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이모작
김두선 | 오륙도 신문 투고 (2016)
목 뒷덜미를 따갑게 훑어 내리는 칠월의 햇살이 따갑다. 아침부터 얼굴을 데우는 열기를 식히며 건물 안으로 들어선다. 일주일에 두 번, 나는 이곳에서 성인을 대상으로 한글을 가르치고 있다.
한 봉사자의 자원으로 지펴지기 시작한 불이었는데, 시작할 때만 해도 한글 비문해자들이 얼마 되기나 할까, 교실을 열면 학습자가 오기나 할까, 했었다. 하지만 예상은 완전 빗나갔다. 오히려 매번 손에 손 잡고 한 분씩, 두 분씩 따라오시는 바람에, 장소도 시간도 포화상태다.
수업은 오전 열 시부터이다. 하지만 젊은이들에게서 찾아볼 수 없는 칠순의 열정파 어머님들은 아홉 시만 지나면 문밖 계단에서 대기하고 계신다. 결국 나의 출근 시간도 앞당겨져 아홉 시면 교실의 문과 창이 모두 열어젖혀졌다. 꼭꼭 닫아걸고 사는 세상살이와 상관없이 문을 활짝 열어둘 수 있다는 사실은 나를 힐링시켰다.
요즘 들어 어머님들의 인사법이 부쩍 달라졌다. 처음에는 어색하기도 하고, 소극적으로 나누던 인사였지만 지금은 밝고 따뜻하다. 두 손을 머리 위로 번쩍 들어 올려 하트 모양을 그리기도 하고, 옆 사람과 손을 잡고 흔들며 사랑합니다, 하는 말을 쑥스럽지 않게 나눈다. 아들, 며느리에게는 아직 한 번도 표현해보지 못했다, 하면서도 이곳에서는 자연스레 사랑 고백을 쏟아내는 것이다. 이 뿐이랴. 귀로만 듣던 것에서 눈으로 읽어내는 기쁨에 젖어 수업시간마다 눈물을 글썽인다.
한 학기가 끝나는 요즈음, ‘노래로 한글 배우기’를 했다. 알듯 모를 듯 기억을 더듬으며 가사 읽기를 마치고 가요 하나를 배웠을 때, 마음 아린 고백 하나를 들었다. 그동안, 아들 손주들을 따라 노래방을 가고 싶지만 함께 갈 수 없었다는 고백이다. 하긴 생각지도 못한 고백이 어디 이뿐인가. 글자를 아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사람들은 생각조차 못한 고민이자, 고충이 수두룩하다. 하차 역 안내판을 읽지 못해 지나쳐버린 지하철역에서, 택배 창구에서, 은행에서, 병원에서 그리고 마음속 맺힌 말을 편지 한 줄에 꺼내보지 못한 안타까움 등...
이분 어머님들에게는 공통점이 하나 있다. 키워낸 자녀들이 하나같이 학사는 기본이고 대부분 석, 박사를 모두 거친 빵빵한 엘리트들이라는 점이다. 배우지 못한 한을 자녀들에게 모두 풀어놓았던 것일까. 아이러니한 것은 어머니가 한글 모르는 것을 자녀들이 알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한 방향 헌신처럼 지금 당신이 글 모르는 사실조차도 자식들 얼굴에 먹칠할까 하여 숨기고 싶다, 하신다.
여자라는 이유로. 시대를 잘못 태어나서, 그들이 겪은 한은 아직도 진행형이다. 읽을 수 있을 때, 쓸 수 있을 때, 그때면 한글도 모르는 엄마가 너희를 이만큼 키워냈다고 당당히 고백할 수 있을까. 결코 그분들의 잘못도 아닌데 말이다.
색연필, 색종이, 스케치북, 받아쓰기 공책, 처음 써보는 시 한 줄, 편지 한 장....
평생 처음 해보는 것이 너무나 많은 어머님들의 나날은 지금껏 살아온 날들보다 더 바쁘다. 그리고 이런 이모작의 열정이 다시금 나를 힐링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