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 소화불량, 위경련... 모두 내 이야기인 줄 알았다. 지난 발행 글 'ADHD 아이는 10명 키우는 것 같다'에서 엄마의 부정적 반응들, 엄마가 위경련까지 일으키며 힘들어하고 애쓰는 모습들이 전부 남일 같지 않았다. 위경련의 경우 정말 너무 아파서 떼굴떼굴 구른다. (실제로 굴러봄)
"아이 때문에 우울하다"라고 말하는 것은 죄책감이 크다. 내가 낳은 내 새끼인데, 이 아이 때문에 우울하다니. 차라리 내 탓이고 싶다. 아이를 탓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수시로 찾아오는 전쟁 같은 일상 속에서 '네가 너무 힘들어. 나 정말 죽을 것 같아.'와 같은 마음이 드는 순간이 왜 없을까. 솔직하자. 인정하는 것이 좋다. 아이 때문에 힘들다. '내가 아이를 다룰 줄 몰라서, 또는 내가 아이와 잘 지내지 못해서 힘들다' 이 정도까지는 괜찮지 않을까.
맞다. 부모란 그렇다. 나와 다른 아이. 나와 다른 인격체. 또는 아예 성향이 정반대일 수도 있는 나의 아이. 그 다름을 인정하는 것이 좋다. 그리고 약자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보호해주어야 할 존재'라는 생각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것을 잊는 순간, 백혈구가 나 자신을 공격하듯 나의 분신과도 같은 아이를 내가 공격하게 된다. 그런 사태만은 막아야지 않겠는가.
나도 그랬다. 이해할 수 없는 아이의 행동들, 너무나 충동적인 말과 행동. 갑작스레 내가 말릴 새도 없이 튀어나가는 아이 때문에 살얼음판을 걷는 것 같은 시간을 보냈다. 예민도는 최대로 올라갔고, 공격받거나 질시받지 않기 위해 나는 아이를 더욱 단속하고, 더욱 공고히 하려고 노력했다. 눈물 나는 시간들이었다.
하지만 그럴수록 아이는 내 품을 벗어나려 했다. 마치 세게 쥐면 세게 쥘수록 자꾸만 새어나가는 모래 알갱이처럼, 그렇게 아이는 흩어질 듯 위태롭게 나의 품을 벗어나려 했다. 반항, 또는 도발이었다.
자신의 충동을 자제하고, 생각의 필터를 거치는 과정을 아이가 스스로 습득할 수 없음을 양육자가 인지, 또는 인정하지 못할 경우 아이와 늘 전쟁을 치르게 된다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아 저것이 문제였구나!' 깨닫게 되었다. 평범할 수 없는 아이에게 평범하지 못하다고, 평범해지라고 나는 그동안 강요, 강압했던 것이다.
심지어는 문제를 일으키려고, 일부러 그러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다. 그리고 물어본다. "너는 그것을 예상하지 못했어? 당연히 이런 결과가 생기지! 예상 못했느냐고! 생각 안 해?" 물론 아이는 "아니요." 대답한다. 자신이 가져온 결과가 잘못되었다는 것 정도는 충분히 알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행동을 하기 전까지는 결과를 예측할 수 없고, 그 능력을 습득하기 어렵다는 말에 나는 그동안 아주 크게 잘못해왔음을 알게 되었다. '당연히'라는 말에 자기가 당연한 것을 몰랐다는 자책을 하지 않았을까. 예상 못하느냐고 다그치는 말에 예상할 수는 있지만 하지 못하는 자신이 얼마나 한심했을까. 나의 말들이 아이로 하여금 자책하게 만들고 자존감을 깎아내리고 있었다.
3살이 어린 동생도 충분히 예측하고 하는 행동을, 3살이 많은 형은 하지 못했다. 그래서 자연스레 비교하게 되었고, '일부러 화나게 하려는 것 같다'라고 생각했다. 아이가 어려움을 겪고 있을 줄은 몰랐다. 내가 나 자신을 공격한 것처럼 아팠다.
방송 시청 이후 아이가 '일부러 골탕 먹이려고 이상한 행동을 한다'라는 생각을 그만뒀다. 습관처럼 해오던 생각이라 버리는 것이 쉽지 않았지만, '아이가 어려움을 겪고 있고 그것을 도와줄 사람은 엄마인 나뿐'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면 아이가 짠하고, 그런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 아이가 안쓰러웠다.
언어 충동성 또한 높은 아이라서 수시로 대화에 끼어들고, 훼방하는 일이 많았는데, "잠깐만" 시키고 기다리게 하며 인내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늘 잊지 않고 하려고 했던 말을 들어주려 노력했다.
아이는 당시 마음이 급해서 말을 더듬는 증세가 있었는데, "잠깐만 기다려, 너도 말하게 해 줄게."라고 말하며 잠시 차분하게 생각을 정리할 시간을 주니 아이의 더듬는 습관도 개선되었다.
아이가 겪는 모든 일들은 나도 전부 겪었던 일들이다. 그때 내가 그런 취급을 받을 때 어떤 기분이 들었는지를 떠올리며 아이에게 하나하나 상세하게 코치해주었다.
아이는 노하우를 배웠다. 자연스레 습득하지 못하는 아이. 그런 아이에게 자연스레 습득할 것을 요구하기보다 명확하게 알려주자 아이는 덜 힘들어했다. 그리고 알려준 대로 해보려고 노력하는 모습에 감사했다.
엄마의 생각과 인식이 바뀌면, 아이에게 좋은 교육을 해줄 수 있다고 믿는다. 누구나 가능하다. 다만 나의 편협한 사고가 아이의 앞길을 망칠 뿐이다. 못하는 것을 못한다고 인정해줄 줄 아는 너그러운 부모가 되려 노력해야 하는 이유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