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쏟은 한 달, 그 시간에 대한 이야기
입국장이 열리고 그곳에서 날 기다리고 있던 그 두 사람을 보았을 때 느꼈던 안도감은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좋은 느낌의 감정이었다. 내가 탄 비행기가 안전하게 날 한국으로 데려다 주어 고마웠고, 내가 떠나 있던 사이 나의 소중한 사람들에게도 그리고 나에게도 어떤 무서운 일들이 일어나지 않아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다시 서로를 마주할 수 있게 된 것에 감사하고 또 감사했다.
혼자 있는 것을 좋아했고 사실 지금도 나는 여전히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한다. 영화도 혼자 보는 것을 좋아하고 일도 혼자 하는 것을 선호하며 휴식 시간도 혼자 갖는 것을 좋아한다. 혼자 하면 간단하게 끝날 문젠데 누군가와 같이 하려고 할 때 생겨나는 길어지는 대화나 전해야 하는 설명이 내겐 좀 벅찬 일이다. 남들이 말하는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생겨나는 ‘삶의 재미’라는 것이 나는 그렇게 재미있지 않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이런 생각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니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는 이런 나의 특징은 아주 오래된 것이다. 아기를 낳은 후에 내가 더 혼란스러웠던 것도 아마 이런 이유 때문이지 않았을까 싶다. 지금까지는 내가 사람들을 멀리하면 그 사람들도 나를 멀리하게 되어 아주 자연스럽게 혼자가 되곤 했는데, 자식이란 사람은 좀 달랐다. 내가 무엇을 하든, 어딜 가든, 내가 원하든 그렇지 않든 그녀는 나와 함께 하길 원했다. 집 밖으로 나가는 것도 아니고 나는 다만 화장실에 가고 싶은 것뿐인데 그 화장실까지 따라오려고 했던 사람을 만나게 되니 혼란스럽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이제 그 어떤 곳에서도 혼자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순간 나는 절망했다. 그리고 우울했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내게 있어 혼자 있는 시간은 밥을 먹고 잠을 자는 시간만큼 아니 어쩌면 그 보다 더 소중한 시간이었기 때문이었다. 온전하게 혼자 있을 수 없는 시간이 몇 년 동안 지속되자 조금의 과장을 덧붙여 나는 거의 미칠 것만 같았다. 내 삶은 의무감만으로 채워졌고 그 안에 즐거움이란 것은 점점 사라져갔다. 남편에게도 나에게도 그리고 무엇보다 딸에게도 그건 할 짓이 못됐다. 그래서 떠난 것이었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의무감이 아닌 애정으로 대하고 싶었다.
한 달이란 시간을 아주 빼곡하게 혼자 보내고 오니 사라진 삶의 에너지가 꽉 채워진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족이 보고 싶고 그리워졌다는 것이 중요했다. 그들과 함께 한 시간들 그리고 함께 할 시간들이 내 인생에 얼마나 소중한 부분인지 비로소 깨닫게 된 것이다. 가끔 가까이에선 보이지 않는 것이 아주 멀리서는 잘 보일 때가 있다. 등잔 밑에 있던 보물을 이제서야 발견하게 된 느낌이다. 그래서 공항에서 마주하게 된 그 두 사람을 보았을 때 그렇게 커다란 안도감을 느꼈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으로 돌아온 후 스페인에서의 자유로웠던 시간들이 그립지 않은 것은 아니다. 아마 나란 사람의 특성상 삶의 어느 한 순간, 반복되는 일상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사고할 수 있는 시간을 또 갈망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달라진 것은 어떤 선택을 내리든 이젠 내 곁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선택을 내릴 것 같다는 것이다. 그들이 없을 때 느꼈던 자유로움도 중요하지만 그들과 함께 있을 때 가슴 속 깊은 곳에서부터 느껴지는 따스함도 함께 소중해졌기 때문이다.
돌고 돌아 제자리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