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표(浮漂)

김두선 | 문예지 <수필나무> 제15호 기고 (2018)

by 김두선


퍼 나른 글에서 ‘봄바람난 년들’이라는 시 한 편을 전달받았다. 보소, 자네도 들었는감? 기어이 아랫말 매화 년이 바람이 났다네, 이렇게 시작된 시는 봄바람, 목련, 제비꽃, 진달래를 차례로 등장시키더니 마지막 구절에 와서는 시방 이라고 있을 때가 아니랑게... 우리도 싸게 나가 보더라고, 로 끝이 났다.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로 지은 9연 끝 행에 이르자, 나는 도저히 방에 틀어박혀 있을 수가 없었다. 시 한 편의 힘이라니! 싱긋 웃으며 ‘들썩들썩 엉덩이에 바람난 꽃 년’처럼 흥이 올라, 이른 오후 가까운 이기대로 나섰다. 봄처녀라도 된 듯 복장마저 핑크 핑크 하다.


꺾고 캐고 뜯고 따고....... 푸석푸석 터져 오르는 땅 가까이에 등을 바짝 붙이고 코끝을 갖다 대며 흙냄새를 맡기도 한다. 꼬박 세 시간. 허리를 펴고 일어섰더니 봄 향에 취했는지 두 다리가 비틀댄다. 맨손체조를 몇 번하고 다시 앉아서 장바구니에 캐어 담은 나물들을 신문지에 펼쳐두고 손질했다. 전리품이라도 되는 듯 흐뭇하다. 대부분은 쑥이지만 드물게 냉이랑 씀바귀도 섞여 있다.


엄지와 검지 손톱 밑에 거무죽죽한 봄물이 꽤나 배었다. 나는 가까운 도랑물에 손을 씻고 바다가 마주 보이는 비탈에 앉아서 준비한 김밥 한 줄을 먹기 시작했다. 김밥 한 입 물 한 입, 김밥 한 입 물 한 입...


해거름이었다. 서편 하늘이 흐려지더니 날씨가 심상찮아졌다. 풀이 떤다. 바람은 이기대 앞바다의 평온한 가슴을 드세게 할퀴어 기어코 성난 파도를 불러낸다. 저 멀리 떠 있는 부표의 몸 사위도 흉흉하다. 문득 뉴스 기사가 생각났다. 강릉 앞바다에 문어 통발을 표시해 둔 부표가 누군가에 의해 모두 절단돼, 올해 문어잡이를 허탕 치게 되었단다. 어부들은 얼마나 허탈했을까.


부표는 물 위에 띄운 경고 표지로써 목적에 따라 용도가 다르다. 양식장의 그물이나 도구를 훼손하지 않도록 경계를 표시하기도 하고, 암초 따위의 위험물을 알려 선박의 안전을 돕는다. 또 수많은 생물을 보호하기 위하여 선을 넘지 말라는 금지의 표시이기도 하다. 내 인생에도 이런 부표 하나쯤 있지 않았을까. 생각에 잠기는데, 부서지며 끓어오르는 파도 위로 지난날의 자화상이 조각조각 모이고 흩어진다.


첫 아이를 낳고 퇴원하던 날은 11월도 하순에 접어든 초겨울이었다. 추위에 떨며 택시를 기다리는데 차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그때 한 대의 승용차가 미끄러지듯 서더니 옆에 있던 산모와 아이를 태우고 바쁘게 달아났다. 택시 탑승과 승용차 탑승이라는 신분적 차별을 처음 느껴본 자괴감. 그때 나는 결심했다. 적어도 부모의 경제적 능력 때문에 자식이 무엇을 하지 못했다는 말은 절대 듣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 법. 강사 자리를 그만두고 서른둘에 시작한 학원 사업은 초기의 어려움을 딛고 승승장구 발전해 나갔다. 사업이 궤도에 오를 즈음, 남편으로부터 충격적인 말을 들었다. 수. 전. 노.


나더러 수전노라니.... 두 자녀의 제대로 된 양육을 위해 적어도 경제적인 영역만큼은 흔쾌히 책임지겠다는 나의 일념이 잘못인가. 사람의 일이란 한 치 앞을 모르니 장래를 위해 비축해 두고자 하는 근검절약이 욕먹을 일이란 말인가. 화가 치밀었다. 공감과 동조가 없는 일은 구태여 하고 싶지 않았다. 아니, 할 필요가 없다.


극단적인 소비가 시작되었다. 이틀이 멀다 하고 잦은 남편의 술자리가 있는 날이면 나는 어김없이 돈 쓸 일을 만들었고, 그가 마음 좋게 열어놓는 지갑이라면 나도 충분히 그럴 수 있음을 보여 주었다. 너도 쓰고 나도 쓰다가 이다음에 큰일이 터지면 그때 보자고, 나만 아껴서 훗날을 대비하는 그런 청승은 부리지 않겠다고.


오기로 시작한 낭비벽이 선을 넘고 말았다. 그리고 지천명의 문턱에서 정말 큰일이 터졌다. 몽학 선생처럼 남에게는 하염없이 좋은 남편이 넙죽 집 보증까지 서서 기어이 일을 내고 만 것이다. 차고 넘치던 사업도 서서히 기울기 시작했다. 그 몹쓸 오기를 부리지만 않았어도...


포시럽던 살림을 지키지 못하고 청맹과니처럼 굴었던 후회가 일면, 날카로운 모서리에라도 부딪힌 듯 지금도 가슴 한켠이 아프다. 빈 문어통발을 보며 허탈해하는 어부처럼, 자식을 위해 꽂았던 내 삶의 부표도 뿌리 채 뽑혀 흔들리며 쓸려가고 말았으므로.


한자어에서‘운명(運命)’이란 두 가지의 의미가 합쳐진 합성어이다. 운(運)은 ‘돌리다’의 뜻으로 움직일 수 있음(driving)을 나타낸 것이니 사람의 선택에 따라 그 길이 바뀔 수 있음을 말하고, 명(命)은 하늘이 내린 것으로 내가 어찌할 수 없는 것이니 다만 받아들여야 함을 이른다. 그렇다면 자신이 책임져야 할 운(運)은 남 탓을 하지 말고, 내 영역을 벗어난 명(命)은 넉넉한 마음으로 따르는 것이, 앞으로 살아가야 할 날들에 대한 나이 값이지 않을까.


회복 탄력성도 없는 나이이지만 다시금 부표를 꽂는다. 누군가의 말처럼 늙어서 늙는 게 아니고 꿈이 없어서 늙는 것이라면 꿈을 가져야지. 봄이면 오늘처럼 봄 향에 취해도 보고, 여름이면 외로움에 지쳐 있을 외딴섬 하나쯤은 탐방해 보자. 가을이면 책 몇 권을 백 팩에 넣고 문학관 순례에도 나서고, 겨울이면 두터운 벙어리장갑을 끼고 눈 내리는 고장으로 떠나 보자. 자연이 자연스럽게 두 번째의 삶을 인도할 것이다. 자연이 부표다.


검기울기 시작한 하늘에서 빗방울이 뜨는 듯했다. 바다는 들숨과 날숨을 거칠게 몰아쉬고 부표의 흔들림은 더욱 부산스럽다. 나는 마지막 남은 김밥 코다리 하나를 입에 넣고 우적우적 씹으며 장바구니에 봄을 챙기고 바삐 돗자리를 접었다.


봄볕엔 미운 며느리 밭일시킨다더니 두 볼에 화기가 느껴진다. 오늘은 성가시다고 밀쳐둔 마스크 팩을 붙여서 모처럼 얼굴 호강도 시켜야지. ‘바람난 꽃 년들 밴질밴질한 낯짝이라도 귀경할라믄’ 설 쇤 무처럼 시들한 내 낯에도 기름질 좀 해야지 않겠는가. 제2의 인생 정복기를 쓰기 위한 부표를 단단히 하고 산을 내려가는 두 다리에 불끈 힘이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