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나는 종종 혼이 나고는 했다. 그것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일어나는 일이었다. 왜냐하면 나의 잘못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았기 때문에 그랬을 것이다.
성장과정에서 그런 부분이 너무했다고 생각하거나, 조금 더 소중히 여겨주시면 안 됐었나 생각하며 서운할 때가 종종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까지 많이 속상한 것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내 주변은 거의 대부분 그런 분위기였으니 말이다.
그런데 유독 상처가 된 일이 있었는데, 그것은 엄마가 다른 사람들 앞에서 나를 흉보는 행동이었다.
엄마의 지인이 모인 것인지, 아니면 친척들이었는지는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정확한 것은, 엄마는 같이 있는 그분들에게 그렇게 나를 욕했던 것이다.
물론 엄마는 나를 욕하려거나 나를 욕보이려거나 내게 어떤 불이익을 주려는 것은 아니었다. 그냥 하소연 같은 것이리라. 하지만 그때마다 나는 몸 둘 바를 몰랐다. 나도 나를 같이 흉봐야 할까? 아니면 반성하는 모습을 보여야 할까? 별의별 생각이 머릿속을 휘젓고 다녔지만 결국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그냥 가만히 듣고 있다가 뾰로통하게 자리를 뜨거나 못 들은 척, 못 알아듣는 척하며 어색하게 사라졌다.
그런데 그럴 때 참 반가운 것이, 내 역성을 들어주는 분이다. "에이~ 아직 어려서 잘 모르는 거지요~" 이런 말들 말이다.
시골 외가댁에 모일 때마다 외숙모는 그렇게 푼수 같았다. 팔불출처럼 푼수처럼 그렇게 자신의 딸이 무엇을 잘하는지 자랑을 해대셨다. 그리고 나는 그런 외숙모가 푼수 같아 보이면서도 나빠 보이진 않았다. 그런 숙모를 자제시키는 외삼촌이 곁에 있었기 때문이리라.
한 번은 그 외숙모 댁에 며칠 놀러 갔다. 나이 차이가 나지 않는 외숙모의 딸과 자매처럼 지냈기 때문이다. 며칠을 그 가족과 지내면서, 외숙모가 그 사촌동생을 무던히도 구박하는 것을 보았다.
방 좀 치워라, TV 좀 그만 보고 공부 좀 해라, 만화책 좀 어지간히 봐라, 빨래 좀 정리해라 등등 잔소리를 엄청 해대시는 거다. 동생은 나랑 비슷한 잔소리를 듣고 있었고, 어찌 보면 너무 정리와 청소를 하지 않아서 같이 지내기 불편했다. 그런데 그 집에 외숙모의 친구분들이 잠시 방문하는 일이 있었다. 외숙모는 또 그 동생의 자랑을 하기 바빴다. 동생은 창피해했지만 나는 부러웠다.
그때 나는한 살 어린 사촌 동생과 나를 비교해 보았다. 별반 다를 것 없는 그 아이와 나. 그런데 다른 점이 있었다. 바로 '자존감'이었다.나는 늘 나를 부끄러 히 여기고, 나서지 못하고, 숨어야 하는 타입이었지만 재능이 많았다. 그런데 늘 잘 못한다는 평가로 자신감이 결여돼 끝내 이루지를 못했다.
그 아이는 자존감이 높았다. 자존심이 무작정 센 것이 아니라, 자존감이 높아서 타인에 대한 존중도 할 줄 알았다. 그래서 그런 동생에게 끌렸던 것 같다.
그 동생이 재능이라고 보여주는 것은 없었다. 당시 우린 평범한 10대였다. 그 동생도 그런 평범한 10대였다. 그런데 그 아이가 내게 부러워하는 것들이 몇 가지 있었다. 정리정돈을 잘한다던지, 뭔가 집중해서 하려는 것이 있다던지, 손으로 만드는 것을 잘한다던지 하는 것들을 보며, "언닌 참 잘하는 게 많아. 관심사도 많고." 그랬던 것 같다.
하지만 나는 그 소소한 재능 중에 살린 것이 하나도 없다. 다 가치 없고, 부질없게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별반 재능이 없어 보이던 그 동생은 갑자기 강아지를 엄청 이뻐하더니, 애견 미용에 관심을 갖고, 그것을 전문적으로 배워 애견 미용사로 일하기 시작했다.
나는 이룬 것 하나 없이 사는데, 무언가 자기 꿈을 좇는 그 동생이 부러웠다. 그렇지만 무엇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잘하는 것은 많았지만, 그것들을 잘한다 하여 내 미래에 큰 영향을 끼칠 것 같지 않아 포기했다. 그렇게 남들 다 하는 공무원 공부도 하고, 평범하게 취직해서 평범하게 살았다. 나는 늘 뜨뜻 미지근한 삶을 살아왔다.
물론 자존감이 부모가 남들 앞에서 자녀를 어떻게 말하느냐로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하나의 시그널이다. 그런 행동들이 모여 자존감을 살리느냐 파괴하느냐의 방향을 정하는 것이다.
언급했지만 나는 수없이 맞았으며, 무시당했으며, 비난당했으며, 비교당했으며, 애정을 받지 못했으며, 수많은 요구사항에 고분고분 따라야 했다.
사촌동생은 늘 존중받았으며, 관심과 사랑과 애정을 고루 받았으며, 자존심이 꺾이는 말을 듣지 않았으며, 자유로운 선택 속에 안정적인 사랑을 받으며 성장했다.
나는 그런 과정에서 좌절과 불안과 우울감을 느끼며 살아왔다. 늘 이해받지 못하고, 비난당하며, 잘한 일에 제대로 칭찬이나 인정받는 말 한 번 들어보지 못하고 컸다. 나는 늘 목말라 있었다.
자녀를 낳아 키우는 과정에서, 나는 나로부터 나의 부모가 튀어나오는 것을 여러 번 느꼈다. 그리고 무엇이 옳은 행동인가를 늘 스스로로부터 질문받았다. 그리고 어린 시절의 엄마처럼 하려는 행동, 어린 시절의 아빠처럼 하려는 행동을 멈추었다. 대신 나에게 새로이 입력된 외숙모처럼 해보고자 노력했다. 똑같이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아이 듣는 앞에서 아이에 대한 불평은 하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그것은 효과적이었다.
결국 모든 것은 유산이다. 교육방침 또한 하나의 문화로 이어지는 것이다. 내가 그렇게 대우받은 만큼 내 자녀에게 하게 된다. 나에게 새로운 모델이 없었다면 나 또한 어떻게 행동했을지 모를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