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이 다시 찾아오는 이유 엄마에게 배운 환대에서 시작했다.
우리 엄마는 말수는 적었지만 따듯한 분이셨어요. 손님들을 위한 기장밥을 압력솥에 지어 뚜껑이 있는 밥그릇에 수북이 담아 보온하는 기계에 넣어 주시곤 했어요. 하얀 흰밥이 아닌 잡곡 한 가지씩 넣어 만드셨어요. 밥맛이 좋아야 한다고 " 엄마 백반집도 아니고 고깃집인데 밥에 너무 정성을 쏟는 거 아니야"엄마 밥은 온기를 잔뜩 넣어 손님에게 대접하는 거 같았어요. 엄마의 밥은 저에게도 남달라요.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다 원주로 내려오면 엄마밥이 제일 먹고 싶고 서울살이는 언제나 무얼 먹어도 허기가 지곤 했어요.
엄마는 집 떠나 먹는 밥에는 엄마의 온기가 없어서 그런 거야. 그래서 먹어도 먹어도 헛헛한 거야
서울살이 힘들어질 때 엄마밥 먹고 가면 사실 안정감이 생기고 다시 힘을 낼 수 있었던 거 같아요.
엄마는 손님이 들어오면 메뉴를 고를 때 항상 직원을 보내지 않고 본인이 누구랑 왔는지 어떤 모임인지 파악하고 거기에 맞는 음식을 내오시곤 했어요. 메뉴에 없는 애피타이저 식사 후 디저트까지 사람에 따라 다르게 주시는 걸 알고 았었어요.
할머니 할아버지를 모시고 오는 가족에게는 특별히 신경 쓰셨어요. 제철마다 달랐지만 여름에는 수박화채를 서비스로 드리고 겨울에는 감주를 손수 만들어 식사후 드리곤 했어요.
메뉴에 없는 엄마만의 디저트가 많았어요. 엄마는 사람을 환대하는 기술을 가지고 있었어요.
풍년숯불갈비의 사장님만의 시그니처 메뉴를 기억하는 손님이 많았어요.
손남상에 올라가던 떡도 주기적으로 쑥깨떡, 삭힌 감자떡, 취떡 다양했어요.그 시절 갈빗집 상차림은 한식 상차림과 비슷했어요. 제 기억에 배추뿌리 절임, 메추리알, 양념게장, 물김치, 샐러드, 반찬 등등.. 상다리 불러지게 차리신 거 같아요. 고깃집인데 설거지 이모가 세명이나 있었어요. 식기세척기가 있을 때도 아니고 그 당시 가게는 한옥이라 쟁반으로 옮기는 시스템 이모들이 엄청 고생했을 거예요. 차리고 치우고 엄청 힘들어을꺼 같아요. 엄마의 식당은 단순히 배를 채우는 공간이 아니라 마음을 채우는 공간이였어요.
내가 엄마에게 받은 유산이 사람을 섬기는 마음이 아닐까? 싶어요.
누군가는 귀찮게 힘들게 그렇게 까지 하냐고 하지만 정성도 난 실력이라고 생각해요.
지금 나의 사무실에 방문 하신분들에게 브런치를 제공하고 있어요.
방문하신 분들 환대할 때마다 이 장소를 기억할 것이고 이 공간에 머무르는 동안 존중받았다 느낄 것이고 충전해 다시 잘 살아내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엄마의 귀한 온기 있는 마음을 제가 이어갑니다.
세상에서 엄마의 따듯함이 제일 오래가지 않나요.
그 따듯함은 말보다 오래가고 물건보다 깊게 남기 마련이죠. 어떤 사람에게는 마음을 열게 만드는 열쇠이기도 해요.
엄마가 그랬듯 저 역시도 내가 만나는 모든 이에게 온기를 흘려보내고 싶어요.
엄마에게 받은 저의 유산이니 제가 지켜나가야 할 나의 가치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