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ADHD 진단을 받고, 놀이치료를 시작했다고 하여 극적인 변화는 없었다. 여전히 아침마다 전쟁이었고, 동생과 소리를 지르며 싸웠고, 밥은 먹지 않고 멍하고 앉아있었다.
양치하러 간 아이는 30분씩 가만히 서 있었고, 친구들과의 관계는 여전히 나빠서 친구들이 놀아주지 않는다며 우울해 했다.
무언가 시키면 완성되는 일은 없었고, 옷을 입으라고 주면 가만히 놔두고 앉아있거나 또는 다른 놀이에 빠져서 입지 않는다. 그래서 몇번이고 입으라고 말을 해도 입지 않는다.
그러면 첫째의 옷을 입히는 동안 세살 어린 동생은 스스로 옷을 입으려고 하고 있다. 밥을 먹지 않는 일곱살 아이에게 밥을 떠먹이다 보면, 그러느라 정신없는 엄마를 기다리던 네살 짜리 동생은 스스로 밥을 먹고 있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있자니 자연히 비교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기껏 떠 넣어준 밥조차 먹지 않고 물고 있으면 그게 또 속이 터진다. 그리고 매일 보는 우리 집도 신기하게 쳐다보는 아이를 보면 너무 답답해서 미칠 것만 같았다. 마치 공중에 무언가 재미있는 것이 떠다니는 것을 바라보기라도 하는 것 처럼, 아이는 온갖 상상의 나래를 펴느라 밥 먹을 틈이 없었다.
또 마음대로 되지 않으면 소리를 지르며 울었고, 갖고 노는 장난감이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때면 마구 화를 내다가는 울거나 분노를 터뜨렸다.
어떤 한 두 가지 문제를 해결하려 노력할 틈이 없었다. 모든 면에서 아이는 어려움을 겪고 있었고, 그 모든 것을 해결해주기에 나의 정신력의 한계는 생각보다 짧았다.
그런데 옆에서 세살 어린 동생이 잘 하는 것을 보자면 그게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런 둘째에게 칭찬이라도 하게 되면 질투심과 경쟁심이 불타오르는 첫째는 잘 되지 않는 자신 때문에 좌절하거나 울거나 화를 냈다. 그러다 심해지면 동생을 공격했다. 그래서 경쟁심이 높은 형제를 키우는 데 있어 칭찬은 괜한 경쟁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어서 조심스러웠다.
첫째 하나일 때는 누구 눈치볼 것 없이 사랑하고, 아껴주고 칭찬해줬는데, 둘이 되고나니 둘 사이에서 눈치볼 것이 많아졌다. 그런 둘째가 안쓰러운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하루는 첫째가 너무 딴세상에 있어서 하루를 마무리 하는데 너무 힘든 날이었다. 간신히 아이들을 마무리 했다. 물론 혼내지 않고, 화내지 않겠다는 다짐은 며칠에 한 번씩 다시 재정비 해야만 했다. 그 날도 화를 참지 못한 스스로를 자책하며 제대로 따라주지 않는 첫째를 원망도 하면서 지치고 지친 하루를 돌아보는데, 잠이 든 둘째가 눈에 들어왔다.
'너라도 있어서 다행이야!'
둘째는 나에게 위로였다. 첫째가 유독 지독하게 힘들게 하는 그런 날이면 둘째의 존재는 감사함이었다. 아이가 ADHD인 것을 몰랐을 때도, 그리 정상이지만은 아닌 행동들 때문에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어서 너무 고통스러운 그런 날들이 있었다.
그럴 때 지극히 정상 범주인 둘째를 볼 때면, '내가 문제인 아이를 낳은 것은 아니구나. 내 잘못은 아니구나. 내가 무언가 잘못을 해서 아이가 비뚤어진 것은 아니구나. 나때문만은 아니구나.'라는 안심이 생겼던 것이다.
또 그런 생각을 하고는 화들짝 놀랐다. 차마 입 밖으로 내어놓지는 못하고 생각을 주어담았다. 이 마음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기를 바라면서 눈물이 났다. 이런 생각밖에 못하는 못난 엄마라서 너무 미안해서 견딜 수 없었다.
나는 그렇게 늘 죄책감과 자책과 미안함과 화와 분노조절 장애의 날들을 견디고 있었다. 마음은 멍들대로 멍들었고 지친 마음은 우울증을 가속시켰다. 나는 일상생활을 거의 할 수 없는 지경이 되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