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가족은 늘 화가 나있었고, 모든 화는 첫째에게 향해 있었다. 아이에게 화내는 남편에게 화내지 말라며 화내는 아내. 이해할 수도 견딜 수도 없다는 남편에게 내 새끼니까 건들지 말라며 아이를 품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남편이 정말 후회할 행동을 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자꾸만 멍해지는 아이는 우울증인 엄마도 견디기 힘들었다. 다른 세상에 혼자 살고 있는 아이. 자신의 행동이 왜 잘못됐는지 모르는 아이. 욱 해서 폭발해버리는 아이... 하지만 언제나 인지발달과 언어발달이 좋으니 아이에게 특별한 문제는 없다는 말만 돌아올 뿐이었다. 결론은 엄마의 사랑이 부족하고, 가족의 사랑이 부족하고, 아빠의 애정이 부족하고.... 늘 부모가 문제였다.
나는 유치원 교사에게 언제나 죄인이 되었고 다른 아이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나 노심초사였다. 아이가 집중해주지 않아서 어쩔 수 없이 아이에게 엄격하게 대한다는 선생님의 말씀에 그저 감사하다는 말뿐이 못 하는 못난 우리 가족이 슬펐다.
당시 아이를 도와주기 위해 adhd에 대해서 정말 열심히, 내가 모을 수 있는 최대한의 자료를 찾아 공부했다. 그런데 점점... 나 자신에 대한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그것은 점점 확신으로 바뀌었고, 신경정신과에 가서 검사를 의뢰했지만 우울증일 때는 검사할 수 없으므로 우울증 치료를 하고 나서 검사를 해보자고 하였다.
하지만 치료는 어렵다고 하였다. 성인의 경우 보험 적용이 안 되어약 값이 많이 비싸다는 것이다.스스로 알아서 자신의 집중력을 컨트롤해야 한다는 뜻이구나 싶었다.
나는 이미 알고 있는 답변을, 검증을 통해 확답을 들었을 뿐이었다. 이미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는데 말이다. 그런데 내 마음에 바람이 불었다. 스산하고 얼음장 같은 차디찬 바람이 불었다. 죄책감의 바람이었다.
이미 공부를 통해 알고 있었다. adhd는 유전이 될 확률이 높다고. 검사 결과를 듣기 전에도 '나 때문에 그런 것 같아'라고 생각했으면서 말이다. 막상 확답을 듣고 나니 나는 주홍글씨라도 달아버린 듯이 막막해져 버렸다. 그러자 가슴이 먹먹해져 왔다.
그로부터 며칠이 의미 없이 지나갔다. 나는 아이보다 더 멍해진 상태로 겨우겨우 일상을 이끌어가고 있었다. 아이들이 옆에서 엄마가 무얼 해야 할지 알려줘야 할 정도로 나의 정신세계는 무너져 있었다. 만약 누군가 콕 찌르면 그대로 와르르 무너질 것 같은 산산조각 난 유리잔을 간신히 이어 붙인 것처럼. 그렇게 나는 존재하고 있었다.
나는 불안해하는 아이들을 더는 두고 볼 수 없었다. 하지만 이대로 이전처럼 덮어버릴 수도 없었다. 아이에게 향하는 죄책감, 그 너머에는 부모에 대한 미움과 원망이 있었다. 이런 나를 단 한 순간도 이해해주지 않았고, 나를 문제아 취급하며 구박데기로 살았던 그 과거 말이다.
나는 엄마 아빠에게 욕을 퍼부었다. 그 옛날 내가 그들로부터 들었던 욕을. 나는 정상이었다고, 다만 아팠을 뿐이라고. 내가 지금 이렇게 정상적으로 살지만 가끔 우울에 빠지는 이유는, 당신들이 나를 이렇게 만들어 놓았기 때문이라고!
나는 adhd 였고, 내 의도나 내 마음이 나빠서가 아니라, 내 머리가 조금 고장 나서, 마음이 시키는 충동을 머리로, 이성으로 억제하지 못했고, 그래서 그렇게 이해받지 못할 행동을 했던 것뿐이라고.
나도 그저 부모님께 평범하게 사랑받는 여자아이이고 싶었다고. 나도 잘하고 싶었다고. 나도 인정받고 싶었다고. 나도 안아주기를, 따뜻하게 품어주기를 바랐다고!
그렇게 나는 화장대 앞에 앉아, 있지도 않은 부모님을 향해 소리를 지르며 목놓아 울었다. 아픈 가슴에 피눈물이 흐른다면 이런 느낌일 것이다. 억울해서 몇 날 며칠 잠을 못 이루던 그 어린날의 밤들. 수많은 고통의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그 끝에는 두려움에 웅크린 어린 내가, 반대편 이쪽 끝에는 상처 받은 나의 어린 아들이 서 있었다.
가슴이 찢어지면 이렇게 아플까. 내가 겪은 과거의 아픈 기억들이 어린 아들의 발 앞에 레드카펫처럼 놓이는 환상을 보았다. 그리고 그 어떤 상황에서도 가장 큰 상처가 되었던 나의 부모님의 태도. 그것을 나도 하고 있지는 않았던가! 내 부모처럼 나도 아들에게 그렇게 하지 않았던가! 내가 쏟아낸 원망은 고스란히 나에게 부메랑처럼 돌아와 박혀 버렸다.
'이제 더는 이렇게 살 수 없어!'
과거에 붙잡힌 채로 살 수 없다. 내 부모는 무지했고, 당시에는 다들 그랬다. 내가 성장하던 시기에는 이런 병명이 있지도 않았다. 물론 증상과 증세는 있었지만, 제대로 조명되지 못하였던 문제겠지만. 어쨌든 나의 이런 문제는 알아낼 수도, 해결할 수도 없는 문제였다.
다만 부모님이 나를 좀 더 잘 보살펴주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 것이다. 하지만 이미 흘러간 과거를 다시 끄집어 와서 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할 수 없는 과거를 붙드는 것은 망령일 뿐이었다.
'이제는 내 삶을 살아야 한다!'
아이와 나. 우리 둘이 해결해 나가야 할 미래다. 그 안에서 나의 역할이 무엇인가?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 나는 스스로에게 그런 질문을 했다. 그리고 나는 다짐했다.
'내 꿈을 실현할 거야!'
내가 글을 쓰고 싶었던 그 꿈을 실현시키자고 마음먹었다. 엄마도 adhd로 살았고, 엄마는 치료도 받지 못했지만, 그래도 뒤늦게라도 알고 이렇게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했다고. 그러니 너도. 너도 네 꿈을 펼치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