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에게 adhd 약을 먹였기 때문이었다. 내가 약을 먹기로 결정한 것은. 아이 혼자만 견디도록 놔두고 싶지 않았다. 나도 먹으면서 그 약의 부작용, 약의 효과 등을 내가 직접 느껴보고 싶었다.
역시 비보험 정신과 약은 무척 비쌌다. 오래 먹을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일단은 약을 먹은 후 내게 일어나는 변화를 체크해야 했다.
약을 먹고 나서 나는 아주 차분해지는 것을 느꼈다. 한 없이 들뜨던 마음이 찬물을 끼얹은 듯 고요해졌다. 그제야 나는 감정의 기복을 느끼지 않는 평온함을 처음으로 느꼈다.
나는 그동안 수시로 불안했고, 갑자기 즐거워졌다가 갑자기 침울해지고는 했다. 과거에 있었던 이불 킥 기억이 갑자기 흙탕물이 튀어 오르듯 기억의 저 편에서 소환되는가 하면, 누군가로부터 핍박당하거나 괴롭힘 당하거나 억울했던 일이 떠오르기도 해서 가슴이 마구 요동치고는 했는데 말이다. 그런 감정의 편린들이 더는 나의 일상을 수시로 잠식하지 않았고, 지금 현재 나의 일에 집중할 수 있었다. 놀라운 경험이었다.
'평범한 사람은 이렇게 사는 것인가?'
갑자기 부러워졌고, 갑자기 서글퍼졌다.
약의 용량을 올렸다. 처음부터 약한 용량이었기에 필수 과정이었다. 그리고 나는 여지없이 부작용에 시달렸다. 어지럼증, 침울함, 소화불량 등이 찾아왔다. 나는 이 약을 먹을 수 없음을 깨달았다.
물론 다른 약으로 바꿀 수 있었다. adhd 치료약은 다양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만하기로 했다. 일단 비용이 너무 비쌌고, 이제 나는 이렇게 요동치는 감정과 마음인 상태로 내 일상을 영위하는 방법을 터득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계획하기'였다.
무슨 복잡한 생각이 나를 파고들어도, 나는 그 생각들을 계속하든지 또는 무시하든지, 일단 내가 계획한 일상을 강행한다. 그렇게 하다 보면 그 기억으로부터 벗어나기도 하고, 벗어나지 못했더라도 계획을 달성한 성취감으로 인하여 기억이 주는 고통을 상쇄했다. 나에게 있어 치료제는 약이 아닌 '플랜'이었다.
결국 나는 나다. adhd인 나도 나고, 우울한 나도 나다. 우울은 나를 지키기 위한 것이며, adhd는 나의 특징이었고, 또는 나 자체였다.
더는 그것을 거부하지 않기로 했다. 나는 adhd다. 나는 조금 문제를 갖고 있지만 어느 부분에 있어서는 또한 뛰어나기도 하다. 나의 일부분일 뿐인 것을 도려내려고 노력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내가 그런 문제를 갖고 있음 조차도 인정하고, 내가 부정하던 나까지도 인정하고 나니, 진정으로 나를 나 자체로, 존재 자체로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런데 왜 내 마음이 뜨거워지는 것일까.
그렇게도 부정당하고 살다 보니, 나조차도 나를 부정해왔고, 그것이 나를 멍들게 했다. 그런데 그런 모든 것을 다 '나 자체'로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나니, 내게 너무 미안해졌다. 드디어 나는 온전한 나를 받아들였고, 온전한 나를 마주할 수 있었다.
누군가에게 그럴싸해 보이는 나, 마음에 드는 나, 멋진 나, 완벽해 보이는 나만 인정하려 했고, 드러내려 했고, 인정받고자 했다. 어딘가 모자라고, 어딘가 부족한 것은 감추려 했다. 그런데 그런 나도 나라서, 그런 내가 너무 아팠나 보다. 부정당하고, 인정받지 못하고, 숨어야 하고, 늘 밝은 면 뒤편에 머물러야 했으니까.
나는 뜨거워졌다. 내 눈에 흐르는 눈물은 슬퍼서 흐르는 것이 아니었다. 감격이었고, 사랑이었다. 내가 나를 진실로 돌아보며, 나의 모든 것을 나로 인정하게 된, 사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