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환자인 엄마는 집을 나갔다

기꺼이 환자가 된 엄마

by 기품있는그녀

엄마가 더는 집에 못 있겠다고 했다. 나는 내가 무얼 잘못했나 떠올렸다. 내가 너무 자주 와서 엄마가 귀찮았을까? 아니면 아빠....?


"집이 편하지. 어딜 간다고 그래?!"


하지만 엄마는 이미 결정을 내리신 것 같았다. 양 병원을 알아보셨다. 거동 불편한 어르신들이 가는 그런 요양원 말고, 질병을 이겨내기 위한 요양 병원도 많이 있다는 것을 그때 알게 되었다.

그래도 다른 사람들과 함께 머무는 병원은 나만의 공간이 아니라 불편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한방 치료나 찜질방 치료 등을 병행할 수 있어서 엄마는 만족하셨다. 자유롭게 밖으로 돌아다닐 수는 없지만 차라리 병원에 묶여있는 게 낫다고 하셨다. 바깥의 공기는 숨도 못 쉬게 힘들다고 하셨다. 그때 엄마는 마트도 못 가셨다. 숨이 막힌다고 하셨다.


처음엔 집과 가까운 곳으로 가셨다. 산 중턱에 찜질방을 겸하는 요양 병원이었다. 엄마의 암은 의료장비가 알려준 질병일 뿐, 그보다는 온몸의 근육통이 더 현실적이었다. 암으로 몇 개월에서 몇 년 안에 죽게 된다 할지라도, 현실은 근육통과 관절통이다. 고되었던 세월이 엄마의 관절과 근육에 찌들었기 때문이다.



눈 내린 겨울, 휴일을 맞아 엄마가 입원한 요양병원에 찾아갔다. 꽃이 핀 나무가 키가 쑥쑥 컸다. 너무 깊지도 얕지도 않게 자리한 그곳에 마을처럼 자리한 요양 병원. 굴뚝에는 하얀 연기가 피어오르고, 황토로 벽을 바르고, 볏짚으로 지붕을 얹었다. 그리고 장작이 운치 있게 쌓여있어 운치가 더해졌다. 한옥마을이나 펜션인가 싶었다.


엄마는 우리를 마중 나와 계셨다. 빠져서 듬성해진 머리를 가리려고 푹 눌러쓴 모자와, 찬바람을 막기 위해 여민 스카프. 환자복 위에 걸친 도톰한 외투를 입 서 있는 엄마의 입에서 입김이 하얗게 피어났다. 그리고 우리를 만난 엄마의 얼굴에도 미소가 하얗게 피어났다.


오랜만에 만난 반가움인지, 오랜만에 보는 생기 넘치는 미소였다. 나는 약간 어리둥절 해졌다. 왜 웃고 계실까? 가족과 함께 있지 못하고, 말기암 환자라서 힘드실 텐데(개중 엄마가 제일 심각한 환자 같았다) 어떻게 웃을 수 있을까? 무엇이 엄마를 웃게 만들까? 반가움과 기쁨 너머로 의아함이 몽글몽글했다.


내가 타지에서 힘들게 지내는 만큼, 엄마도 힘들지 않을까. 엄마는 암환자니까, 나보다 더 마음고생이 심하겠지? 하지만 오히려 나보다 더 말갛게 웃고 계시는 엄마는 마치 암 선고 따위는 없었다는 듯, 예전처럼 나의 엄마로 돌아와 있었다. 도로 따뜻해진 엄마가 낯설었지만, 못내 반갑고 기뻤다. 안심해서는 안 되지만, 안심하고 싶은 배덕감이 들었다. 그대로 엄마의 암과 암환자 가족이라는 타이틀을 벗어던질 수 있다면 좋겠다는 온기였다.


나는 아마도 내내 그것을 기다렸나 보다. 엄마가 암 환자가 되기 전에도, 암 환자가 된 이후에도, 엄마는 엄마였다. 암환자가 되었다고 해서 엄마가 아니게 된 것도 아닌데. 나는 엄마를 나약하고 보살핌을 받아야 하는 존재로 여겼지만, 그렇다고 딱히 그렇게 위해주지도 못했다. 그런 자신의 몹쓸 쓸모를 깨달을 때마다 나의 한계를 깨달아서 아팠다. 스러져 가는 엄마를 내가 붙잡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 무서웠다. 매일 죽음을 향해 가는 엄마를 내가 막아서지도 붙잡을 수도 없다는 것이 두려웠다. 나는 늘 불안에 떨고 있었다.


그런데 엄마의 평온을 마주하자, 그렇게 안심이 될 수밖에 없었다. 태(胎)로부터 이어진 엄마와의 관계는 엄마의 모든 기분과 상태에 영향을 받는다. 슬픔도, 기쁨도, 우울도, 행복도. 이미 끊어진 탯줄이 분명하며, 나는 이미 성인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태(胎)로부터 벗어날 수 없음 느꼈다. 아마도 영원토록, 엄마가 세상에 존재하지 않아도 나는 그 태(胎)에 묶이리라.


나는 막내였다. 엄마의 딸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보호자인 척, 모든 걸 다 짊어진 척하려고 어설픈 연기를 하니, 내 옷이 아니었다. 엄마도 아빠도 누구도 그것을 바라지 않았는데도.


할 수 없는 것을 하려고 애쓰기보다, 내 역할 안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 현명하다. 그러니 이제 다시 어리광쟁이 막내로, 심술쟁이 여동생으로, 저만 알던 새침데기 이십 대 여자 사람으로 돌아가도 되지 않을까. 그 안에 심술을 조금 빼고, 희생을 약간 넣기만 하면 되지 않을까. 내가 짊어지지 않아도 될 짐까지 이고 지고 가려고 애쓰는 것이, 엄마를 더 마음 아프게 하지 않았을까.


암 선고를 받고 힘들어했던 엄마를 위로해준다고 엄마를 안아드렸다. 하지만 엄마가 그런 상태인 것을 받아들이는 딸도 너무 아프고 힘들어. 그러니 다른 누구도 아닌 엄마의 위로를 받고 싶어. 엄마가 안아주면 좋겠어. 그런 자질구레한 말 없이 엄마 품에 쏘옥 안겼다. 열 살 때도, 열일곱 살 때도 안겼던 것처럼. 아픈 엄마도 내 엄마니까. 엄마의 품은 언제나 내게 위로니까. 엄마는 내게 위로를 주기 위해서라도 버텨. 나는 받아들일 수 없으니, 나약하고 눈물 많은 딸 위해서라도 이겨내. 이기적이라고 해도 어쩔 수 없어. 나는 욕심 많은 막내니까- 그래도 되잖아.


대신 좀 버텨볼게. 엄마 없이 지내는 것, 엄마가 아픈 것, 엄마 위해 움직이는 모든 것. 그런 것들을 해볼 게. 엄마 딸 많이 컸지? 이렇게 물어볼 수 있도록.


"다 커서 이게 뭐 하는 짓이야!"


그렇게 타박을 주며 내 등을 후려 치는 손이 나약했다. 소리 없는 외침을 엄마는 들었을까. 엄마의 이 품이 너무 그리웠다는 것을 엄마는 알까. 엄마의 진심 어린 미소 한 방에 이렇게 모든 불안을 떨쳐 버리고, 한 없이 안심하는 딸의 이 마음을 알까.



소중한 나의 엄마, 평생 엄마를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으로 살게 만들지 마요. 나를 위해 버텨요. 나는 엄마 없이는 견딜 수 없으니, 절대 죽음으로 가지 마요. 못돼먹은 딸이 엄마를 죽지도 못하게 한다고 욕해도 되니, 부디 나의 세상에 함께 있어줘요. 나는 받아들이는 법을 모르고, 배우고 싶지도 않아요. 그러니 엄마가 버텨요. 다 큰 딸이라 안심하지 마세요. 아직도 어린애라 불안해서, 그래서 아직은 세상에 미련이 많아 떠날 수 없다고. 그런 이유로라도 버텨 주세요. 그렇게라도 잡고 싶어요. 엄마의 시간을, 붙잡고 싶어요. 사랑해요. 한 없이 사랑해요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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