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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품있는그녀 Dec 28. 2020

행복해지려고 글을 씁니다

브런치는 내 친구

아이가 어릴 때, 조리원 동기 만나는 게 그렇게 좋았다. 아이의 성장 발육에 대한 정보도 공유하고, 육아 템에 대해서도 공유하고. 그리고 아이를 처음 키우며 힘든 점을 나누는 게 그렇게 좋았다.


여자들끼리 만나면 남편 흉도 좀 보고, 시댁 흉도 좀 보고, 그렇게 쌓인 스트레스를 풀며 또 하루하루 살아가는 거 아니겠는가.


그런데 아이가 성장함에 따라 고민의 깊이도 달라지고 내용도 더 커졌다. 남편과는 권태기를 겪었지만 이제는 함께 평생을 살아갈 동반자로서 살아가기로 마음을 고쳐 먹었다.


그래도 왜 힘들지 않을까. 게다가 코로나로 인해 우리는 발이 묶였고, 삶은 지속되고, 나는 첫아이가 3세 이후로 가장 오랜 시간 아이와 함께 있게 되는 경이로운 날들을 보내고 있는데.


나는 전업주부고, 남편은 출퇴근을 한다. 나는 하루 종일 아이들과 부대끼며, 대화 가능한 성인은 남편뿐이다. 그리고 남편은 집에 오면 오늘 하루 있었던 기분 나빴던 일 등을 내게 말한다.


신혼 초에는 남편만 말하고 내 말은 안 들어주는 것이 괘씸했다. 아마도 그것 때문에 권태기가 온 것 같다. 나도 대화를 하고 싶은데. 남편은 자기 이야기가 끝나면 내 이야기에는 건성이었다. 내가 끼어들라 치면 말 끝날 때까지 기다리라 하면서 말이다.

아이들과의 힘들었던 일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 듣기 싫어했다. 남편의 관심사가 아니고는 듣기 싫어했다. 물론 들어줬지만 눈은 tv를 보거나, 핸드폰을 보고 있었다. 그래도 꾹 참고 말하자면 그런 상대의 시선 처리 때문에 자꾸만 말이 빙빙 돈다. 그러면 지루해하며 말을 딱 끊어버렸다. 남편이 너무 미웠다. 그렇게 권태기로 들어섰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나는 남편과 대화를 원하지 않는다. 나는 들어주는 것으로 충분하다. 이것이 우리 가정의 평화를 위한 것이라 생각하면 기껍다. 그리고 나는 이렇게 브런치 공간에 이야기 한다.


그래서 희생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남편은 제법 말을 잘하고 위트가 있어서 재미있는 이야기도 많이 해준다. 그러면 나는 그 이야기들을 가만히 듣고 있다가 이야기 소재거리로 가져온다. 이 코로나 시대에 경험할 것도 없고 볼 것이라고는 tv 프로그램밖에 없는데, 하루 종일 가사 노동과 육아에 훈육으로 물든 하루를 남편의 소소한 이야기로 마무리하는 것은 나에게도 유희가 되었다.


그리고 이렇게 나는 나 나름으로 발산을 할 수 있는 공간이 있으니, 이 얼마나 감사한가?! 코로나 시대에 카카오 브런치 작가로 활동할 수 있게 된 것은 어쩌면 행운이었다 싶다.


카카오 브런치는 나에게 수다를 떠는 공간이다. 수다를 한참 떨고 나면 스트레스가 풀린다. 그리고 내 머릿속을 유영하는 생각의 편린들을 잡아다가 글로 엮어내니 머리가 맑아지는 느낌이다. 게다가 브런치에 글을 쓰기 위해 메모를 하니 더더욱 머리가 깨끗이 정리가 된다. 그러므로 글은 정리정돈이고 발산이다.


남편은 집을 나가 하루 종일 타인들의 이기심을 겪으며 지쳐 들어온다. 그러니 집에서는 잠시나마 편안히 있게 해주는 게 맞지 않을까 생각했다. 가 받는 업무와 인간관계와 일로부터 받는 스트레스를 내가 관심 있게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그는 꽤나 만족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그에게 문제가 생겼을 때 나의 말에 귀 기울이는 것을 보면서 느꼈다.


나는 대부분 남편의 편에서 이야기를 했다. 남편을 힘들게 하는 상대방을 욕하고, 남편이 잘 참고 트러블을 일으키지 않는 모습에 경탄했다. 그러다가 가끔 인간관계에 대한 조언을 살짝 가미한다. 그러면 남편은 곰곰이 생각하는 듯했다. "알지도 못하면서 그렇게 아는 척하지 마."라는 말은 한 번도 들은 적이 없다. 그리고 얼마 후에 남편은 내 말대로 했다고 하거나, 자신의 경우는 그렇게 못하겠더라 등, 내가 권한대로 해보려는 노력을 했다. 이것은 내 말에 귀 기울이고, 내 말을 신뢰했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내 말에 더 귀 기울여주면 좋았겠지만 그러면 나는 글을 안 썼을지도 모를 일이다. 렇다고 아예 내쪽에서 시도하는 대화가 없거나, 남편이 묻지 않는 것은 아니다. 부모님들 소식, 친구랑 통화한 이야기, 교육 문제, 최근 뉴스 등에 대한 소소한 대화는 충분히 이어진다. 다만 내가 스트레스가 풀릴 정도로 들어줄 수는 없는 것이다.


한때는 포기했다. 그런데 포기하니 남편 이야기도 들어주기 싫었다. 얄밉고 했으니까. 그런데 지금은 나의 사랑하는 마음으로 품어주는 것이다. 그것이 내가 남편의 정신건강을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이니까 말이다. 덕분에 남이 술 한 잔 덜 마시면 더 좋지 않겠는가!


지금이 행복하다. 그리고 계속 행복해지기 위해 글을 쓴다. 나는 가정 주부라서, 자녀 이야기, 가족들 이야기가 내 수다의 대상이다. 대단할 것도 없지만, 소소해서 더욱 좋다. 어쩌면 모두의 이야기이기도 하니까. 그래서 카카오 브런치는 나를 힐링해주는 멋진 수다 친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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