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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품있는그녀 Mar 07. 2021

내 아빠는 경계인

경계선 성격장애 부모의 자녀 이야기

대물림되는 상처들

'힐빌리의 노래'라는 영화를 넷플릭스를 통해 보았다. 다른 후기들을 보니 자극적인 장면으로 흥미를 이끌려고 했다거나, 엄마와 할머니의 연기력으로 영화를 이끌었다고 한다. 또는 'J.D. 밴스'의 성공기, 불우한 어린 시절을 극복해내는 가족애 정도로 평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에게 이 영화는 너무나 가슴 아픈 이야기였다. 나는 영화를 보는 내내 펑펑 울었다. 무난한 전개라고 평하는 그들은, 그것을 겪지 않았기 때문에 무난해 보인다. 나는 'J.D. 밴스'가 겪는 모든 공포가 와 닿았고, '엄마'의 모든 고통이 다시 한번 와 닿았다. 가슴이 무너지는 것만 같았다.


영화에서 '엄마'는 종종 돌변한다. 좋다가도 갑자기 감정이 급변하면서 폭발한다. 그 감정의 흐름이 급작스럽고, 이해가 안 가겠지만, 정말 이 배우가 연기를 잘한다는 것이 느껴지는 게, 표정으로 연기를 다 했다. 경계인은 정말 저렇게 급변한다. 나는 엄마의 표정이 변하는 순간 직감한다. '끝났다!' 그리고 바로 시작한다. 분노가.


경계인의 급작스런 분노를 이해하려고 할 필요 없다. 그냥 그 폭풍우 같은 폭격 속에서 살아남는 방법은 사라지는 것이다. 같이 있지 않으면 되는 것이다. 하지만 어린 자녀는 그런 부모라도 없는 것보다는 나아서, 어쩔 수 없이 눈치를 보고 어쩔 수 없이 사랑을 갈구해야만 한다.


그래서 나는 무자비한 폭력 속에서 자랐다. 나는 영화 속 엄마의 폭력을 볼 때마다 어린 나를 보는 것 같아서 두려웠다. 또한 가끔은 내가 내 아이에게 저런 모습을 보이는 엄마가 아닌가. 그런 두려움이 들어 무서웠다. 나는 아직도 나의 아버지를 극복하지 못했구나. 아직도 내 속에 어린아이는 고통받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너무 아팠다.



아버지가 '경계 성격장애'라는 것을 얼마 전에 알게 되었다. 그냥 분노조절 장애가 아니라 사람을 양 극단으로 평가하는 것, 타인에게는 친절한 가면을 쓰는 것, 엄마를 자녀들과도 나누려 하지 않는 것 등등 몇 가지 소견 등으로 아빠의 집착과 분노와 양극단으로 치닫는 감정들을 알 수 있었다.


그제야 나의 지나온 과거들이 하나하나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그제야 모든 것이 말이 되기 시작했고, 나에게 잘못이 있는 게 아니라, 아빠가 문제가 있어서 나와 가족이 고통받았다는 것을 알았다.


이 차이를 구별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빠는 언제나 모든 문제를 남 탓으로 돌렸기 때문이다. 아빠의 잘못에는 관대했고, 아빠는 그럴 수 있었고, 그 외의 다른 사람들, 특히 엄마와 오빠와 나는 절대 잘못이나 실수를 하면 안 되었다. 만약 실수나 잘못을 하게 되면 비난과 체벌과 고문과 같은 훈계를 들어야 했다. 그리고 말했다.


"네가 그렇게 하지 않았으면 문제가 없었잖아."


내가 맞는 이유는 내가 잘못을 해서였고, 내가 멍청이 소리를 듣는 이유는 멍청하게 행동해서였다. 온갖 욕지거리와 체벌의 모든 원인은 나 자신이었고, 나는 나를 때리게 만드는 사람이라는 논리였다.


때로는 가족이 맞는 이유도 나 때문이기도 했다. 또는 가족 때문에 혼나기도 했다. 엄마와 오빠와 나는 서로의 잘못을 연대책임지기도 했다. 공포 그 자체였다.


그리고 어린 시절의 나는 아빠의 그 말을 거부할 수도, 항의할 수도 없었다. 오직 "yes"라는 긍정만이 나의 대답일 수 있었다. 나에게는 언제나 죄책감이 심어져 있었고, 불안공포만이 나의 어린 시절을 장악하고 있었다. 나는 마음과 정신이 아플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영화가 마음에 콕 와 닿았다. 엄마의 이중적인 행동들이 왜 그러는지도 이해가 갔지만, 그 자녀가 느끼는 공포와 불안감이 더 크게 와 닿았다. 그리고 그 아이가 살아날 수 있는 방법은 그런 경계 성격장애를 겪는 엄마로부터 분리되는 것뿐이라는 것에도 동의한다. 'J.D. 밴스'에게 할머니는 구원이었다.


나도 가끔 아빠와 떨어져 지내는 순간들이 얼마나 마음이  편했는지를 떠올리면 알 수 있다. 오히려 문제행동이 줄어들었다. 불안은 문제행동을 더욱 유발한다는 것을 깨닫는다면, 아이를 불안하게 만드는 것이 상황을 얼마나 악화시키는지 깨달을 수 있게 될 것이다.




어려서 아버지가 귀가하는 소리가 나면 늘 가슴이 덜컥 내려앉고는 했다. 술이라도 취해 들어오시면 그 날은 숨소리 하나조차도 조심해야 했다. 잘못 걸리면 고문 같은 밤이 이어지기 때문이었다. 그것이 트라우마가 되었을까.


나는 지금도 혼자 집에 있을 때, 남편이나 아이가 귀가하는 소리에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것을 느끼고는 한다. 그리고 당장 주변을 둘러보며 내가 혼날 거리가 없는지 찾는다. 하지만 '내 아빠가 귀가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 나는 온 마음이 다시 한번 부서지는 것을 느끼고는 한다.








경계선 성격장애에는 여러 유형이 있습니다. 필자의 아버지는 '분개형 경계 성격장애'에 해당된다고 추측하고 있습니다. 충동, 위축, 자벌형과는 구분되며, 이들과 다른 양상을 띕니다. 또한 경계인마다 다른 인격(성격) 장애와 혼동이 되거나 혼재되기도 하기 때문에 모든 경계인을 일반화한 것은 아님을 참고해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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