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찾아봐도 이런 내용을 다루지 않아서 찾을 수가 없었다. 알아본 바로는 경계선 성격장애는 다른 성격장애를 포괄하는 성격장애이기도 하다는 것 정도. 그러므로 그런 부모의 자녀가 정상적으로 자라는 것은 분명 어려울 것이라고 본다. 나는 경계인 아버지를 두었다. 그것도 분노 조절을 못하는 '분개형 경계선 성격장애' 유형이다.
1. 의존과 세뇌
내 아버지가 우리 가족들에게 가장 잘한 것은 '떠넘기기'였다. 이것도 경계선 성격장애가 갖는 주요 특징 중의 하나인데, 자신의 수치심과 나쁜 감정을 타인에게 투사한다. 이것은 그 주변 사람들로 하여금 죄책감을 갖게 만들고, 그로 인해 더욱 복종하고 의지하게 만들었다. 나약한 존재로 존재함으로써 더욱 자신에게 의존하며, 떠나지 못하게 만드는 방식이었다.
2. 자살/자해소동
내 기억에 몇 번의 자살 소동이 있었다. 그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가스 폭발' 사건이었다. 그때는 집집마다 가스를 배달시켜서 가스레인지를 사용하던 때였는데, 어느 날 아버지는 어머니와 크게 다툰 후, 가스를 갖다 틀어놓고 불을 붙여 터트리겠다고 했다.
늦은 밤이었고, 오빠와 나는 깊이 잠들어 있었다. 엄마는 우리가 걱정되어 깨웠는데, 나는 깨지 못했고, 오빠는 깨서 도망쳐 경찰에 신고했다. (내가 깼을 때는 가스가 틀어져 있는 상태일 때였다) 바로 경찰이 출동했고, 아빠를 말렸다. 그렇게 아빠의 자살 소동은 끝이 났다.
그때 황당했던 것은, 엄마가 밤새도록 잘못했다고 빌 때는 씨알도 안 먹히던 것이, 경찰의 개입 한 방에 끝나버렸다는 것이 허망했다. 당시 엄마는 잘못이 없었다. 아빠의 과대망상이 엄마의 행동을 오해에서 진실로 바꾸어버렸기 때문이다.
3. 오해를 진실로 믿어버림
이상하게 극단으로 치닫는 생각은 감정 못지않게 널을 뛴다. 그래서 작은 잘못이나 실수가, 또는 아무 생각 없이 한 행동이 죽을죄를 진 것처럼 큰 죄가 되는 무서운 논리가 펼쳐지기도 한다.
한 번은 엄마가 머리를 짧게 숏커트를 치고 왔다. 아버지는 머리가 직모에 굵어서 일반 남성 커트머리였는데, 엄마는 그보다 더 숏커트로 치고 오셨다. 날이 덥고, 숱이 많아 관리가 불편해서라는 것이 이유였다. 게다가 엄마는 원래 머리가 커트에 펌을 하신 전형적인 아줌마 머리였다.
그런데 아버지는 머리를 남자인 자기보다 더 짧게 잘랐다며 처음엔 그냥 조금 화를 냈다가 점점 화가 커지기 시작했다. 마치 바람 부는 들판에 불을 놓은 것처럼 화가 번졌다. 대체 왜 그렇게까지 화를 내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자신을 무시하는 행위라고 하는데, 평소 엄마가 머리를 어떻게 하든 관심도 없던 아버지가 왜 갑자기 그러는지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4. 끝장을 보는 분노
1~10단계의 감정에서 7~10이 화/분노의 단계라면, 아버지는 늘 7부터 시작했다. 3~5단계는 없었다. 그리고 7에서 10까지 실시간으로 빠르게 상승했다.
한 번은 엄마가 할머니 생신을 잊은 적이 있었다. 그런데 엄마 혼자 잊은 게 아니고, 고모들이며 아빠며 다 같이 잊었던 것 같다. 그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래서 뒤늦게 고모들이 할머니 생신을 챙겨드렸다.
그 사실을 알고 난 아버지는 분개했다. 그리고 이미 8,9 단계에서 분노가 터졌다. 그리고 아주 노골적이고 저속해서 글로 옮기지도 못할 말들로 엄마를 인신공격했다. 당시 나는 8~9세 정도로 어렸던 것 같은데, 아버지의 그 충격적인 언사들을 잊을 수가 없어 뇌리에 각인되었을 정도다. 어떻게 도덕적으로 '사람의 탈을 쓰고 저런 말을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했을 정도다.
그때도 아버지는 자살 소동, 자해 소동, 온갖 공갈 협박, 구타, 집안 물건 때려 부수기 등을 해댔다. 공포 그 자체였다. 정말 극단적이었다.아직도 그때 엄마의 신음 소리가 귓전에 들린다.
5. 과한 체벌
분노 표출이 심하고, 갑자기 분노가 폭발하고, 쉽게 화가 나는 사람이었으므로, 자녀를 올바르게 교육한다는 미명 하에 온갖 체벌이 가해졌다. 여자임에도 불구하고 깡다구가 세진 것은 그 덕분이었다. 그리고 그런 과도한 체벌은 세상 모든 것에 불만 가득한 시선을 갖고 살게 만들었다.그래서 나는 세상에 무서울 게 없었다.
그렇게 나는 성인이 되었다.
이런 성장배경 속에서 자란 나를 비도덕적이거나 비양심적이거나 착하지 못하다거나 올바르지 못하다고 평가할 수 있나? 엇나가지 않은 게 다행 아닐까.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바로 엄마 덕분이었다.
그 악몽 같은 시간 속에서 버텨 주었던 엄마와, 학창 시절 기숙사 생활을 통해 분리되었던 시간이 나를 평온하게 만들어주었다. 내가 그리 나쁘지만은 않은 사람이라는 것을 조금씩 알아가는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나의 대인관계는 썩 좋지 못했다. 나는 왕따를 종종 당했고, 주변 사람들의 거부감을 종종 느꼈다. 직장 생활은 언제나 가시밭길이었고, 늘 '관계'가 문제였다.
나도 어쩌면 늘 버림받을까 봐 두려워했던 것 같다.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에 대해 좌절했고, 늘 피해의식 속에 살았다. 관계는 늘 불안을 느꼈으며, 이성 친구를 사귀면 의존이나 집착을 했고, 과한 완벽주의를 추구하여 불행을 느꼈다.
한마디로 20대 때의 나는 출구 없는 미로에 갇힌 기분으로 살았던 것 같다. 아버지의 성에 차지 못한 나는 그런 아버지가 싫었음에도 불구하고 인정받고 싶었고, 그래서 누구보다 잘나 보이려고 노력했으며, 그래서 남을 짓밟고 올라가야 마땅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대인관계 관련 책을 무수히도 읽었고, 많은 부분을 글로 배웠다. 덕분에 많은 부분 극복할 수 있었고, '공감'과 같은 것도 글로 배웠다. 그도 그럴 것이 아버지는 '공감'을 할 줄 모르는 사람이었고, 언제나 분개했으며, 인정사정 봐주지 않는 언어폭력과 신체 폭력이 반복됐고, 그런 내가 타인의 아픔을 진실로 '공감'한다는 것은 언감생심 불가능한 일이었다.
잦은 억압과 폭력과 학대에 노출된 사람은, 타인의 작은 불행에 쉽게 공감하지 못한다. '나 정도는 되어야...'라고 생각한다. 자기 자신이 늪에 빠져 죽을 운명인데, 타인의 고통이 눈에 들어오겠느냔 말이다.
성인이 되어 과거를 다 가렸을지언정, 그 과거는 그대로 남아 썩은 물이 되었다. 결코 치유받지 못하고, 이성에게 집착하거나 비도덕적, 비양심적인 행동을 하고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 세상이 나를 배반했다고 느끼지, 내가 잘못했다고 느끼지 않는다. 그런 어린 시절을 보낸 내게, 성인이 되자마자 도덕적이길 바라는 세상이 오히려 그릇된 것이 아닌가.
하지만 나는 세상에 나아가야 했고, 따돌림당하지 않기 위해, 세상 사람들과 어울리기 위해, 세상에 적응해 살기 위해.... 가면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