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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품있는그녀 Nov 24. 2020

다단계, 네트워크 그 모든 것들의 민낯

다단계의 민낯

사람을 더 끌어들여라.

이 사람의 약점은 무엇이냐?

이 사람의 성향은 어떠하냐?

이번엔 2명이었지만, 다음엔 6명이 필요했다. 그러면서 알려주는 방법은, 내가 소개한 (ㄱ)과 (ㄴ)이 각자 2명을 소개하게 만들라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또 2명을 소개하란다. 그러면 모두 6명으로 양쪽이 맞아서 수당을 훨씬 더 많이 받게 된다는 것이다.


나는 그제야 이 사업이 물건이 아닌 사람으로 돌아가는 사업임을 깨달았다. 물건은 단지 돈을 투자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다. 그 물건에 돈을 붙여 사람을 끌어오라는 것이다.


내가 내 하위 사람이 내가 처음 받은 수당만큼 받게 하려는 목적으로 그 사람 하나에게 2명의 지인을 소개받고, 그렇게 두 명 모두에게서 2명씩 4명을 소개받고, 내가 소개한 사람 2명을 또 분산해서 라인에 달면, 피라미드가 완성이 되며 나의 수익이 된다.


그렇다면 나를 기준으로 6명이 한 달 안에 등록을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내 바로 위에 있는 사람은 도대체 얼마를 하는 것이며, 얼마를 벌어가는 것인가?


한 명당 400만 원 씩이 필요하면, 내가 6명을 소개하면 2,400만 원이라는 돈이 한 번에 들어가는 것이다. 실로 엄청난 금액이었고, 그것은 진실된 돈이 아니었다.


나는 점차 괴로워졌다. 나를 통해 가입한 사람들에게 미안해졌다. 지금도 이렇게나 부담스러운데, 그 사람들은 또 얼마나 부담이 되겠느냔 말이다.


그래서 내가 망설이고 있으니, 내 위의 사람들은 나를 닦달하기 시작했다. 나로부터 사람이 소개되어야 자신이 직급을 가고, 돈을 벌 수 있게 되므로. 자신들도 쓸 사람, 지인, 친척 다 동원해서 했다며, 일단 모두 데리고 와서 세미나장에 앉히라는 것이다.


'아, 나도 저렇게 왔구나!'


그리고 지인 명단을 적어내고, 그중 가까운 사람 명단을 적어내고, 그들의 경제사, 직업, 심리 상태까지 적어가며, 무엇을 통해 그들에게 파고들어갈지 궁리했다. 드디어 민낯을 보았다. 나는 점점 이게 아니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에 대해서도 저렇게 다 말했겠구나!'


마음이 아팠다. 믿었던 친구가, 나를 돈줄로밖에 생각하지 않았구나 싶은 실망감에 말이다. 그런데 더 황당했던 것은, 나 모르게 엄마에게 접근한 것이다. 애*미로 이미 알고 지내게 되었던 우리 엄마에게 가서 그렇게 통사정을 했던 것이다. 그런데 내게는 알리지 않았다.


나는 너무 원망이 들어서 견딜 수가 없었다. 하지만 내가 좋다고 결제하고, 사람까지 소개한 마당에 '나쁘다, 안 좋다' 라며 나 혼자 쏙 빠져나오기엔, 내가 해 놓은 것들이 이미 너무 많았다. 점점 죄책감이 몰려오기 시작했고, 괴로웠다. 무엇보다 경제적인 문제가 제일 컸다.



친구 B는 어차피 이 사업에 대해 믿음이 없었다. 문제는 친한 언니였다. 나는 진심으로 믿고 소개했던 것이기에 민낯을 알고 나서는 '언니, 이거 아닌 것 같아요.'라고 말할 수가 없었다. 나는 괴로웠다.


언니는 이미 1,200만 원을 투자한 상태였다. 이 언니는 무언가 비전을 보았던 것일까? 나와는 다르게? 그런 것이라면 그냥 다른 이들처럼 적응해서 성공하도록 놔두는 게 나을까? 하지만 결국 그 언니도 그들의 민낯을 보고야 말았다. 나는 내가 깨달았을 때보다 더 크게 충격을 받았다. 언니가 투자한 금액이 모두 내가 갚아야 할 돈으로 보였다. 나는 속앓이를 제대로 시작했다. 우울증의 서막이 그렇게 시작되었다.


나는 그렇게 몇 개월간 혼자서 끙끙 앓았다. 일단 내가 진 빚이 문제였다. 남편이 눈치를 주진 않았지만, 내게 양심이 있는 것이 문제였다. 돈을 벌어오지는 못할망정, 그렇게 가정 경제에 손해를 입혔으니, 죄책감이 없을 수 없었다.


나는 삶의 의욕을 잃었다. 당장 나가 뭐든 하고 싶은데, 아이들이 어리고 손이 많이 가는 시기이니 그럴 수가 없었다. 나는 손과 발이 묶인 채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가 된 듯하여 무력감을 느꼈다. 나의 무능력을 절실히 느끼게 되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몇 개월간 우울증으로 심하게 병들어가고 있었다. 나 스스로를 지우고 없애버리고 싶다고 느낄 만큼. 나는 내가 싫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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