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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품있는그녀 Jul 28. 2020

1. 우리 아들은 ADHD인 것 같다

남편은 인정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



2018년 9월, 나는 심리상담소에 예약을 잡았다. 초기상담은 그림 심리 상담, 설문 등이 동반되므로 시간적인 여유가 필요해서 바로 상담받을 수 없었다. 가까스로 마음을 먹었는데 다시 또 기다려야 하는 시간이 고통스러웠다.


남편에게 ADHD가 의심이 되니, 정신과 상담을 받아보겠다고 했다. 그러자 남편은 "내 아이가 뭐가 문제냐!"며 화를 냈다. 아이의 문제가 곧 자신의 결함이 되는 세대다. 그의 자존심에 금이 가는 것이 보였다. 진심으로 분노하는 것이 보였다.


애꿎은 아이에게 화를 냈다. 너는 아빠가 다 해주는데, 도대체 뭐가 문제냐고. 엄마 말 좀 잘 들으라고. 그리고 자연스럽게 화살이 나에게로 향했다. 유난 좀 그만 떨라고. 조금 활발한 것 가지고 무슨 정신병자 취급이냐고. 이미 ADHD는 정신병이 아니라는 말로 시작했지만, 그의 마음에 그런 말은 들리지 않는 것 같았다.


남편은 종종 귀가가 늦었고, 술에 만취해 들어왔다. 그리고 첫째와 만나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다. 아니라고 하지만 첫째의 모든 행동들을 가장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아이의 아빠이기도 했다. 그는 수시로 대노했고, 아이를 당장 죽일 것처럼 분노를 터트렸다.


남편과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은 언제나 '말을 듣지 않아서'였다. 그냥 같은 공간에 있지만 다른 공간에 있는 느낌이었다. 7세가 되도록 밥 먹이는 것도 힘들었고, 밥을 먹다가도 깊은 생각에 빠지거나, 자신만의 놀이에 빠진다. 언제나 정신의 일부분을 따로 떼어두고 다니는 것 같았다. 함께 있어도 함께 있는 것 같지 않은 내 아이였다.


나는 하루 종일 두 아들 시중을 들다가 넉다운이 되고는 했다. 첫째는 늘 산만하고 딴생각에 장난칠 생각으로만 가득하고, 둘째는 하고 싶은 것 많고, 잘하지는 못해서 엄마 손이 필요한데 엄마는 늘 바쁘니 짜증이 가득했다. 그렇다고 형이 동생을 돌봐주거나 양보하거나 기다리는 일은 없다. 동등하거나 더 받아야 했다. 또는 뺏기도 했다.



초기상담이 있던 날, ADHD가 의심되어 왔다는 말에 상담 선생님은 의아해했다. 보통은 엄마가 ADHD를 의심하기보다 담임 선생님이 ADHD를 조심스레 이야기해서 억지로 오는 경우가 많은데, 나의 경우는 특이하단다. 그리고 아이의 언어 발달과 인지발달이 너무 좋아서 ADHD를 의심하기 어려울 것 같다고 했다. 하지만 결과는 예상 밖이었다. '심각' 수준이라는 결과를 받았다.


"보통 이 나이 때의 아이들은 ADHD로 인해서 학습에 장애를 겪습니다. 그래서 학습을 시키려고 해도 진도를 나가지 못하고, 아이가 따라주지 않고, 오히려 이상행동이나 폭력 행동, 산만한 행동, 과잉행동을 하여 담임 선생님이 ADHD가 의심이 된다고 부모님께 말하게 됩니다. 그러면 보통의 부모님들은 그것을 인정하지 않으세요. 담임 선생님과 싸우는 경우도 있고, 유치원을 옮기기도 해요. 정신병이라고 생각하시거든요. 그래서 아예 내원하지도 않으시는 경우도 허다하고, 그러다 걷잡을 수 없이 심각해져서 뒤늦게 찾아오시는 경우도 있었어요."


"그런데 어머님은 스스로 찾아오셨네요. 정말 대단하신 거예요. 현재 아이는 인지발달을 제외하고 모든 부분에서 심각한 수준입니다. 똑똑한 ADHD예요."


"머리가 좋은 ADHD는 자기가 언제, 어디서 풀어져도 좋은지 정말 잘 감지해요. 누울 데를 정말 잘 파악하고 다리를 뻗죠. 그래서 한 번 꾸준하게 이어가던 루틴을 놓치면 다시 바로잡기까지 정말 힘들어요. 그래서 이런 아이들이 주말을 지나거나 방학이 되면 원점으로 돌아가고는 하죠."


그동안 ADHD를 의심해서 나름 알아보았기 때문에 ADHD에 대한 지식은 충분히 있었다. 나에겐 내 아이가 ADHD가 맞다/아니다 라는 진단이 필요했던 것이었다. 그리고 그에 맞게 아이에게 도움을 주고 싶었다. 내가 해줄 수 없는 전문 영역이니까 말이다.


그런데 아무래도 임상으로 많이 접했던 현직의 선생님은 아이를 빠르게 파악하고 아이의 성향에 대해 이야기해주셔서 정말 좋았다. 드디어 엉킨 실타래가 풀리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희소식은 아니었지만,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 80%는 확신하고 있었기에 20%의 아닐 가능성에 희망을 품을 수는 없었다. 그렇게 나는 깔끔하게 인정했다. 우리 아이는 ADHD라고.




(자녀의 이상행동으로 고통받던 시간으로 돌아가 지금 고통받고 있는 엄마들을 위로합니다. 완치가 없는 어떤 증상일 뿐인 ADHD. 문제라고 생각하면 고통일 뿐이지만, 성향이라고 생각하면 그냥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나를 더욱 큰 그릇으로 만들어준 나의 아들에게 감사하며 이 글을 아이와 가족에게 바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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