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재
김두선 | 부울경 뉴스 디카 수필 투고 (2018)
by
김두선
Dec 21. 2019
ㆍ
언제인가부터 비장애에서 장애인으로 분류되고 말았다. 가고 싶은 곳을 마음대로 갈 수 없는 사람.
나는 운전 장애를 앓고 있다.
백 몇 십 년만의 폭염이라는 올해 여름. 이 지겨운 날들을 끝내듯 어느 하루 갑자기 비가 쏟아졌다.
빗속을 달릴 수 있다면...
시름없이 창밖만 내다보고
앉았다.
간절하면 이루어지는 법인가. 전화벨이 울렸다. 드라이브를 가잔다.
나보다 세 살 많은 어머니가 있다는
그녀.
하지만 아코디언 주름상자처럼 열여덟 나이차를 접어버린 우리는
쿵짝이 잘 맞는 친구 사이다.
내게 줄 꽃다발도 한 아름 싣고 왔다.
얼굴을 꼭꼭 숨긴 백합 다섯 송이에 조화처럼 싱싱한 유칼립투스가 화장기 없는 그의 얼굴처럼 단아하다.
화려하지 않아서 좋다.
모두 칠천 원이에요, 싸죠? 하는 말에 머릿속으로 두드리는 내 계산기에는 숫자 영이 하나 더 붙는다. 가치 평가의
주관화.
겉치레 없는 그가 좋다.
비 오는 날, 나와 벗해 준 젊은 친구가 과분하다.
더하여 윌리엄 폴 영의 장편소설 <오두막>까지
선물로
받았으니 말이다.
이럴
때 횡재했다고 해야겠지
?
송정 해변을 끝까지 달려, 깊숙이 자리 잡고 있는 커피숍으로 들어선다.
수영장 분위기를 연출한 야외 테이블이 눈길을 끈다. 한 번 와 본 곳인데 나와 함께 오고 싶어 찜해 둔 곳이란다.
"선생님과 함께 있으면 나이 차이를 못 느껴요
.
"
내가 곧바로 응답한다.
"나이 값을 못해서 그래요.
"
까르르 꺽꺽
.
허리를 접으며 웃는 그의 웃음소리가 커피숍 천장에 부딪혀 흩어진다.
우리의
이야깃거리는
늘 다채롭다. 오늘은 사회적ㆍ 정치적 문제, 꿈이 없이 공부만 하는 교육문화에 대한 걱정, 책 읽고 독후감 쓰기, 유럽
여행 기획하기
등이었다,
경계 없이 넘나드는 열띤 수다에
시간도 비켜
간
다.
오늘의 마지막 방점은 ‘취미’에 대한 것이었다.
취미란 생각날 때, 혹은 할 수 있을 때 하는 것이 아니다. 취미라고 말하려면 적어도 세 가지 개념 정의가 충족되어야 한다.
첫째, 정기적이어야 하고
둘째, 지속적이어야 하고
셋째, 점진적이어야 한다.
한 마디로, 취미에도 기획이 필요하다는
말
이다. 풍성하고 색깔 있는 삶을 위하여 우리는 다음 만날 때까지 그 ’ 기획’이라는 것을 준비해 보기로 했다.
카.톡.
헤어져 집 현관으로
들어서는데
울리는
카톡 소리가 청량하다.
꽃을 오래 보존하는 정보를 그가 보내왔다.
십 원짜리 구 동전 몇 개나, 설탕 조금을 물속에 넣어주면 훨씬 활력 있고 생명력
이 길단다.
꽃 가꾸기에 젬병인 걸 어찌 눈치챘을까.
천천히 잎을 펴서 오래오래 내 곁에 머물렴...
설탕 한 스푼에 간절함을 녹인다.
오늘 달력에 겹겹이 동그라미도 두른다.
최장까지 버틴 날을 헤아려 의기양양 전해주리라.
아참, 한 가지 더
!
퐁당.
퐁당. 퐁당.
동전 세 닢이 꽃병 바닥에 떨어져 눕는다.
keyword
나이
수필
운전
작가의 이전글
부표(浮漂)
이런 이모작
작가의 다음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