고 당시 CCTV 영상도 있었다.

세상에 '절대'란 없고 중국엔 불가능이란 없다.


4) 엘리베이터에 거울 설치가 의무사항?


엘리베이터에 거울이 설치된 스토리는

많이 알려져 있다.

초창기엔 기술력 부족으로 엘리베이터 속도가 느렸고

고객의 불만이 계속됐지만 기술적 한계로

엘리베이터의 속도를 올리기가 힘들었다.

이때 오티스라는 엘리베이터 제조기업의

한 직원이 거울을 설치하자는 아이디어를 냈다.

엘리베이터의 속도를 올리는 대신

이용객의 시선을 돌리자는 발상의 전환이었다.

이 아이디어는 성공했다. 거울 부착 이후

속도가 느리다는 고객의 불만이 줄어든 것이다.

오티스사의 성공으로 엘리베이터의 거울 설치는

전 세계적인 공식이 되었다.


엘리베이터에 거울이 있으면 여러 모로 좋다.

시각적으로 넓어 보이는 효과도 있고

폐쇄된 공간에 갇혀 있는 불안감도 완화할 수 있다.

나는 거울을 보며 야구 스로잉 폼을 체크하기도...

가끔 거울에 털이나 흰머리가 붙어 있는 경우,

여드름 발사 자국이 묻어 있는 경우가 있는데...

제발 이러지 맙시다. 나도 묻히고 싶잖아...


거울은 그냥 편의사항, 선택사항인 줄 알았지만

거울 설치가 의무사항인 경우도 있다는 사실!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에 보면

지하철 역사 등 여객시설에서는 유효바닥 면적

1.4mX1.4m 미만 승강기 내부 후면에는

견고한 재질의 거울 부착이 의무화 되어 있다.

왜일까? 당신의 감수성을 체크해 볼 시간...


(잠시 생각할 시간을 드립니다.)




휠체어를 사용하는 장애인은

통상 엘리베이터 출입문을 등지면서 탑승한다.

내부 공간이 좁은 경우 휠체어 방향 전환이 어려우니

휠체어를 180도 돌리지 않고도 출입문 개폐 여부를

확인할 수 있도록 거울 설치를 의무화한 것이다.

이런 깊은 뜻이...



지나간 일 들춰보며 의미 찾기.

아무 생각 없던 것들 낯설게 보기.

아내와 주제어 글쓰기를 진행하며 얻은 소득이다.


아마도 이 글을 읽은 독자 역시

엘리베이터를 타는 마음가짐에 변화가 생길 것이다.


"그냥 계단을 이용할까?"


"모니터 광고에 진짜 의원이 많은지 볼까?"


"난 무의식 중에 어디에 서 있는 거지?"


"서는 위치에 남녀 차가 실제 존재하는 거야?"


"진짜 남자들만 엘리베이터에서 두리번거리나?"


"실제로 병원엔 4층이 없는 거야?"


"지하철, 터미널 엘베 정면엔 다 거울이 있나?"



낯선 것과의 조우를 통해
이성이 시작된다.

- 하이데거 -



"엘리베이터 안에서 우린 사랑을 나누지"

- 박진영, <엘리베이터> 중 -


낯선 것과 조우할 준비를 마쳤으니...

엘리베이터 안에서 이성(理性) 교제 시작?!!

매거진의 이전글 아직 종이 울리지 않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