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재

김두선 | 부울경 뉴스 디카 수필 투고 (2018)

by 김두선

언제인가부터 비장애에서 장애인으로 분류되고 말았다. 가고 싶은 곳을 마음대로 갈 수 없는 사람.

나는 운전 장애를 앓고 있다.


백 몇 십 년만의 폭염이라는 올해 여름. 이 지겨운 날들을 끝내듯 어느 하루 갑자기 비가 쏟아졌다.

빗속을 달릴 수 있다면...

시름없이 창밖만 내다보고 앉았다.


간절하면 이루어지는 법인가. 전화벨이 울렸다. 드라이브를 가잔다.

나보다 세 살 많은 어머니가 있다는 그녀.

하지만 아코디언 주름상자처럼 열여덟 나이차를 접어버린 우리는 쿵짝이 잘 맞는 친구 사이다.



내게 줄 꽃다발도 한 아름 싣고 왔다.

얼굴을 꼭꼭 숨긴 백합 다섯 송이에 조화처럼 싱싱한 유칼립투스가 화장기 없는 그의 얼굴처럼 단아하다.

화려하지 않아서 좋다.


모두 칠천 원이에요, 싸죠? 하는 말에 머릿속으로 두드리는 내 계산기에는 숫자 영이 하나 더 붙는다. 가치 평가의 주관화.

겉치레 없는 그가 좋다.



비 오는 날, 나와 벗해 준 젊은 친구가 과분하다.

더하여 윌리엄 폴 영의 장편소설 <오두막>까지 선물로 받았으니 말이다.

이럴 때 횡재했다고 해야겠지?




송정 해변을 끝까지 달려, 깊숙이 자리 잡고 있는 커피숍으로 들어선다.

수영장 분위기를 연출한 야외 테이블이 눈길을 끈다. 한 번 와 본 곳인데 나와 함께 오고 싶어 찜해 둔 곳이란다.


"선생님과 함께 있으면 나이 차이를 못 느껴요."

내가 곧바로 응답한다.

"나이 값을 못해서 그래요."

까르르 꺽꺽.

허리를 접으며 웃는 그의 웃음소리가 커피숍 천장에 부딪혀 흩어진다.



우리의 이야깃거리는 늘 다채롭다. 오늘은 사회적ㆍ 정치적 문제, 꿈이 없이 공부만 하는 교육문화에 대한 걱정, 책 읽고 독후감 쓰기, 유럽 여행 기획하기 등이었다,

경계 없이 넘나드는 열띤 수다에 시간도 비켜 다.



오늘의 마지막 방점은 ‘취미’에 대한 것이었다.

취미란 생각날 때, 혹은 할 수 있을 때 하는 것이 아니다. 취미라고 말하려면 적어도 세 가지 개념 정의가 충족되어야 한다.


첫째, 정기적이어야 하고

둘째, 지속적이어야 하고

셋째, 점진적이어야 한다.


한 마디로, 취미에도 기획이 필요하다는 이다. 풍성하고 색깔 있는 삶을 위하여 우리는 다음 만날 때까지 그 ’ 기획’이라는 것을 준비해 보기로 했다.



카.톡.

헤어져 집 현관으로 들어서는데 울리는 카톡 소리가 청량하다.

꽃을 오래 보존하는 정보를 그가 보내왔다.

십 원짜리 구 동전 몇 개나, 설탕 조금을 물속에 넣어주면 훨씬 활력 있고 생명력이 길단다.

꽃 가꾸기에 젬병인 걸 어찌 눈치챘을까.



천천히 잎을 펴서 오래오래 내 곁에 머물렴...


설탕 한 스푼에 간절함을 녹인다.

오늘 달력에 겹겹이 동그라미도 두른다.

최장까지 버틴 날을 헤아려 의기양양 전해주리라.


아참, 한 가지 더!


퐁당. 퐁당. 퐁당.

동전 세 닢이 꽃병 바닥에 떨어져 눕는다.

작가의 이전글부표(浮漂)