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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품있는그녀 Aug 12. 2020

12. 감격의 졸업식

"어머님~! 저랑 사진 찍어요!"

우울증으로 방구석에 틀어박혀 있다가 계획표를 쓰고, 청소를 하고, 주변 정리를 시작하면서 내 마음은 강해졌다. 툭 건들기만 하면 울 것 같은 내 얼굴에 드리워졌던 그림자가 조금은 옅은 색을 띠기 시작했다.


눈이 유난히도 적었던 그 해 겨울, 봄이 오기 전 마지막 추위를 마음껏 발휘하는 동장군이었다. 아이가 유치원 졸업하는 날이 왔다.


나를 왕따 시키던 엄마들, 그 속에서 따뜻하게 대해준 몇몇 분들. 자신이 주동자에게 엮인 줄도 모르고 방관했던 방관자들. 그 모든 사람들과 한 번에 만나야 하는 자리였다. 그것도 그들의 남편과 함께.


나는 고운 화장품을 꺼내어 곱게 곱게 화장을 했다. 유튜브로 마음 치유 공부도 했지만 화장술도 보고 익혔다. 그리 잘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윽한 눈매랄지, 코가 오똑해 보이는 화장법 이랄지, 그런 소소한 것들을 기억해 내며 세 보이지 않고 우아하게 화장하고자 했다.


옷장에서 그럴듯한 꾸안꾸 옷을 꺼냈다. 화려하지도 튀지도 않으면서 그래도 기죽지 않게 입기 위해 노력했다. 이 옷 저 옷 갈아입어보며 제일 자신 있어 보이는 옷을 입었다.


조금, 심장이 두근대는 것을 느꼈다. '나는 가기 싫은 것일까?'


"아직 멀었어?"


남편의 부름에 나는 생각을 멈췄다. '가야 한다!' 아이를 위해서. 그리고 나를 위해서.


나는 예쁜 미소를 지어 보이는 연습을 거울에 대고 해 보았다. 그리고 "음... 됐어!"라고 내 옷과 화장과 머리를 훑어보며 말했다. 이 정도면 됐다는 생각을 하며 남편과 아이와 함께 졸업식장으로 갔다.


그것은 내게 자신감을 불어넣어주었다. 기죽을 것 없다고 내가 나 자신에게 말하고 있었다. 남편이 내 곁에 있으니까! 그리고 오늘 나는 자신 있으니까! 기죽을 필요 없어!


'나는 따돌림당하지 않아. 내가 거절해.'


사실은 중요하지 않다. 내가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가 중요했다. 나를 받아주지 않으면 나는 거절하면 그만 아닌가. 그런 생각들을 하며 나는 마음을 단련하고 졸업식장에 들어갔다.




원래 주동자는 양의 탈을 쓴 늑대처럼 천사의 얼굴로 가장 반갑게 반긴다. 그 의도가 너무 뻔해서 우스웠다. 나는 부드러운 미소로 응대하며 남편과 자리를 찾아 앉았다. 함께 앉아줄 남편이 있음에 감사했다.


졸업식 행사가 마무리되고 서로 인사를 나누며 흐지부지 끝나가는데, 아이의 졸업식 모습을 남기고 싶어 스마트폰을 들어 사진을 찍어주었다. 그리고 선생님께 같이 사진을 찍어달라고 하고 싶었다. 그런데 선생님이 먼저 나를 발견하고는 재빠르게 다가오며 말했다.


"어머님!! 저랑 사진 찍어요!! 너는 나랑 꼭 찍어야 돼!!"

라며 우리 아이를 꼭 끌어안고 사진을 찍었다.




지난 5개월간 아이는 정말 많이 변했다. 폭력성발작적인 분노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우울감도 종종 보였는데 거의 사라져 있었다.


선생님은 가장 먼저 아이를 맨 뒤에 앉히는 걸로 시작하셨다.


"어머님, ○○이를 이제 제일 뒤에 앉혀요. 맨 앞에 있으면 뒤돌아 앉으니까요. 차라리 맨 뒤에 앉히니까 앞만 보고 있게 되니 수업에 잘 참여할 수 있게 되었어요!"


듣던 중 반가운 소리였다.


"○○아, 요즘 유치원에서 어때?"


"재미있어요!"


"그래? 선생님은? 지금도 무섭게 대하셔?"


"아니요! 선생님이  친절하게 대해주세요. 선생님 좋아요!"


며칠 만에 아이는 담임 선생님이 좋아졌고, 유치원이 좋아졌다. 그리고 학습 태도도 점점 적극적이 되어갔다.


"○○이가 이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어요! 전에는 늘 백지상태로 전혀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고 해서 제가 어떤 지도도 해줄 수 없었는데, 이젠 뭐라도 하기는 해요 어머님!"


잘한다는 말을 듣길 기대하지 않았다. 잘하는 아이니까. 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 하는 점이 문제였다. 흥미가 있는 활동은 세상 열심히 하지만, 흥미가 없는 활동은 아예 거부하던 아이였다.


아이는 여섯 살부터 그림과 색칠을 거부하기 시작했다. 잘 그리던 그림에 갑자기 그림을 없앨 것처럼 마구 낙서를 했다. 또는 갑자기 그림을 찢어버리기도 했다. 그러고는 씩씩 거리며 분노를 참지 못하는 듯이 행동하였다. 그것이 심해지면 자기 머리를 때리거나 주먹으로 책상을 쾅쾅 두드렸다. 그래도 성에 안 차면 그냥 울음을 터뜨리고 엉엉 울었다. 그러더니 일곱 살에는 아예 그림과 색칠을 거부했다.


"나는 못해요"


나는 원인을 알았다. 아이는 더 잘하고 싶었던 것이다. 자신의 머릿속에 그리고 싶었던 그림과, 막상 자기 손으로 만들어낸 그림의 차이가 보이는 순간, 아이는 모두 파괴해버렸다.


이 일을 처음 겪었을 때는 경악했고, 화가 났다. 그러나 점점 익숙해지며 아이를 달래고 설득하며 엄마는 보기 좋다고 했다. 엄마 눈엔 너무 잘 그린 것 같다고. 그러면 아이는 자기 눈에는 마음에 안 든다며 거부했다. 점점 지쳐갔다. 어떻게 해야 할지 방법도 모르겠고, 그렇게 점점 포기하게 된 것 같다. 언젠가 잘하게 되겠지 라는 생각에.


그렇게 내가 포기한 것이 결국 외부에서 드러났다. 나는 조금 더 노력해야 했다. 그것이 후회되었지만 이미 때는 지났다. 이제부터라도 포기하는 일 없이 때에 맞게 노력하리라는 다짐을 했다.




"어머님, 제게 시간이 좀 더 있었더라면 좋았을 텐데요! ○○이 정말 많이 좋아졌는데, 저랑 딱 1년만 더 같이 있었더라면 훨씬 달라져서 보낼 텐데, 너무 아쉬워요."


"제 교사생활 동안 가장 힘들고 어려웠고, 저를 도전하게 만든 아이예요! 그런데 이렇게 변화되고 좋아져서 가게 되니 제가 정말 안심입니다."


"앞으로 어머님이 더 많이 힘드시겠지만 그래도 지금까지 해오신 대로 하다 보면 훨씬 더 좋아질 거예요. ○○이가 이래 봬도 무엇이든 빠르게 잘 습득한다는 점이 최고 강점이거든요!"


"학교 가면 더 잘할 거예요! 잘해야 돼, ○○아!!"


마치 물가에 아이를 내놓으려는 것처럼 나보다 더 애타 하는 선생님이셨다. 그 애정이 말과 행동과 표정으로 모두 보였다.


'은사님이구나!'


우리 아이가 선생님 복이 있었구나! 엄마 마음으로, 스승의 마음으로, 애정으로 아이를 보아주셨구나! 아이의 어려움을 이해하고자 노력하셨구나! 진정으로 아이를 돕고 싶으셨구나!


그 모든 마음이 선생님으로부터 전해졌다. 내 눈에도 선생님 눈에도 눈물이 그렁하게 고였다. 너무나 감사해서 깊이깊이 허리 숙여 인사했다. 철부지 아들은 내일 또 만날 것처럼 개구진 인사를 하였다. 그런 아이를 보며 흐뭇하게 미소를 지을 수 있을 만큼 내 마음은 너그러워졌다.


'그래, 다시 본래의 순수함을 찾아가는구나!'

좋은 시그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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