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환자의 가족으로 산다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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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품있는그녀

엄마는 대장암을 진단받았고, 말기라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말에 우리 가족은 좌절했다. 엄마는 따뜻하고 친절하고 좋은 성격 탓에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래서 슬퍼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알음알음 비보를 전해 듣고 한달음에 찾아온 일가친지들과 지인들은 엄마를 보자마자 울거나 애달파했다. 엄마는 그때마다 울었다.


우리는 점점 앵무새가 되어갔다. 같은 말을 반복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말을 반복해서 말하는 것은 힘들었다. 엄마는 아마도 더 힘들었을 것이다. 아빠는 아무 말도 못 했다. 나와 오빠는 타지에 있었다.


그러다가 '표적항암치료'라는 치료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서울 삼성병원에서 엄마의 암이 간암이 아닌 대장암이라는 것을 찾아내신 교수님의 추천이었다. 간암이 원인이었다면 치료가 어려웠을 것-간암으로 시작된 암은 약물 치료 효과가 떨어진다더라-이라며, 대장암은 표적치료의 효과를 잘 볼 것 같다고 하셨다.


하지만 당시 표적치료는 신약이어서 보험 적용이 안 됐다. 대신 병원 입원 등의 비용은 실비 처리가 되었으므로 치료를 할 수 있었다. 엄마는 지방에서 서울까지 항암치료를 받으러 주기적으로 이동을 하셨다.


엄마는 갑자기 매우 아픈 사람이 되셨다. 병원에서 의사 선생님이 "많이 아팠을 텐데 어떻게 참았냐"라고 물어봤을 때, 엄마는 진통제를 먹어가며 참았다고 했다. 그 정도로 아픔을 잊고 아버지 사업을 위해 억센 공사판을 따라다니며 일을 도우셨다. 그렇게 꿋꿋했던 엄마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기력이 없고 아픈 사람이 그 자리에 나타났다.


항암치료는 여느 항암치료와 같았다. 정신을 아주 얇은 실선으로 변화시키는 것이 분명했다. 매우 예민했고, 매우 신경질 적이 되었으며, 소화불량과 구토에 머리가 빠졌다. 엄마가 암환자라는 것을, 치료를 시작하며 더욱 절실히 깨달았다. 가까스로 피워진 희망이 위태롭게 흔들렸다.


가족을 위해 헌신하고, 양보하고, 아끼고, 보살피는 '엄마'라는 존재는 더는 존재하지 않았다. 어린아이처럼 투정이 늘어났고, 자녀에게도 불퉁거렸으며, 불만이 폭발했고, 인내심이 전혀 없 사람으로 변했다. 하지만 우리는 가족이니까. 엄마는 당사자니까. 더 힘들 테니까. 그래서 참고 받아들였다. 익숙하지 않은 관계였다. 그동안 내가 했던 행동들을 그대로 되받는 것 같았다. 더욱 마음이 아파왔다.


하지만 암 환자에게 가족은 그리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것 같다. 엄마는 애써 밝은 척하다가도-걱정 끼치는 미안함에- 갑자기 너무 힘들다고 폭발하셨다. 그게 또 나는 너무 적응이 안 돼서 눈치를 봤다. 치 엄마의 1인극을 보는 것 같았다. 좋았다 나빴다를 반복하는 엄마의 기분은 어떻게 맞추어야 좋을지 모르겠을 난해함을 동반했다. 그리고 동시에 슬펐다. 내가 여기 있는데, 엄마를 사랑하고 엄마가 사랑하는 딸이 여기 있는데, 나란 존재는 당신에게 웃음을 줄 수 없나요? 나란 자식은 당신이 희망을 품고 미래를 그리는 존재가 될 수 없나요? 그렇게 나의 미약한 존재감을 깨닫는 아픔의 시간이었다. 이기적인 마음일지도 모르겠지만.


20대의 나는 아직 어렸다. 엄마를 돌봐드린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잘 몰랐다. 그저 곁에 있으면 되는 줄 알았지만, 밥이며 빨래 등 집안 일과 온갖 심부름을 해 드려야 하는 과정은 녹록지 않았다(겨우 주 1~2회 휴무일에, 그것도 매우 미숙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과정에서 예전처럼 투정도 못 부리고, 더는 딸이 아닌 보호자로서 곁에 선다는 것이 익숙해지지 않았다. 엄마는 그런 불협화음을 더욱 힘들어하시는 것 같았다. 그럴수록 자꾸만 눈치를 보게 되었다. 눈치를 보니 또 엄마는 그게 불편하신 듯했다. 가족 중에 '엄마'라는 위치가 얼마나 큰 자리인지 깨달았다. 엄마는 가족의 중심이었다.


나는 쉬는 날마다 고향집으로 쫓아갔고, 엄마가 병원에 입원하는 날에는 병원으로 가서 아빠, 오빠와 교대해가며 엄마의 보호자 노릇을 했다. 병원 간이침대는 힘든 하루를 보내고 온 나에게 너무 고통스러운 잠자리였고, 다인실은 가끔 이기적인 이웃으로 인해 힘들었다. 엄마는 예민 보스였고, 잘 먹지도 못하고, 기운도 없고, 대화를 나눌 상태도 아니었다. 그래서 요구사항만 많았다. 그런데 그것도 못마땅했는지 짜증을 내셨다. 그게 참 서러웠다. 그리고 그런 서러움을 표현하지 못하는 것이 서글펐다.




환자의 고통을 공감할 수 없는 가족과 그 고통을 나누고 싶지는 않지만 이해는 받고 싶은 환자. 더 많이 도와주고 싶지만 부족한 가족과,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지만 할 힘이 남지 않은 환자. 걱정스러운 가족과, 그 걱정이 부담이 되는 환자. 그렇게 우리는 서로 다른 아픔 속을 헤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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