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찐 신혼 중

by 김두선

찐 팬 1호로부터 글 한 편을 전달받았다.

새해 소원이 하루 만에 이루어진 사연이었다.

궁금 만발.


작가의 경험은 소원이 아니라 서원이었다. 그리고 그 상황은 그야말로 멘탈 폭격이었다.

엇비슷한 상황으로 어제저녁 내가 겪은 일이 떠올라서 혼잣말이 절로 새어 나왔다.


“결심을 하면 바로 테스트에 들어가긴 하지!”


나는 올해 결혼 40년을 지나는 중이다. 당연히 결혼기념일도 사십 회를 치렀을 터. 하지만 이날을 잊고 산 지 오래다. 같이 사는 게 축복이지도 않은데 무슨 좋은 일이라고 기념까지 하랴 싶어 언제인가부터 그만두었다. 흔히들 여자 꼬드기려면 무슨 말을 못 해, 하고 결혼 전 언사에 변명을 하지만 내 남편은 그런 변명조차 필요치 않다. 우직하여 입은 언제나 꾹 다무는 편이었으니까. 그런데 철철 넘치도록 자상하고 가정적으로 보이는 외모가 거짓말한 건 어떻게 심판해야 하나.



이런 그를 이해하기 시작한 것은(포기라고 해도 좋겠다.) 명리 학을 어깨너머로 익히면서 피차에 서로의 운명을 수선하기로 결심하고부터이다.

풀이에 의하면 그는 일간이 신금申金이어서 지지에 앉은 아내에게 예리한 칼로 베듯 마음 다치게 하는 소리를 잘하며, 회식문화를 즐기니 천성이 술과 친구를 좋아한단다.



반대로 나는 정관이 강한 여자라 남편이 땡 하면 집에 돌아와야 하고 술을 마셔도 똑바로 걸어 들어오기를 바라니 둘 사이의 모양새가 그야말로 창과 방패 형상 아닌가. 되돌아보면 한평생 마음 찌르는 소리에 피차에 긁히고 상처 내느라,

자기 상처 돌아보기에도 벅찬 나날이었을 테다.



결국 우리는 강을 건넜고 지금 우리는 다시 그 강을 잇는 수선 작업을 하고 있다. 남은 살아갈 동안 그는 나에게 상처되는 부정적인 말은 절대로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고, 공포로 다가오던 큰 목소리도 내지 않겠다고 맹세했다. 나 또한 매사에 그럴 수도 있다는 넉넉함으로 짜증 내지 , 무조건 참지만 말고, 조근조근 풀어서 말하리라 다짐했다.



어제저녁 식사 때였다. 퇴근하고 와서 지쳐있는 모습이 안쓰러워 침대 위에 작은 상을 차렸다.

시원한 미역 오이냉국에 얼음 몇 개를 띄워 쟁반에 받혀주었더니 비스듬히 누운 자세로 받으려다 기어이 냉국을 쏟고 만다. 흰 침대보에 검은 미역과 초록 오이의 어지러운 깔맞춤이라니.

불끈! 꾸우우우우우욱… 꿀꺽.


"조심히 받지 그랬어..."

그리고는 차분히 닦아내고 들어냈다.



고칠 생각이 없다면 방법이 없지만, 의지를 사용한다면 운명도 바꿀 수 있는 것이 사람의 지혜가 아닐는지.

잘했어. 오늘 멘탈 관리 성공적이야!

우리 부부는 '찐' 신혼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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