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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품있는그녀 Dec 17. 2020

과오를 만회하는 단 하나의 방법

받아들임에 대하여

친구로부터 다단계를 소개받고, 그게 다단계인 줄도 모르고-의심은 했지만- 주변 사람들에게도 알렸다. 친구가 함께 아는 지인에게 나를 끌고 가, 내가 돈을 투자하게 된 경위(?)를 믿을 수 있게 말해달라고 했다. 억지로 뺏긴 부분은 빼고, 내가 들은 대로 설명했다. 의외로 내가 들은 대로 설명하는 것을 잘하는 편이라서.


설명하다 보니 내가 생각해도 그럴듯했고, 꿈의 사업인 것만 같았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도 지나도 뜬구름 잡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이건 아닌 것 같은데...?'라는 생각이 수도 없이 몰려들었다.


이제 그만두자고 생각하는 순간, 내가 설득한 사람이 한 둘이 아니게 됐다. 나를 믿고 돈을 투자한 사람도 많아졌다. 아, 이런 미친놈의 말발인가. 미친놈의 설득력인가. 심지어 저주스러운 능력 발견이었다. 친구는 어이없게 우기기만 했지. 나는 설득을 하고 있지 않았나.(부끄러운 고백이다)


나는 이 사실이 너무나도 괴로웠다. 이 미친 짓을 했던 과거의 나를 패대기치고 싶었다. 누구도 원망할 수도 없는 아픔이 나를 우울증으로 끌고 들어갔다. 그래서 베란다에 올라섰나 보다. 죽으리라 결심한 순간은 생각보다 무덤덤하게 찾아왔고, 두려움과 안도가 동시에 일어났다.


그런데 이렇게 죽기는 비겁했다. 두렵고 무섭고 억울한 것보다 가장 싫었던 것은, 나를 믿은 사람들에게 나의 소식이 너무 비겁해 보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나는 폰을 들어 전화를 걸었다. 연락 두절의 내 전화를 받아줄까?


"여보세요?"

"여보세요? 저예요.... 잘 지내셨어요?"

(친구를 믿고 투자하신 분이지만, 사업설명은 보통 내게서 들으신 분이다)


나는 그동안 잘 지내지 못했다고. 죄책감으로 지냈다고. 너무 미안했다고. 그 친구 믿고 투자하신 거지만, 그래도 내가 영향이 없었던 것은 아닌 것 같다고. 나를 용서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지만 나는 미안함을 고백하고 싶었다고. 나는 그렇게 슬프게 말했다.


"○○씨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그래요? 그런 말 하지 말아요. 그리고 힘내요. 나는 정말 괜찮아요."



그것은 정말 큰 위로였고, 크나큰 용서였다. 나를 묶고 있던 족쇄를 풀어내는 해방감이 들었다. (그리고 그때까지도 불확실했던 그 사업에 종지부를 찍게 만들었다)




나를 믿고 투자했던 친한 언니에게도 전화를 걸었다. 나는 더 깊이 사과했다. 내가 어떤 확신도 줄 수 없지만, 이 마음의 빚은 영원히 잊지 않겠다고 고백했다.


"아니야. 네가 소개해주긴 했지만... 나도 믿었는데 뭘. 어떻게 너만 잘못이라고 하겠어. 네가 억지로 끌어들인 것도 아닌데. 게다가 너도 속은 거나 마찬가지잖아. 나는 너 원망 안 해. 오히려 걱정이야. 나는 네가 잘 됐으면 좋겠어."

무척 많이 울었다. 아, 나는 헛살지 않았구나. 이렇게 좋은 사람들이 내 곁을 지켜주고 있었구나. 이런 소중한 인연들에게.. 미안하다는 말도 없이 이 세상을 사라지려는 못된 결심을 했구나.


나는 비참했다. 이 좋은 분들에게 내가 피해를 끼쳤다는 것이 비참했다. 그리고  모든 것을 수습할 수 없는 나의 한계가 비참했다. 그리고 그들의 넓은 아량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를 단 한 순간도 원망하지 않았을까. 절대 그렇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너도 나도 피해자인양 덮고 넘어가기엔 나의 미안한 양심이 나를 너무 찔렀다.


그래, 나는 인정해야만 했다. 나의 실수를, 나의 과오를, 나의 잘못을. 그래야 다음으로 나아갈 수 있다. 내 잘못을 인정하지 못하니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바보가 되었고, 그런 자신의 허수아비 같은 모습 치가 떨렸다. 그것이 나를 우울증으로 더욱 끌고 들어갔다.




극복이라는 것은 절대, 덮는다고 해결되는 법이 없다. 극복은 그 순간을 이겨내야만 하는 것이다. 잘못, 실수, 과오와 같은 결점을 이겨내는 방법은, 그것을 인정하는 것뿐이다.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다음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새로운 국면이 발생할 뿐.


일단 인정하게 되면, 사과는 당연한 것이고, 그렇게 정립된 새로운 관계를 겸허히 받아들이게 된다. 그때부터 '다음'이 있다. 치유를 하든, 용서를 받든, 원망을 듣든... 그 모든 것을 감내할 준비를 하는 것이다. 그리고 다짐하게 된다. 다시는 그런 바보 같은 실수는 하지 않겠다고. 그리고 나의 이 잘못을 잊지 않고, 소중한 사람들을 지키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겠다고. 그래서 나는 다시 살아날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그 친구를 원망하지 않는다. 그리고 친구가 내게 사과하지는 않았지만, 나는 그녀를 용서했다. 더는 나의 마음을 과거의 아픔에 묶어두지 않을 수 있게 되었다.


그제야 나는 새로운 하루를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진정으로 행복을 느낄 수 있게 되었고, 새 삶을 살기 시작했다. 후회하냐 하면 후회는 분명 있다. 하지만 그것이 나를 발목잡지는 않았다. 그 순간을 어떠한 형태로든 청산했기 때문이다.


기억하길 바란다. 나의 잘못, 실수, 과오를 해결하는 방법은 오직 그 잘못에 대한 '인정' 뿐이다. 그렇지 않으면 그 찌든 때가 영혼에 남아, 영원히 이불킥을 하며 살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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