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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laire Mar 15. 2018

29. 짧은 핀란드 이야기-2

내게 쏟은 한 달, 그 시간에 대한 이야기

나는 우리 가족에게 ‘국제적 쓰레기’를 사다 나르는 사람으로 유명하다. 이 국제적 쓰레기라는 용어는 내 동생 혹은 남편, 둘 중 한 사람이 지어낸 말로 내가 해외 여행시 집요하게 사오는 별로 중요해 보이지 않는 물건들을 말한다. 이를 테면 동남아시아만 갔다 하면 사오는 호랑이 연고 라던지, 유럽에서 사다들이는 차, 혹은 각 나라의 세제, 위생 용품 등등이 그들이 말하는 국제적 쓰레기에 포함된다. 요즘은 원단에 관심이 많아져 내가 사가지고 들어오는 국제적 쓰레기 리스트에 원단도 추가 되었다. 


그들이 내가 사오는 물건을 쓰레기라는 단어로 폄하하는 이유는 내가 그것들을 사놓고 사용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인데, 그것은 사실 매우 큰 오해이다. 사가지고 와서 바로 쓰지 않을 뿐 그 물건들을 고르는 순간부터 내 머릿속엔 언제 어디서 어떻게 그것들을 사용할 것인지가 계산되어 있다. (훗) 

  

마리메꼬라는 브랜드가 있다. 핀란드의 유명 브랜드들 중 하나로서 그릇, 원단, 의상, 가방, 신발 등등을 판매한다. 국민 브랜드라는 명성에 걸맞게 백화점과 면세점은 물론, 거리 곳곳에서도 마리메꼬 상점을 빈번하게 발견할 수 있고, 핀란드의 국적기 핀에어에선 해당 브랜드의 물건으로 각종 서비스도 제공한다. 절제되어 있지만 패턴이 과감하고 강렬해서 이 브랜드의 제품, 특히 원단을 보고 있으면 순간적으로 정신이 번쩍 드는 경험을 할 수 있다. 완전히 내 취향을 저격했다고 보긴 어려운 디자인이지만, 그 강렬함에 나도 모르게 이끌리게 되어 헬싱키에서 하루를 머무는 동안 제일 먼저 마리메꼬 아울렛을 찾게 되었다. 


아울렛은 시내 중심에서 좀 떨어져 있는 편이지만 이미 그곳에 다녀온 사람들이 블로그에 올린 상세한 설명 덕분에 어렵지 않게 도착할 수 있었다. 그곳엔 각종 그릇들과 여러 가지 소품 그리고 옷, 신발, 가방 등이 판매되고 있었는데, 내 관심을 끈 것은 오직 하나. 원단들이었다. 그 중에서도 재단을 하고 남거나 제품을 만들고 남은 자투리 원단을 무게로 달아 파는 곳에서 나는 혼이 쏙 빠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우선 경쟁이 매우 치열했다. 일본인들에게 더 유명한 (카모메 식당의 영향이 아닐까.) 마리메꼬라서 그런지 일본인들이 이미 그 코너를 점령하고 있었다. 물량 자체가 많지 않아 먼저 골라잡는 사람이 임자인 상황이었던 터라 정신줄을 꽉 잡고 원단을 고르기 시작했고 생각보다 괜찮은 물건이 많아 원단들을 품에 꼭 안고 뿌듯한 마음으로 숙소로 돌아올 수 있었다.

  

한국으로 돌아오자 마자 그 원단들을 이용해 딸아이 원피스와 가방 등등을 만들어대기 시작했다. 패턴이 워낙 강렬하다 보니 재봉을 하면서 발생하는 사소한 실수나 오점들이 티가 나지 않게 되어 결과물의 완성도가 높아 보이는 효과까지 발생했다. 추운 날씨를 뚫고 어렵게 이 원단들을 어렵게 들고 온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순간이었다. 


어떤 사람들에겐 쓸모 없어 보이는 물건이라 할 지라도 내겐 그 어떤 것보다 필요한 물건일 수 있다. 물건도 그렇고 인생도 그런 것 같다. 인생이란 것 자체가 각자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들을 잘 가꾸고 보살펴 스스로가 만족할 만한 무언가로 만들어가는 과정이 아닐까. 한번도 와보지 않았던 나라에서, 모르는 사람들의 설명만으로, 관광지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상점을 찾아, 여러 경쟁자를 제치고 사온 원단을 이용해 직접 가방을 만들어 들고 다닌 다는 것. 가방 하나에 담긴 이 길고 긴 이야기로 내 여행을 설명할 수도, 어쩌면 내 인생을 설명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소파에 앉아 텔레비전 리모콘으로 아주 멋진 가방을 1분 만에 살 수 있는 세상에 살고 있지만, 나는 어쩐지 그런 편리한 삶보단 이렇게 길고 긴 이야기가 있는 삶이 더 매력적인 것 같다. “그 가방 어디서 샀어? 예쁘다!” 라는 말에 한 시간 정도는 거뜬하게 가방에 대한 얘기할 수 있는 그런 다양한 스토리가 있는 삶 말이다. 내 삶의 색이 그렇게 다양한 무지개빛으로 물들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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