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 부디 이런 걸로 장난하지 마. 거짓말이지? 그렇지? 제발 그렇다고 말해줘. 아아 그런데 오빠 목소리가 너무 진지해서 무섭잖아. 오빠 목소리에 울음이 가득해서.. 오빠가 지금 고향에 있을 리가 없는데.. 오빠는 서울에 있어야 하는데.. 왜 거기서 그런 장난을 치는 거야. 오늘이 만우절도 아닌데.
사람이 아주 심하게 다치면 그 순간을 초단위로 기억한다. 뇌리에 스치는 작은 순간들까지도 세세하게. 그런데 사람이 충격을 받으면? 앞 뒤로 한 동안의 기억을 몽땅 잃는다. 아무 생각도 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다. 그 날의 기억이 전화 한 통으로 모두 끊긴 것은.
엄마는 언제나 꿋꿋했다. 시부모의 구박에도, 남편의 구박에도. 들장미 소녀 캔디처럼, 들장미 아줌마 영숙이었다.
아빠의 구박과 모멸 어린 독설들, 갖은 폭력에도 내가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오직 엄마였다. 엄마는 내 세상의 기둥이었고, 뿌리였고, 전부였다. 이십 대 중반에 엄마를 잃게 되리라는 의심은 단 한순간도 해본 적이 없었고, 그런 불상사가 생긴다면 버틸 수 없을 것이라고 나는 막연하게 생각했더랬다.
그런 엄마에게 대장암 말기라는 진단은 우리 오누이를 처참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우리는 아마 동시에 생각했을 거다. '엄마를 지키지 못했다.'
병원. 우리는 다른 의사로부터 다시 또 선고를 받았다. 판사의 사형선고마냥 가슴을 때렸고, 엄마의 오열과 우리의 참혹한 슬픔이 있었다. 의사 선생님은 엄마가 진정할 때까지 조용히 기다려 주셨다.
"수술하면 되나요?"
"대장, 간, 폐, 난소... 이 정도까지 많이 아프셨을 텐데요. 왜 그렇게 참으셨어요. 1기 2기 3기 이렇게 있는데.... 일단 전이되면 말기입니다. 말기는 수술할 수 없어요."
그때는 그 말이 그렇게도 원망스러웠다. 대체 수술로 안 될게 뭐가 있단 말인가?
"얼마나... 살 수 있나요...?"
"짧으면 2~3개월에서.. 1년 정도 예상합니다."
아, 시한부라는 게 이런 거구나. 죽을 날이 정해진 것이 시한부구나. 이제 이별을 준비해야 되는 것이 시한부구나.
아들 딸 모두 취직하고, 이제야 조금 여유가 생겼다고 좋아하셨는데. 아직 할머니도 외할머니도 살아계시는데. 그런데 엄마가 시한부라니. 왜 하필 나에게 이런 일이 생긴 거지?
엄마 아들, 딸 아직 결혼도 못 했는데. 만약 엄마 없으면 난 식장에 어떻게 들어가? 들어간다 해도, 거기 어떻게 서 있어? 내가 행복이나 할 수 있겠어? 엄마 없이 내가 어떻게 살아. 나는 아직도 이렇게 애긴데. 엄마 없이는 바본데.
그 후로는 우는 날이 정말 많았다. 툭하면 눈물이 나왔고, 견딜 수 없이 슬펐다.
'긍정적 사고방식'이 좋다며, '웃으면 행복해진다'며, '웃음치료로 병을 고칠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집에서 함께 웃어봤다. 그런데 웃음이 흐느낌이 되었다. 그리고 오열이 되었다. 엄마가 울었고, 내가 울었고, 그리고 아빠는 일어섰다.
우리는 웃지 못했다. 마음에 슬픔을 간직한 채로는 웃을 수 없었다. 어쩌다 웃게 돼도 그 끝은 씁쓸한 미소로 끝났다. 애석했다. 서글펐고, 고통스러웠다. 가족 중 누군가가 죽을 날을 받아놓고 산다는 것은 숨 쉬는 모든 순간이 고통이었다.
폐로 들어오는 공기가 아프다고 느껴본 적 있는가? 숨 쉴 때마다 아팠다. 좋은 일이 생겨도 아팠다. 웃을 일이 생겨도 아팠다. 그냥 다 아팠다. 나의 밝게 빛나던 세상은 무채색이 되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