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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품있는그녀 Mar 09. 2021

가면을 쓰고 살아가다

경계인 부모의 자녀가 사회에 나왔을 때

페르소나


페르소나 : 사회 안에서 주변 사람들에게 자신이 어떤 식으로 보여지는가를 신경 써서 자신을 좋은 이미지로 각인시키기 위해서 본성과는 다른 가면을 쓴다거나 연기하는 것. -칼 융


페르소나라는 단어만큼 20대의 나를 잘 표현한 것이 없다. 나는 불우한 어린 시절을 벗어버리고 완벽한 페르소나를 썼다. 나의 이미지는 매우 긍정적이고, 활기차고, 에너지가 넘치며, 적극적이고, 사랑스러운 이미지가 되었다. 나는 처음에 그것이 정말 나라고 착각하며 지냈다.


하지만 내 안에 드리워진 그림자는 그게 아니라고 끊임없이 속삭였다. 너의 본질은 학대당한 아이라고. 너는 사랑스럽지 못하다고. 너는 문제아라고. 너는 찌질이라고.


그럴수록 나는 페르소나에 집착했다. 더 완벽한 가면을 쓰기 위해, 그리고 나의 그림자를 들키지 않기 위해 애썼다. '나의 어두운 면을 들켜선 안 돼. 내가 얼마나 사악한 생각을 하는지, 내가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는지 누구에게도 들켜선 안 돼!' 내 마음속의 어둠, 내 마음속의 악을 몰아내고 싶었지만 들러붙어서 떨어져 나가지 않았고, 그럴수록 더욱 꽁꽁 숨겼다. 그리고 착하고 선한 이미지의 가면을 썼다. 그렇게 착한 척, 약한 척, 아무것도 모르는 척... 척척척 연기하며 지냈다.


나의 페르소나는 사회적 가면이 아니었다. 나의 본성을 숨기기 위한 장치였다. 그래서 늘 불안했다. 나도 모르게 본성이 튀어나올까 봐, 혼자가 아니고서는 오롯이 나일 수 없었다. 나는 진짜 나를 가두어두고, 연극과 같은 삶을 살아야만 했다. 그것은 진짜 나 자신에게 너무 가혹했다.


그래서였을까. 나는 이성을 만나면 상대를 테스트했다. "이래도 나를 좋다고 할 수 있어?" 상대를 믿지 못했다. 나의 가면을 보고 다가온 사람이니까. 나의 본성을 알면 도망갈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의 애착 유형은 자연스럽게도 불안형이었다. 늘 불안했다. 부족하고 보잘것없는 나를 알게 되면 모두가 나를 떠날 것만 같았다. 그래서 늘 대단해지려고 노력했지만, 대단해지지 못했다. 그것이 나를 좌절하게 했다. 그래도 다시 또다시 노력했다. 나는 끝없는 완벽을 추구하는 완벽주의자가 되었다. 끝없이 목마르는 갈증의 향연이었다.


나 따위가 무슨 music, 나 따위가 무슨 truth
나 따위가 무슨 소명, 나 따위가 무슨 muse
내가 아는 나의 흠 어쩜 그게 사실 내 전부
세상은 사실 아무 관심 없어, 나의 서툼

-b.t.s 'Persona' 중


나의 이상이 점차 낮아지기 시작하고, 점차 현실과 타협하게 된 것은 30대가 가까워오면서였다. 그때 남편을 만났고, 결혼을 하게 되었다. 남편은 테스트에 통과한 사람이었다. 한결같이 아껴주고 보듬어주는 따뜻한 사람이었다. 이 사람이라면 믿어도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더 철저히 숨겼다. 그래도 들키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결혼해서 아버지로부터 벗어나면 내 인생이 완전 달라질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어린 시절의 상처는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다. 그 자리에 그대로 남아, 그대로 고인물이 되어 악취를 풍기며 썩을 대로 썩어있다. 덮어버린다고 드러나지 않는 것이 아니었다.



상처를 치유하지 않은 채로 사회에 나온다는 것은 이런 것이다. 오물을 덮는다고 오물이 없어진 것이 아니다. 눈에 보이지 않을 뿐, 그대로 남아 계속 썩어간다. 악취를 풍긴다. 어떤 계기로 인하여 극복할 수 있었다면 그것은 축복일 것이다. 그렇지 못한 상처 받은 영혼은 분명 어딘가에서 나처럼 아파하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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